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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오태규 Apr 28. 2022

'검수완박' 용어 사용에 이의 있다.

검찰, 기소권, 수사권, 검경 권한조정

최근 검찰의 수사권과 기소권을 분리하는 것을 주요 내용으로 하는 관련법 개정과 관련해 '검수완박'(검찰 수사권 완전 박탈)이란 표현이 남용되고 있다. 제도권 신문과 공중파 텔레비전뿐 아니라 인터넷 공간에서도 '검수완박'이란 용어가 무분별하게 스며들고 있다.


4자성어 형태를 빌린 '검수완박' 용어는 매력적인 면이 있다. 우선 전형적인 4자 성어처럼 복잡한 내용을 네 글자로 압축함으로써 언어의 경제효과를 제공한다. 이런 언어의 경제효과는 기사나 보도의 제목으로 활용하는 데 편리하다. 또 복잡한 것을 간략하게 기호화함으로써 신비화를 불러일으키고 사용하는 사람들에게 남들이 잘 모르는 것을 알고 있다는 '허영심'도 자극한다.


하지만 '검수완박'이란 용어 안에는 '독'이 숨어 있다. 그것이 '검수완박'이란 말을 개발하여 퍼뜨리는 사람들의 의도일 것이다. 그 독의 실체는 '검찰 수사권과 기소권의 분리'가 "정의의 사도인 검찰의 손을 묶어 놓기 위한 정치권의 술수라는 인상을 주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실제, 많은 사람들이 무비판적으로 '검수완박'이란 용어를 부지불식 간에 쓰면서 '검찰 수사권과 기소권의 분리'라는 법안의 취지는 사라지고, 핍박 받는 검찰이라는 인상만 강해지고 있다.


커뮤니케이션 이론에 '프레이밍 효과'라는 것이 있다. 질문이나 문제 제시 방법에 따라 사람들의 선택이나 판단이 달라지는 현상을 말한다. 여론조작에 능한 사람들은 이런 효과를 이용해, 여론을 자신들의 의도에 맞게 끌고 가려고 한다.


국제관계에서도 플레이밍 효과가 종종 활용된다. 대표적인 예가 한일관계에서 일본 쪽이 잘 쓰는 '골대 이동론'이다. 일본 쪽은 한국 쪽이 일본군 군대위안부, 강제동원 노동자 위자료 지급 판결 등 새로운 문제제기를 하면, 1965년 한일협정으로 다 끝난 문제를 골대를 옮겨 다시 내놓는다고 비난한다. 그런데 문제는 이런 플레이밍을 한국의 언론도 그대로 받아서 사용한다는 것이다. 때문에 의도에 상관 없이 한국은 경기의 규칙도 지키지 않고 골대를 멋대로 움직이는 무법 국가라는 인상이 커지게 된다.


나는 '검수완박'이라는 용어가 검찰의 이익을 지키고 무소불위의 검찰의 권력을 재조정하려는 세력을 폄하하려는 진영의 대표적인 '프레이밍 공작'이라고 본다. 그렇기 때문에 이런 용어를 덥썩 받아쓰면 안 된다고 본다. 특히, 시민들에게 영향력이 큰 미디어는 더욱 이 용어의 사용에 주의를 기울여야 한다. 자신의 의도에 관계 없이 검찰의 편을 드는 꼴이 되기 때문이다. 미디어는 적어도 검수완박이라는 용어를 쓰려면 상대 쪽이 주장하는 '검찰 수사권 남용 방지'(검수남방)이나 '검찰 수사권 전횡 방지'(검수전방)과 같은 용어를 공평하게 쓰는것이 옳다고 생각한다.


어느 한 쪽의 세력이 의도적으로 만든 용어를 무비판적으로 점검하지 않고 쓰는 것은 결국 그들의 의도에 말려들거나, 그들의 의도를 알면서도 객관성을 가장해 그들을 편드는 것이다. 따라서 나는 미디어 관계자들이 '검수완박'이란 표현을 최소한 중립적인 용어처럼 쓰지 말길 바란다. 쓰더라도 한 진영의 의도된 용어임을 밝히는 데만 써야 한다고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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