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황청 대사가 안내하는 바티칸의 속살

이백만, <바티칸 산책>

by 오태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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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황청은 13억명의 가톨릭 신자를 이끌고 총괄하는 '영적인 국가'이고, 교황청이 소재하는 곳이 바티칸이다. 흔히 교황청이 바티칸이고 바티칸이 교황청인 줄 알지만, 둘은 역사와 조직, 기능면에서 다르다고 한다.


첫째, 교황청은 초대 교황인 베드로 사도로부터 제266대인 프란치스코 교황까지 2000년의 역사를 지닌 반면, 바티칸은 1929년 라테란조약에 의해 로마의 바티칸 언덕에 세워진 도시국가다. 둘째, 교황청은 세계 가톨릭 신도를 이끄는 지도에 없는 국가이지만, 국가원수를 교황으로 하고 여느 정부와 같이 정부 조직을 가지고 있다. 반면 바티칸은 창경궁 정도의 면적(0.44 평방킬로미터)에 인구 850명을 지닌 세속국가다. 시민권은 출생이 아니라 직책에 따른 증서에 의해 얻고 업무가 끝나면 시민권도 자동 소멸된다. 교황은 교황청과 바티칸 수장을 겸하고 있다. 셋째, 교황청은 국제법상 완전한 주체로서 영세중립국이며, 2019년 말 현재 183개 국과 외교관계를 맺고 있다. 이에 비해 바티칸은 이탈리아와 협력 업무(치안, 교통, 통신, 전기 수도 등 행정서비스)를 주로 하고 교황청 소유의 각종 시설물을 관리한다.


가톨릭 신자라고 해도 아마 이런 것까지 세세하가 아는 사람은 드물 것이다. 나도 처음 알았다. 이 모든 내용은 교황청 대사(2018년 1월-2021년 11월)를 역임한 이백만 대사가 쓴 <엉클 죠의 바티칸 산책>(바오로탈, 이백만 지음, 2021년 10월)에 나온다. 이 책은 저자가 대사 시절 <가톨릭릭평화신문>에 연재했던 글을 보완해 출판한 것이다. 죠는 저자의 세레명 요셉(Joseph)의 첫 음절이고, 엉클 죠는 2013년 저자가 캄보디아에서 자원봉사 활동을 할 때 신부님들이 부르던 별명이라고 한다.


이 책에는 교황청 대사로서 교황청과 바티칸의 내밀한 곳까지 접근할 수 있는 사람만이 알 수 있는 얘기가 많이 나온다. 그뿐 아니라 그가 가톨릭 신자로서 개인적으로 묵상했던 내용이 더해지면서 얇은 책을 묵중하게 만들어 준다. 그는 자신의 묵상을 "제 기억의 항아리에서 곰삭은 소박한 묵상"이라고 말한다. 오랜 언론인 생활을 통해 단련된 글솜씨가 읽는 사람을 함께 묵상 속으로 안내하는 듯하다.


나는 이 책을 읽으면서 처음 알게 된 것이 너무 많았다. 대사의 직함이 바티칸 주재 대사가 아니라 교황청 대사라는 것도, 주교황청 대사관이 바티칸이 아니라 로마 시내에 있는 것도 처음 알았다. 교황청 대사는 꼭 가톨릭 신자가 아니어도 되고, 남녀 구별도 없다는 것도 이번에 알았다.


저자가 한국 출신의 신자를 만나거나 순교자의 흔적을 직접 대면하면서 느낀 감정은 꼭 가톨릭 신자가 아니더라도 읽는 사람의 가슴을 뭉클하게 한다. 황사영의 백서를 실물로 봤을 때라는가, 조선의 첫 바티칸 유학생의 한글 기도글을 대면할 때 저자가 느낀 감동이 그대로 전해진다. 코로나라는 전대미문의 감염병을 대하는 프란치스코 교황의 인식과 교황청의 대응도 엿볼 수 있다.


나도 공관장을 경험해서 그런지, 교황청의 외교를 서술한 부분이 눈에 띄었다. 저자는 "교황청의 정무는 외교가 전부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교황청은 군사력과 경제력은 없지만, 외교력은 세계 최강이다"고 절찬한다. 그는 교황청 외교 전략을 다섯 가지로 요약한다. 1)외교의 목표는 오로지 평화 증진이고, 2)평화 증진을 위해서라면 누구와도 만나고, 3)시간은 항상 하느님의 편이라고 생각해 서두르지 않고 4)중립외교를 위해 강대국과 적당한 거리를 유지하고, 5)결과를 대외적으로 발표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외교력이 생명이 우리나라로서도 배울 바가 많을 것 같다.


저자가 프란치스코 교황과 만나 북한 방문 등 한반도 평화에 관한 교황의 협조를 부탁하고 동의를 이끌어내는 모습은 교황청도 강대국 못지 않은 중요한 외교무대임을 보여준다.


이 책은 외교관, 언론인 출신 외교관의 책이라는 점에서 같은 배경을 지닌 나에게도 큰 자극이 됐다. 역시 언론인 출신은 무슨 일을 맡아 하든지 써서 발신하는 것이 생명이 아닐까 하는 생각을, 이 책을 읽으면서 새삼스럽게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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