윤석열, 경제문제 토론회, 대선후보, 언어
말이 좀 어눌해도 된다. 너무 유창해도 거부감이 들 때가 있다. 하지만 어눌하든 유창하든 화자가 내뱉은 말 속에는, 그 사람의 인품과 지식이 녹아 있게 마련이다.
따라서 어떤 사람이 사용하는 용어나 문장만 듣고 봐도, 그 사람이 난 사람인지 된 사람인지 든 사람인지 분별할 수 있다. 20대 대통령선거를 앞두고 열리는 후보 토론회는 각 후보의 수준을 잘 살펴볼 수 있는 좋은 마당이다.
다음은 한 유력 후보가 21일 열린 선관위 주최 경제분야 토론회에서 사회자로부터 "청년실업, 4차 산업혁명, 기후변화, 경제 양극화 등에 대응하기 위한 차기 정부의 중점 경제정책 방향과 목표를 말씀해주십시오"라는 물음에 답한 내용을 그대로 옮긴 것이다.
"지금은 초저성장 시대고, 초저성장 시대에는 우리 양극화를 해소하기 어렵고, 또 계층 이동이 어렵습니다. 계층이 고착화되기 쉽습니다. 이 초저성장을 극복하는 방법은 재정정책이나 금융정책 이런 것으로는 어렵습니다. 결국은 우리가 새로운 패러다임을 만들어내야 되고, 저는 여기서 강조하는 것이 디지털 전환에서 더 한걸음 나선 디지털 데이터 경제를 강하게 키워야 된다고 생각합니다. 정부는 시장과 기업을 존중하고 규제를 풀면서 교육개혁과 노동개혁을 추진해 감으로 해서 우리가 산업구조를 고도화하는 것 만이 초저성장에서 탈피하고 양극화를 극복할 수 있는 방안이라고 생각합니다."
나의 한국어 문해력으로는 이 말이 무슨 말인지 종을 잡을 수 없다. 초저성장이면 양극화 해소도 계층 이동도 어렵다는 것이 어떤 논리적 연관성이 있는지도 모르겠고, 그 뒤의 문장도 무슨 말을 하는지 알 수가 없다. 이해력, 논리력, 문장력 어느 것 하나 제대로 갖춘 것이 없다. 만약 여러분이 어느 회사의 면접관이고, 위의 말을 한 사람이 시험생이라면 어떤 결론을 내렸을까. 상식적인 면접관이라면 단 1초도 고민하지 않았을 것이다.
다음 말은 더 걸작이다. 그가 그게 무슨 뜻인지 아는지 모르는지 '디지털 데이터 경제'라는 용어를 사용하자, 옆에 있는 한 후보가 물었다. "당신이 생각하는 디지털 테이터 경제가 무엇인지 설명 좀 해달라"고. 그러자, 문제의 당사자가 다음과 같이 설명했다.
"우리가 통상 디지털 전환이라고 합니다마는 그거는 우리가 한 30년 전부터 우리가 자료들을 다 디지털화 하고 컴퓨터를 쓰고, 또 컴퓨터 네트워크를 구축해 갔습니다마는, 지금은 이 디지털 그 기기들이 전부 서로 연결돼 있으면서 정보데이터들이 물 흐르듯이 흐르고 있습니다. 이 속도를 더 빠르게 해야만 자율형 자율주행자동차라든지 이런 그 4차산업 혁명의 이런 총아들을 만들어 낼 수 있다는 말씀입니다."
이 말을 보면, 디지털 데이터 경제는 데이터의 속도를 빠르게 하는 것이다. 데이터를 전달하는 망의 속도를 빠르게 하는 것이 디지털 데이터 경제인지 아닌지에 관해서는 설명을 하지 않아도 왠만한 사람들은 다 알 터이니 더 이상 얘기를 하지 않겠다.
내가 여기서 꼭 지적하고 싶은 점은 그가 이런 무지, 무식한 얘기를 너무 뻔뻔하게 주저하지도 않고 마구 읊어댄다는 사실이다. 그 정도면 자신은 물론 상대를 모욕하는 것이다.
소크라테스는 참된 지식은 "네 자신이 모른다는 것을 아는것"이라고 말했다. 그럼 '자신이 모른다는 것을 모르는 것은 무엇일까?' 나는 '구제불능'이라는 말 이외에 다른 말을 생각할 수 없다.
지도자급 인사의 언어력에 관해 생각하다 보니, '형광등 100개의 아우라'를 가진 그 분의 말솜씨가 생각난다. 그는 어느 자리에서 다음과 같이 말했다.
"호랑이 한테 물려가도 정신을 차리면 된다는 그런 말이 있듯이 우리의 핵심 목표는 올해 달성해야 될 것을 이것이다 하는 것으로 정신을 차리고 나아가면 우리의 그 어떤 에너지를 분산시키고 해낼 수 있다는 그런 마음을 가지셔야 될거라고...".
여하튼 이 분이나 그 분이나 말로 보는 지식과 인격의 수준이 도긴개긴이다. 아무리 출중한 인공지능 번역기로도 번역할 수 없는 말을 하는 사람, 그래서 구조적인 소통장애를 가지고 있는 사람이 그 높은 자리를 노리는 것 자체가 '나라의 수치'라는 생각을 지울 수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