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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오태규 Oct 17. 2022

한국의 법조기자들이 참괴하며 읽어야 할 책

특수부, 특수검찰, 죄수, 윤석열

윤석열 대통령은 2021년 3월 3일 검찰총장 직에서 사임했다. 다음 해 3월 9일 실시된 제 20대 대통령 선거에 출마하기 위한 행동이었다. 그가 사임하기 바로 전날인 3월 2일, 검찰총장으로서 마지막으로 한 일이 바로 '한명숙 재판 모해위증 사건' 수사의 주임검사로 허정수 감찰3과장을 지명한 것이다. 추미애 법무장관이 임은정 검사에게 이 사건 수사를 맡긴 것에 대한 되치기 결정이었다.

이후 한명숙 재판 모해위증 사건은 일사천리로 불기소 종결처리됐다. 불기소와 함께 이 사건의 공소시효도 지나면서 한명숙 재판에서 증언을 뒤집은 한만호씨를 모해위증했다는 사람에게, 모해위증을 교사했다는 검사들에게도 법적 책임을 물을 수 있는 방법이 사라졌다.

<죄수와 검사>(뉴스타파, 심성보 김경래 씀, 2021년 4월 30일)는 '정의의 사도'와 '공익의 대변자'를 자처하는 검사들, 특히 특수부 검사들이 자신들의 조직 또는 자신들의 이익을 위해 법의 이름으로 법을 어떻게 농단하는지를 한명숙 사건을 비롯한 몇 개의 사건을 통해 파헤친 '검찰에 대한 고발서'다. 

<뉴스타파>가 한명숙 사건을 처음 보도한 것은 2020년 5월 6일, 이를 책에 담아 출판한 것은 대선을 일 주일여 남긴 2021년 4월 말이다. 책이 사건 최초 보도와 함께 동시 출간됐다면, 아니 이 보도를 다른 미디어들이 달려들어 함께 문제화했다면 아마 20대 대통령의 이름이 바뀌어 있을지도 모른다.

나는 이 책을 읽으면서 두 가지를 뼈저리게 느꼈다. 하나는 한국의 검찰이 무소불위, 견제를 받지 않는 괴물 이권집단이 됐다는 사실이다. 둘은 이를 권력의 폭주를 견제해야 할 한국의 저널리즘이 안이하고 무능할 뿐 아니라 심지어 그들과 동조하며 부끄러움도 느끼지 못한다는 점이다.

당연히 검찰 고발 보도는 검찰과 법원 취재를  위해 10명 가까운 기자들을 파견하고 있는 방송, 신문 등 전통 미디어들이 했어야 마땅하다. 이 책을 쓰고 보도를 한 기자들은 법조를 전문적으로 담당하는 기자가 아니다. 전체 인원이 50명(이 가운데 취재 인력은 20명 정도)에 불과한 탐사보도 전문 매체의 일원일 뿐이다. 큰 규모의 전통 미디어에 비하면 여러 모로 취재 여건이 열악할 수밖에 없다. 그래도 이들은 악조건을 뚫고 검사와 검찰 조직이 감추고 부인하는 사건을 피해자와 죄수, 변호사 등 관계자를 발로 뛰며 두루 만나 취재하고, 방대한 수사와 재판 자료를 구해 퍼즐 조각을 맞추며 괴물 검찰의 실체를 드러냈다. 그런 열악함을 극복한 힘은 사실과 진실을 가감 없이 전달하겠다는 투절한 '저널리즘 정신'이었을 것이다.

이 책을 보면서 <한겨레> 창간 때가 생각났다. 1988년 창간 당시 한겨레신문 기자들은 한 동안 동료 기자들의 거부로 청와대뿐 아니라 일선 경찰서 기자실에도 들어갈 수 없었다. 검찰과 법원 기자실은 말할 것도 없었다. 그런데 놀라운 일은 한겨레신문에 특종이 가장 많이 쏟아진 때가 그때였다. 억울한 일은 당한 시민과 재소자 등의 제보가 끊이지 않았고 기자들은 여기저기 뛰어다니며 이들의 제보를 확인해 특종 기사를 터뜨렸다. 그러나 묘하게도 기자들이 기자실에 들어가면서부터 이런 특종이 점점 사라지고 있다. 최근 나는 '기자실이 오히려 좋은 기사를 쓰는 데 방해가 된다'는 가설을 주장하곤 하는데, 마침 이 책이 내 가설을 뒷받침해 주는 것 같아 반가웠다.

