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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오태규 Oct 31. 2022

오보는 왜 발생하고 어떻게 막을 수 있나?

저널리즘, 저널리스트, 허위보도, 대본영보도

정확함과 신속함을 동시에 추구해야 하는 뉴스의 속성상 오보를 100% 막기는 어렵다. 정확함을 추구하다 보면 신속성을 손상하게 되고 신속성을 추구하다 보면 정확성을 등한시할 수밖에 없는 구조적인 함정을 피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따라서 뉴스를 다루는 보도기관이나 기자는 이런 구조적인 약점을 인지하면서 오보를 내지 않도록 신경을 곤두세우지 않으면 안 된다. 또 오보를 냈을 경우에는 신속하게 정정하고 사과해야 한다.


지난 7월에 미국의 유력지 <뉴욕타임스>의 저명한 칼럼니스트 8명이 자신들이 이전에 썼던 칼럼과 관련해 '내가 틀렸다(I was wrong)'고 반성하는 '정정 칼럼'을 내보냈다. 이 기획은 국내 미디어에도 많이 소개되며 신선한 충격을 줬다. 오보를 해도 '나 몰라라' 하고 무시하고 지나가는 최근의 한국 미디어 풍조에서 세계 최고의 권위를 자랑하는 신문이 보여준 참신한 기획은 충분히 박수를 받을 만하다.


그러나 정확성과 객관성, 투명성을 핵심으로 하는 저널리즘의 원칙과 가치에 비추어 보면, <뉴욕타임스>의 이런 기획은 당연한 일이다. 오히려 파격으로 받아들이는 것이 '파격'이라고 할 수 있다. 그만큼 요즘 세상의 저널리즘 원칙이 무너져 있다는 걸 보여준다고 할 수 있다. 


<오보>(암파선서, 고토 후미야스 지음, 1996년 5월 초판)는, <아사히신문>에서 30여년 기자 생활을 했던 저자가 일본의 오보 사례를 중심으로 오보의 발생 원인과 방지 대책을 살펴본 책이다. 나는 이 책을 도쿄특파원 시절에 간다의 고서점가에서 샀다. 당시 한 번 읽어봤으나 내용이 가뭇거리던 차에 <뉴욕타임스>의 정정 칼럼을 계기로 다시 읽었다.


저자는 서문에서 1922년에 일어나 두 가지 일을 환기하며 글을 풀어간다. 하나는 <아사히신문>이 기사심사부를 만든 일이고, 또 하나는 당시 미국의 대표적인 저널리스트였던 월터 리프먼이 <여론>이란 책을 낸 것이다. 둘 다 공통적으로 오보가 인권 침해를 일으키고 독자의 신뢰를 잃을 위험성을 경고하고 있다는 점을, 저자는 지적했다. 그러나 저자가 보기에 이런 경종에도 불구하고 70여년이 지난 시점(책 출판 시기)에도 오보가 빈발하는 상황에는 큰 변화가 없다. 인터넷의 등장과 함께 미디어 기술과 영향력이 더욱 발전하고 커진 지금도 더욱 악화됐으면 됐지 나아지지 않았다.


저자는 먼저 마쓰모토 사린 사건 등 사건 기사의 오보 예를 살펴보면서, 오보의 원인을 진단한다. 오보가 되풀이되는 원인은, 첫째 수사당국에 정보를 지나치게 의존하고, 둘째 마감시간의 압박 때문에 확인을 충분하게 하지 않고 '개문발차' 식 보도를 하며, 셋째 다른 매체보다 앞서겠다는 과도한 경쟁심리가 작용하기 때문이라고 진단한다. 


한국의 오보 원인이라고 해서 이와 다를 것이 없다. 오보를 내고도 차일피일 정정을 미루며 어쩔 수 없는 상황에 몰려서야 '울며겨자 먹기 식'으로 정정과 사과를 하는 행태도 판박이다.


이 책은 '제1보의 중요성'도 지적하고 있다. 첫 보도가 나가면 모두 거기에 집착해 다른 이견이 나와도 무시하고 자기들의 첫 보도만 옳다고 생각하는 경향이 강해진다는 것이다. 그러니까 첫 보도부터 선입견을 배제하고 정확하게 사실을 확인하고 쓰는 것이 매우 중요하다고 말한다. 


