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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오태규 Aug 15. 2022

부정하고 무능하며 부패한 정권이 지속하는 이유

장기부패체제, 2012체제, 시라이 사토시

코로나 감염 사태가 잠시 주춤해지면서 한일 사이의 왕래가 다소 활발해진 시기인 7월 초 일본에서 지인이 방문했다. 아베 신조 전 총리가 암살되기 얼마 전의 일이다. 그가 내가 평소 좋아하는 저자들의 책 두 권을 선물로 사왔다.




그 중의 한 권이 시라이 사토시 교토세이카대학 교수가 쓴 <장기부패체제>(카도카와신서, 2022년 6월 10일)라는 따끈따끈한 책이다. 마침 다른 책을 읽고 있던 중이어서 책을 받아서 표지만 본 뒤 그냥 책상 위에 두고 있었다. 그러다가 아베 전 총리가 암살된 뒤 비로소 읽기 시작했다. 바로 이 책이 아베 집권 2기 이후의 일본 정치의 문제를 다룬 책이기 때문에 순서를 바꾸어 읽어 볼 가치가 있다고 생각했다.




책을 읽어보니 '역시 시라이 교수는 대단하다'는 감탄이 절로 나왔다. 그가 아베 이후 체제, 즉 '2012년 체제'의 구조와 문제를 일목요연하게 분석해 놓았다.




그는 원래 러시아 볼세비키의 사상을 연구한 학자다. 하지만 2013년 일본의 전후 체제를 패전을 부인하는 '영속패전체제'라고 규정한 <영속패전론-전후 일본의 핵심>(오타출판)을 출판한 것을 계기로 일약 일본의 체제 분석 전문가로 떠올랐다.  잠시 옆길로 빠져 영속패전론의 주요 내용을 거칠게 요약하자면, 일본이 전후에 국체를 천황에서 미국으로 갈아탄 뒤 전쟁에 대한 반성 없이 전전의 통치구조를 그대로 온존하고 있다는 것이다. 이것이 대외적으로는 미국만 상전으로 모시면서 한국, 중국 등 주변국을 업신여기는 정책으로, 대내적으로는 미국의 이익에 반하지 않으면서 기득권을 지키는 정책으로 나타난다는 것이다.




시라이 교수는 아베가 두 번째 집권한 2012년 이후를 '2012년 체제'로 규정한 나카노 고이치의 개념을 빌려 분석을 시도하면서 2012년 체제는 바로 '장기부패체제'와 다름없다고 말했다. 그가 아베 2기 이후를 굳이 체제라고 용어를 사용해 분석한 것은 아베가 모리카게 사건, 벚꽃을 보는 모임, 코로나 감염 사태에 대한 부실 대응 등 온갖 부정과 부패, 무능함을 보이고 사퇴했지만, 그가 사퇴한 뒤에도 그가 구축한 정치 구도가 전혀 쇠퇴하지 않고 강고하게 유지되고 있다고 보기 때문이다.




그는 '아베 1강체제'라고도 치환할 수 있는 2012 체제가 유지되는 이유로 야당이 약하다, 자민당 안의 대안세력이 없다는 얘기가 흔히 나오지만 그것만으로 설명이 부족하다고 본다. 그는 말기에 이른 '전후 국체' 즉 '영속패전체제'가 무너질 경우 기득권을 상실할 수밖에 없는 세력들이 전후 국체의 종언을 무제한으로 연장시키기 위해 강온의 갖은 방법을 취하고 있고, 여기에 일본의 유권자가 소극적, 적극적으로 가담하고 있기 때문이라고 진단한다.




그는 2012년 체제의 구조와 문제를 경제정책(아베노믹스)과 외교안보정책, 시민사회로 나눠어 구체적으로 분석했다. 그는 아베노믹스의 세 가지 기둥(금융, 재정, 산업 정책)을 분석하면서 결론적으로 화려한 슬로건을 내세워 새로운 것을 도입하는 척하면서 실상은 엔저와 환율조작으로 대기업 등 기득권층을 우대하는 것에 불과했다고 말했다. 이어 외교안보정책에서는 일본의 정치권이 자주파와 대미종속파의 대결로부터 점차 대미종속파로 수렴되는 과정을 살핀 뒤, 냉전 이후 사실상 대미종속파적인 정책으로는 대처할 수 없는데도 이를 연장하려고 하는 대미종속파의 모순을 지적했다.




그가 이런 관점에서 주목하고 있는 사안이 한반도 냉전해체와 관련한 아베 정권의 자세다. 그는 도날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유일한 업적이 있다면 한반도 문제의 본질, 즉 한반도에서 전쟁 상태를 종료시키지 않으면 북한 핵 문제가 해결되지 않는다는 점을 세상에 알린 것이라면서, 아베 정권이 이에 저항한 것은 자신의 권력기반을 잃게 되는 것을 두려워했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심지어 그는 아베 정권의 한반도 평화정책에 대한 방해와 저항을 그들의 기득권 보호를 위해 "전쟁을 종결시키는 것보다 전쟁을 재개하는 것이 좋다"는 본심에 따른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한반도 문제를 다루는 미디어의 문제도 지적했는데, 예를 들어 부끄럽게도 일본이 한국전쟁의 종결에 협력해야 한다고 지적한 미디어는 오키나와에 있는 신문들밖에 없었다고 말했다.




그는 2012년 체제는 어떻게 하든 대미종속체제를 영구히 지속하고 싶어하지만, 중국과 오키나와 문제가 이런 환상에 균열을 내고 있다고 말했다. 중국은 과거의 소련과 달라 전면적인 관계단절로 대응할 수 없고, 오키나와 기지 문제는 갈수록 대미종속 노선의 모순을 드러낼 수밖에 없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그는 마지막으로 일본 시민사회의 문제와 대응도 짚었다. 그는 아베와 푸틴의 밀월관계(?)를 예로 들어 2012체제가 시민사회의 냉소주의에 의해 지탱되고 있음을 지적했다. 아베는 총리 시절에 27차례나 러시아의 블라디미르 푸틴 대통령과 정상회담을 하며 신뢰와 우정을 과시했다. 마침 러시아가 우쿠라이나를 침략하자 반 아베 정서를 가진 사람들 사이에서 푸틴과 그렇게 친하다는 아베를 모스크바에 파견해 푸틴을 설득하도록 하자는 얘기가 농담처럼 나왔지만, 흥미롭게도 아베 지지자들 사이에는 이런 얘기가 전혀 나오지 않았다. 그는 이런 모습을 보면 아베 1강체제로 불리는 2012체제를 지탱하고 있는 핵심이  냉소주의임이 드러난다고 말했다.




그는 마지막으로 '완성된 냉소주의'로 유지되는 2012년 체제, 장기부패체제를 벗어나려면 일본 시민들이 각자 자기의 자리에서 쓸데없는 것, 잘못된 일을 시키는 명령을 거부해야 한다고 말했다.  그는 "그런 거부가 사회적, 윤리적인 저항의 첫걸음"이라면서 "우리들은 너무도 오랫동안 저항하는 것을 잊고 살았다"고 개탄했다.




일본 정치학자들은 아베가 2020년 코로나 사태 와중에서 총리를 사임한 뒤 들어선 스가 요시히데, 기시다 후미오 두 정권을 '아베 없는 아베 정권'이라고 부른다. 그런 아베가 7월 8일 총격을 받고 사망하면서 이 세상에서 아예 사라졌다. 이 책을 읽으면서 그가 세상에서 사라진 뒤에도 '아베 없는 아베 체제'가 계속 이어질 것인지가 더욱 궁금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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