이 책을 쓴 심인보, 김경래 기자는 내가 봐도 대단하다. 취재는 이렇게 해야 하는구나 하는 전범을 보여주고 있기 때문이다. 검사의 입에 주로 의존하는 검찰 출입기자들과 달리, 검사들의 비우호적인 자세와 부인, 심지어 방해를 뚫고 진실에 한 발 한 발 다가서는 모습이 존경스럽기까지 하다. 4대강 문제, 조세 피난처 보도 등 뉴스타파의 탐사보도 명성은 이미 많이 알려져 있지만, 나는 두 기자가 쓴 책을 읽으면서 "이제 뉴스타파가 한국의 저널리즘을 대표하는 매체로 확실하게 자리 잡았구나"하는 평가를 하게 됐다.

이 책은 크게 두 사건을 취급하고 있다. 하나는 김형준 전 서부지검 부장검사(전 남부지검 증권범죄합동수사단장, 박희태 전 국회의장 사위) 스폰서 사건을 축으로 한 검찰의 이권 개입 실태 폭로이고, 또 하나는 한명숙 전 국무총리를 겨냥한 검찰의 정치 수사를 추적하는 것이다. 두 사건에 공통된 점은 검찰이 죄수들을 바둑판의 돌처럼 부리며 사건을 자신의 의도대로 끌고 간다는 것이다. 검찰은 외부와 통화, 가족 만남, 외부 음식 제공 등 조그만 혜택에 목 말라하는 죄수의 절박핮 심정을 활용해, 죄수를 정보 제공자나 수사 조력자, 심지어 재판 조작의 도구로 삼는다. 아마 모르면 몰라도 죄수를 활용한 수사가 '특수부 검사들의 오래 된 비밀병기'라는 사실을 폭로한 것도 이 책이 처음이지 않을까 생각한다.

김형준 사건을 추적하다 보니까 전직 검사로서 주가 조작 등 법조계 금융 사기의 거물인 박수종이 튀어나오고, 또 그의 금융 쪽의 사기 단짝인 유준원 상상인 그룹 대표가 고구마 줄기처럼 딸려나온다. 그런데 놀라운 것은 이들의 범죄를 눈 감아주고 비호해주는 세력이 현직  검사들이라는 것이다. 이 책을 보면, 이런 금융사기범 박수종 변호사와 통화하거나 문자를 주고받은 것으로 필자가 획인하 현직 검사 실명이 22명이 나온다. 이 중에는 윤석열 정부의 초대 검찰총장으로 기용된 이원석, 대통령실 법률비서관으로 있는 주진우 등의 이름도 있다. 당시 청와대 민정수석실 행정관으로 있던 주진우 검사는 주가조작범은 박 변호사와 가장 많이 전화 통화와 문자 송수신을 했다. 이 대목을 읽으면서 분노와 절망의 탄식이 절로 나오지 않을 수 없었다. 그래도 실명으로 적어놨기에 이런 정도라도 알 수 있는 게 다행이라면 다행이었다. 이김에 한국의 법조 기자들도 기사를 쓸 때 뭉퉁그려 애매하게 "검찰은~" "법원은~"으로 쓰지 말고, "000 검사는~" "000 판사는"이라고 검사, 판사의 이름을 적시하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지 알았으면 좋겠다.

하나의 기사가 금세 세상을 바꾸기는 어렵다. 그러나 핵심을 찌르는 기사는 언젠가 위력을 발휘하기 마련이다. 한반도에서 조그만 나비의 날개짓이 태평양 건너 캘리포니아에서 폭풍을 불러일으킬 수 있다는 '나비 효과'를 생각하면 좋을 것이다. 나는 이런 저널리즘을 '뇌관 저널리즘'이라고 작명해 부르고 있다. 아무리 작은 매체라도, 아무리 하잖아 보이는 기자라도 폭탄의 뇌관을 정확히 타격하는 기사를 쓴다면 언젠가 큰 폭발력을 발휘할 수 있다. 나는 <검사와 죄수>라는 책과 보도가, 지금 무소불위의 권력을 누리고 있는 듯한 검찰을 '시민의 검찰'로 바꿔내는 큰 동력이 될 것이라고 믿는다. 첨언하면, 이 책과 함께 특수부 검사들의 세계를 그린 영화 <더킹>을 함께 보면 뒤틀린 특수 검사의 모습을 더욱 입체적으로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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