돌맹이 하나가 개구리를 죽게 하듯이, 하나의 기사가 사회 여론을 잘못된 방향으로 움직이는 위험성도 지적한다. 저자는 그 대표적인 예로 1923년 관동대지진 때 조선인들이 폭동을 일으키고 우물에 독물을 풀어넣는다는 무책임한 기사를 내보내 수천명의 조선인이 학살 당한 사건을 들었다. '소문=중요도*애매함'이라는 공식이 있는데 정확한 정보 없이 사회적인 영향이 큰 사건을 보도하면 참사가 벌어질 수 있다는 것을 관동대지진 때 보도의 예가 잘 보여줬다는 것이다.


저자가 보기에 오보보다 더 악질적인 것은 '허보'(허위보도)이다. <아사히신문>의 사진기자가 1989년에 오키나와의 바다 속에 잠수해 산호초에 'KY'라는 글자를 써놓고 사진을 찍었다. 그리고 이를 환경파괴의 대표적인 사례로 대대적으로 보도했다. 이 허위보도는 사진을 미심쩍게 생각한 그 지역의 주민과 환경단체의 문제제기로 밝혀졌고, 사장이 사퇴하는 사태까지 불러왔다. 이밖에 옛 정치인의 일기를 기자가 생각한 주제게 맞게 날조한 일이나 <NHK>가 다큐멘터리를 찍으면서 연출한 것이 허보의 예로 등장한다.


그래도 이런 것은 개인적인 공명심이 작용해 만든 사건들이지지만, 더욱 심각한 것은 정보조작에 놀아나는 것이다. 1931년 만주사변부터 시작해 1945년 태평양전쟁 패전까지 일본 미디어는 이른바 '대본영 발표'를 그대로 옮기는 대본영 보도로 일관했다. 일본이 전투에서 밀리거나 패하고 있는 것을 알면서도 군부의 발표에 영합하면서 허위보도를 해왔다.


이런 보도가 지금 한국에서 없다고 할 수 없다. 정도의 차이는 있겠지만 대통령 해외순방 보도도 '대본영 보도'의 일종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대통령실 출입기자들이 전한 윤석열 대통령의 영국 엘리자베스 2세 조문 뉴스가 일종의 대본영 보도일 것이다. 객관적이고 종합적인 사실을 외면한 채 대통령실의 일방적인 발표만 전달하는, 지금과 같은 대통령 해외 순방 기사는 이제 끝낼 때도 됐다.


그러면 오보와 허보는 어떻게 방지할 수 있을까. 저자는 확인을 강조한다. 확인에서 시작해 확인에서 그친다고 해도 좋을 만큼 각 단계에서 확인에 힘을 써야 한다고 말한다. 또 미디어 종사자들이 자신이 하는 일이 얼마나 공공성이 크고 영향력이 큰지 인식하고 긴장감을 가져야 한다고 말한다. 저자는 표현의 자유와 인권의 상극, 정확함과 신속함의 모순 속에서 오보가 필연적으로 나올 수밖에 없다는 안이한 주장에 동조하지 않고, 특종이라도 완전하게 확인이 끝나지 않을 때까지 보도하지 않는 용기가 필요하다고 말한다. 


당시 하루 단위로 속보가 이뤄지던 종이신문 시대와 달리 지금은 초 단위로 속보 경쟁이 이뤄지는 인터넷 시대를 맞아 오보의 가능성이 더욱 커졌다. 또 오보의 파급력도 더욱 강해졌다. 이럴 때일수록 오보를 방지하기 위한 노력을 더욱 강화해야 한다. 또 오보 방지를 위한 기구나 대책을 강화하고 그래도 오보가 발생했을 때는 신속하게 정정하고 사과해야 한다. 이것이 점점 영향력이 커지는 시기에 미디어가 스스로 져야 할 책임이다.


저자는 오랫동안 기자생활을 하면서 사실을 전하는가, 인권에 배려는 하고 있는가, 공정과 균형은 있는가 하는 세 가지 기준으로 기사를 판단해왔다면서, 그 셋을 관통하는 가장 중요한 포인트는 정확함이라고 확신하게 됐다고 말했다. 한국의 저널리스트들이 가슴에 새겨들었으면 좋을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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