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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오태규 Jun 27. 2022

이승만 정권 때 파종된 재일동포 '기민정책'

재일동포, 비자, 조선적

일본에서 재일동포들을 만날 때마다 자주 듣는 용어가 '기민정책'이라는 말이다. 조국이, 한국 정부가 재일동포를 온전한 한국 국민으로 대해주지 않는다는 불만의 표현으로 쓰는 말이다. 예전보다는 재일동포를 대하는 한국 정부의 태도가 꾸준히 개선돼온 것이 사실이지만, 한국 정부가 여전히 재일동포의 삶에 큰 신경을 쓰지 않는다는 재일동포들의 불만, 즉 기민정책에 대한 불만은 여전히 뿌리 깊다.


일본제국이 1910년 조선을 강제 병탄시키면서 조선 사람의 국적도 일본으로 바꾸었다. 한때 200만명을 넘는 숫자에 달했던 재일동포들은 당시 일본 땅에서 차별과 억압을 받으며 살고 있었지만 국적은 일본이었다. 이것이 일본의 태평양전쟁 패전과 1952년 샌프란시스코 강화조약을 계기로 바꾸었다. 일본이 재일동포의 국적을 일방적으로 박탈하고 그들의 국적난에 '조선'이란 이름의 무국적자로 만들었다. '달면 삼키고 쓰면 뱉는' 정책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러면 한국 정부라도 이들을 국민으로 챙겨야 하지만 제대로 챙기지 못했으니, 재일동포들의 불만이 생긴 것은 당연하다고 할 수 있다.


<한국정부의 재일코리안정책>(크레인, 민지훈 지음, 2019년 3월)은 재일동포에 대한 기민정책의 레일을처음 깔아 놓은 이승만 정권의 재일동포 정책을 추적한 책이다. 저자인 민지훈씨가 리츠메이칸대학에서 박사 학위로 제출한 논문을 책으로 펴낸 것이다.


민씨는 이 책에서 '포섭'과 '배제'라는 개념을 사용해, 이승만 정권이 어떻게 재일동포정책을 펴왔는가를 시기적으로 살피고 있다. 그는 이승만 정권이 남북분단 상황에서 북한과 체제 경쟁에 주력했기 때문에 재일동포의 삶과 인권을 등한시했다면서, 이승만 정권의 재일동포 정책을 기민정책으로 평가할 수 있다고 말했다.


민씨는다섯 시기로 나눠, 이승만 정권 전 기간의 재일동포 정책을 추적했다. 1장은 해방된 1945년부터 한국 정부가 수립되는 1948년까지, 2장은 정부 수립부터 한국전쟁까지, 3장은 초기 한일회담이 이뤄진 1951년부터 1953년까지, 4장은 1954년부터 북송사업 직전인 58년까지를, 5장은 북송사업이 본격화하는 58년부터 이승만 정권이 붕괴되는 60년까지를 다뤘다.


이 과정에서 일관되게 확인할 수 있는 것은 이승만 정권이 재일동포의 삶과 인권보다는 정권의 보위와 남북대결에 중점을 두고 재일동포 정책을 폈다는 점이다. 예를 들어, 한일 국교정상화 회담을 하면서 한국 정부의 지지 단체인 민단이 재일동포 문제에 대한 발언권을 주장했으나 묵살한 것이 대표적이다. 또 한일 교섭 과정에서 재일동포들의 국내 송환권을 주장하고, 북일관계가 개선될 조짐을 보이자 재일동포들의 입국 금지를 선언하는 등 재일동포를 한일 교섭에서 유리한 고지에 오르기 위한 도구로 사용하기도 했다. 1955년 북한계 재일동포 조직이 총련이 결성되고 북일 간 민간교류가 활성화하고 북송사업이 본격화하자, 재일동포의 처우보다 북송 저지에 온힘을 기울였다.


민씨는 결론적으로 이승만 정권은 한일회담을 통해 재일동포가 자국민이라는 점을 주장하면서도 재일동포는 직접 통제하기 곤란한 '잠재적 타자'로 봤다고 말했다. 회담 초기에 재일동포의 국적을 '한국'이라고 강하게 주장하다가 북송사업이 실시되자 '귀화'를 언급한 것도 이런 인식에 바탕을 뒀다고 본다. 즉, 이승만 정권이 원하는 국민은 이승만 정권에 이익을 주는 자, 이승만 정권을 지지하는 정치 이데오르기를 가진 자, 이승만 체제의 통제 아래 있는 자였는데, 재일동포가 이 세 가지 범주에 들어오는 것이 불가능하다고 판단하고 한국으로 귀국하는 사람만 받아들이는 정책을 취했다는 것이다. 그리고 그 외의 동포에 대해서는 책임을 지지 않았는데 이것이 바로 기민정책으로 평가할 수 있따는 것이다.


민씨는 이승만 정권이 취한 포섭의 측면을 세 가지 들었다. 첫째, 일본 국내에 한국 국민등록제를 도입하고 재일동포들에 등록을 촉구했고, 둘째 , 한일회담에서 한국적 동포의 법적 지위를 우선적으로 개선하려고 했고, 셋째, 1950대 후반에는 한국에 귀국하는 재일동포에 대한 보상과 재산 보전, 송금을 일본 정부에 요구했다는 것이다. 반면, 배제 정책으로는 당시 점령군사령부가 일본 정부의 재일동포 관리정책을 옹호했는데 한국 정부도 그것을 지지한 것을 들었다. 점령군사령부와 일본 정부가 일본 내 민족교육 탄압했는데 한국 정부가 이를 방관한 것이 대표적인 예이다. 또 민단이 자신들의 처우에 관해 한일회담에 관여하길 요구한 것을 거부한 것, 한국 정부가 재일동포에 대한 보호를 포기를 선언한 것을 들었다.


이 책은 이승만 정권의 재일동포 정책을 배제와 포섭의 틀로 분석했지만, 지금도 그때 깔아놓은 정책이 기본적인 수정 없이 변용되어 실시되는 면이 적지 않다는 점에서 시사하는 바가 크다. 지금도 여전히 남북대결 구도와 체제 우위 경쟁이 재일동포 사회에 투영되고 있고, 이에 따른 남북 정부의 재일동포에 대한 배제와 포섭이 어어지고 있는 것을 부인할 수 없다. 한국 정부의 측면에서 보면 보수성향 정권과 진보 성향 정권에 따라 배제와 포섭의 강도가 달라지고 있다. 대체로 보수 정권 때는 배제가 강해지고 진보 정권은 포섭을 확대하는 경향을 보였다. 한국의 정권이 진보에서 보수로 넘어가면서 재일동포들이 지금 가장 관심을 가지고 있는 사항도 역시 재일동포 정책에 대한 변화 폭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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