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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오태규 Aug 29. 2022

성장이 끝난 시대를 사는 지혜를 논하다.

우치다 다쓰루, 철퇴, 후퇴

합기도 사범의 무술가이자 사상가인 우치다 다쓰루 고베여학원대학 명예교수는 1년마다 단독 및 공동 저서를 포함해 10권 이상의 책을 출판한다. 프랑스 현대사상이 주전공이지만 영화, 무도, 정치, 사회, 종교 등 거의 건드리지 않는 분야가 없는 전천후 지식인이다.




한 번은 그를 만나 1년에 어떻게 그렇게 많은 책을 낼 수 있느냐고 물은 적이 있다. 그의 답변은 의외로 간명했다. "글 쓰는 것을 의무나 일로 생각하지 않고 숨 쉬고 밥 먹은 것처럼 생각하면 된다"고 말했다. 역시 무술의 고수다운 발상이라고 생각했다. 나도 그때부터 글 쓰기가 어렵고 생각이 막힐 때면 "그렇지, 글 쓰기는 숨 쉬기나 밥 먹기와 같은 것"이라고 마음을 다잡곤 했다. 실제로 그렇게 생각하면 어깨에 힘이 빠지고 글이 술술 풀리는 기분이 든다.




우치다 다쓰루가 최근 <철퇴론>(창문사, 우치다 다쓰루 편, 2022년 4월 30일)이라는 제목의 편저서를 냈다. 우리 말로는 철퇴라고 하면 '철퇴(鐵槌)를 가한다'는 말이 가장 먼저 떠오르겠지만, 여기서 말하는 철퇴(撤退)는 철수를 의미하는 말이다. 즉, 저출생, 인구감소, 기후변화, 전염병 대유행의 시기에 한 발 뒤로 물러 어떻게 사는 것이 좋은 삶의 방법이고 지속가능한 삶인지를 고민해 보자는 뜻에서 만든 책이다. 이 책도 시라이 사토시 교수의 <장기부패체제>와 함께 7월 초 일본에서 온 지인이 사다 준 것이다. 




우치다가 편저를 맡은 엔솔로지(편저서)는 일정한 형식이 있다. 먼저 서문에 편저자인 우치다가 엔솔로지에 참여를 바라는 필자들에게 원고를 청탁하는 의뢰서를 그대로 게재한다. 책 전체를 읽지 않고 이 원고 의뢰서만 읽어도 책의 주제와 내용을 대략 짐작할 수 있어 편리하다.




내가 보기에 우치다는 평소 다양한 활동을 통해 형성된 '우치다 스쿨'(나의 작명)을 거느리고 있다. 그들 중 편저의 주제에 어울리는 사람들에게 원고 청탁을 하고, 거기에 응한 사람들의 원고를 모아 책을 낸다. 그러니까 그때그때 떠오르는 현안과 관련해 기동력 있게 책을 낼 수 있다. 필자들도 전공 분야가 다 다르기 때문에 한 번에 다양한 관점의 글을 보는 맛이 쏠쏠하다. 나는 우리나라 출판계도 이런 형식의 책 만들기를 시도하면 좋겠다는 생각이 든다.




이번 편저에는 우치다를 비롯해 16명이 참가했다. 나와 안면이 있는 필자도 여렷 있어 반가웠다. 우치다를 비롯해 <영속패전론>의 저자 시라이 사토시 교토세이카대 교수, 의료경제학 전공의 재일동포 3세 유병국 가나가와현립 보건복지대 교수, 연극작가이며 연출가인 히라타 오리자 예술문화관광전문대학 학장 등이 직접 만나 얘기를 나눴던 사람들이다. 지속불가능한 자본주의의 한계를 지적하며 공유지 경제(코뮨주의)의 부활을 주장한 <인신세의 자본론> 저자 사이토 코헤이 도쿄대 교수, 자연 효모를 활용해 빵을 만드는 일을 하는 와타나베 이타루와 와타나베 마리코 부부는 저서를 통해 간접적으로 알게 된 사람들이다. 




일일히 이들의 글을 전하는 것은 번잡하니, 편저자인 우치다의 원고 의뢰서로 이 책을 주제와 내용을 살펴보겠다. 




먼저 문제의식이다. 우치다는 "(일본의)국력이 쇠퇴하고 보유 자원이 줄어들고 있는 현재의 사정으로 볼 때 '철퇴'는 긴급하게 논할 과제임에도 불구하고 많은 사람들이 이를 기피하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면서 "국력이 저하하는 것은 자주 있는 일이지만 '국력 저하에 어떻게 대처하는 것이 좋은가' 하는 논의를 기피하는 것은 자주 있는 일이 아닌 '이상한 일'"이라고 말한다. 또 정부에서도 국력 저하에 대비해 연구를 해놨겠지만 발표하지 않는 것은 성공체험에 취해 실패를 인정하지 않거나, 철퇴 전략을 세우고 있지만 신자유주의에 기반한 '선택과 집중' 즉 승자독식의 전략이기 때문에 이것이 발각될 경우 다수의 반발로 정권 유지가 어렵기 때문일 것이라고 말한다.




그는 "내가 말하는 '철퇴'는 구체적으로는 국력 쇠퇴의 현실에 적절하게 대응하는 것을 말하는 것이다. 말라서 허리띠 구멍 하나를 줄인다든가 추워서 옷을 하나 더 끼어 입는다든가 그런 종류의 비정서적이고 계량적인 문제임에도 불구하고 이런 작업이 제도적으로 기피되고 있다"고 말했다. 그래서 우리(필자)들이라도 한 번 각자의 위치에서 철퇴를 생각해 보자고 해서 모은 글이 이 책이다.




그는 국력 쇠퇴의 가장 객관적이고 오차가 적은 지표는 인구감소이며 인구감소는 일본이 세계에서 가장 빠른 속도라면서, "그렇다면 '어린이를 낳지 않고 노인만 많은 날'에서 사람들이 어떻게 풍부하고 행복하게 살 수 있는가에 대한 모델을 일본이 세계에 제시해 줄 의무가 있다"고 말했다. 그는 일본의 성공 모델을 세계에 알리고 싶지만, 지금처럼 대응하다가는 일본은 '해서는 안 되는 모델'을 제시하는 역할을 할 수밖에 없다고 철퇴 준비의 절박성을 호소했다.




이런 그의 호소에 응해, 정치, 경제, 의료, 생명과학, 역학, 문필가, 영화 감독, 종교학, 생태 기업 등의 다양한 분야에서 활동하는 사람들이 거시적, 또는 미시적인 차원의 철퇴론을 기고했다. 16명의 글은 1부(역사의 분기점에서), 2부(철퇴의 여러 모습) , 3부(패러다임 전환으로)로 나눠 실렸다.




글 중에는 일부 일본 고유의 내용도 있지만, 기후변화, 저성장, 환경 파괴, 전염병 창궐, 세계 권력 지형 변화 등 세계적인 대전환기를 맞아 우리나라도 긴급하게 대처해야 할 문제가 대부분이다. 이 책의 모든 글에는 이제까지의 삶의 방식과 전혀 다른 대전환 시대에서는 철퇴, 즉 철수가 패배가 아니라  지속가능한 삶을 찾는 지혜라는 생각이 강하게 흐르고 있다. 이 책은 지금은 앞만 보고 달릴 때가 아니라 한 번 멈춰서서 뒤를 돌아보면서 호흡을 가다듬을 때임을 강조한다. 이런 점에서 이 책은 일본보다 더욱 강한 '성장 신화'에 사로잡혀 살고 있는 우리나라 사람들에게 더욱 절실하게 다가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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