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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오태규 Jan 30. 2023

'인디언 기우제' 식 검찰 수사에 대한 통렬한 비판

강기석, 무죄, 한명숙 재판, 특수부 검사, 엄희준, 이재명


옛 사람들은 비가 오지 않으면 하늘이 노해서 그랬다고 생각하고, 기우제를 지냈다. 인디언들도 기우제를 지냈다. 그런데 특이하게도 인디언들은 비가 올 때까지 몇 날 몇 일이고 기우제를 계속했다. 성공률 100%의 기우제다. 여기서 '인디언 기우제'라는 말이 생겼다.




<경향신문> 편집국장 출신의 고참 언론인, 강기석씨는 언젠가 광주에서 열린 강연회에서 인디언과 관련한 이런 우화를 들었다. 그리고 2010년 1월부터 2015년 8월까지 장장 5년 7개월에 걸친 한명숙 전 총리 불법 정치자금 수수 사건 재판을 지켜보면서 불현듯 그때 들은 인디언 우화가 떠올랐다. 검찰이 한 번 표적을 정해 놓고 수사하면 유죄가 나올 때까지 갖은 방법을 다 동원하는구나, 검찰 수사 방식이 마치 '인디어 기우제'와 똑같구나 하고 무릎을 쳤다. 그래서 그때 그가 처음 만들어 쓴 용어가 '인디언 기우제 식 수사'라는 말이다. 이후 이 용어는 검찰의 표적 수사, 정치 수사를 꼬집는 관용어로 굳어졌다.




<무죄>(레디앙, 강기석 지음, 2016년 2월)는 강씨가 한명숙 사건 재판을 거의 빠짐없이 참관하며 기록한 치밀한 재판 기록이자, 인디언 기우제 식 검찰 수사에 대한 분노에 찬 현장 고발장이다.




재판 당시 노무현재단 상임 운영위원이었던 그는 처음엔 재단 이사장이었던 한명숙 전 총리 재판에 의리로 참관했다. 그러다가 검찰의 억지 논리와 안하무인 태도를 목격하고, 잠자던 기자정신을 깨웠다. 참관인에서 기자로 변신해 한명숙 1차재판(곽영욱 사건, 1심 13차례 공판), 2차 재판(한만호 사건, 1심 23차례 공판)의 1심을 전부 방청하며 기록하고 보도했다. 대법원에서 유죄 확정 판결이 난 한만호 사건 재판의 경우엔 선고 공판까지 모두 다섯 차례 열린 2심 재판도 3번이나 방청했다. 그는 신문사에서 기자 생활을 하면서 한 번도 정치부 기자나 법조 담당 기자를 한 적은 없었지만, 40여년의 언론인 생활 중 처음으로 그리고 가장 열심히, 정치와 법조가 얽힌 이 사건을 취재했다고 말했다. 참고로, 1차 곽영욱 사건은 대법원에서 무죄 확정 판결이 났다.




이 책은 무죄 확정 판결로 끝난 곽영욱씨 사건은 제외하고, '1심 무죄-2심 유죄-대법원 유죄 확정 판결'로 이어진 한만호 사건 재판에 촛점을 맞춰 쓴 생생한 현장 기록이다. 부실 기소로 1차 재판(곽영욱 사건)의 1심에서 무죄 판결이 내려지자, 검찰은 무죄를 미리 예견하고 다른 카드를 준비라도 해 둔 듯이 한만호 사건을 들고나와 한 전 총리를 재차 기소했다. 재판의 쟁점과 공방은 이 책에 자세하게 나와 있으니 여기서는 대강의 줄거리만 살펴본다.




한명숙 2차 재판인 한만호 사건에서 검찰 기소의 핵심은, 한 전 총리가 같은 지역구에서 건설업을 하던 한만호씨로부터 3억원씩 모두 세 차례 9억원을 받았다는 것이다. 그러나 검찰은 한만호씨의 증언에만 기댈 뿐, 돈을 줬다는 시간과 장소도 특정하지 못하고 기소를 감행했다. 이런 검찰의 기소가 결정적으로 무너진 것은 한만호씨가 2010년 12월 20일 열린 1심 2차 공판에서 "증인(한만호)은 피고인(한명숙)에게 어떠한 정치자금도 제공한 사실이 없습니다. 비겁하고 조악한 저로 인하여 누명을 쓰고 있는 것입니다"라고 검찰에서 한 진술을 번복하면서다.




기소의 결정적인 기둥인 한만호씨가 증언을 번복하면서 세게 뒤통수를 맞은 검찰은 당황하면서도 한 번 표적을 삼은 한 전 총리를 놓아주지 않고 물고 늘어졌다. 그들이 동원할 수 있는 수법이란 수법은 죄다 동원했다. 그중에 가장 독특한 수법이 감옥에서 한만호씨로부터 한 전 총리에게 돈을 줬다는 말을 들었다는 죄수 동료들을 증인을 불러 법정에 세운 것이다. 돈을 준 사람이 안 줬다고 증언을 번복하니까, 그로부터 돈을 줬다는 말을 들었다는 죄수 여럿을 불러 한만호가 돈을 주고도 말을 바꿨다는 것을 간접적으로 증명하려고 꾀를 낸 것이다. 이와 관련해 당시 수사를 하던 특수부 검사들이 사실상 인질인 죄수를 동원해 어떻게 증언을 조작했는지는, <뉴스타파>의 기자들이 낸 <죄수와 검사>라는 책과 <리포액트>의 허재현 기자가 최근 <시민언론 민들레>에 쓴 기사를 보면 잘 알 수 있다. 지금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를 수사하고 있는, 대표적인 친윤석열계 검사인 엄희준 서울중앙지검 반부패수사 제1부 부장검사가 당시 증언 조작에 어떻게 관여했는지도 구체적으로 나온다.         




한만호 사건도 곽영욱 사건과 마찬가지로 1심에서는 무죄, 즉 검찰의 완패로 끝났다. 한 전 총리도 드디어 지루한 법정 싸움에서 벗어나는 듯했다. 그러나 한 번 찍은 피의자에게는 인디언 기우제처럼 유죄가 나올 때까지 수사를 계속하는 것을 신조로 삼고 있는 특수 검사들이 거기서 포기할 리가 없었다. 그들은 2심에서 무죄를 때린 1심 재판부를 맹렬하게 비판하며 역전극을 노렸고, 이에 편승한 2심 재판부(주심 정형식)는 1심을 뒤집고 유죄판결을 내렸다. 2심 판결 뒤 2년여 만에 열린 대법원 전원합의부 판결도 8대 5로, 2심의 손을 들어줬다.




문제는 2심 재판부가 새로운 증거도 없이, 결정적으로 증언을 번복한 한만호씨를 한 번도 부르지 않은 채 판결을 뒤집었다는 사실이다. 강씨는 이에 대해 "해괴한 것은 현장을 열심히 들여다본 사람들(1심 재판부)은 한명숙 전 총리의 무죄를 확신한 반면, 현장을 제대로 살펴보지도 않은 사람들(2심 재판부)은 너무도 쉽게 유죄로 결론을 내렸다"고 한탄했다. 또 유죄를 때린 재판부와 검찰이 피고인의 죄를 증명하는 것이 아니라 피고인에게 무죄를 증명하라고 한 뒤집힌 재판, 어이없는 비상식적인 재판이라고 꼬집었다. 




이런 탓인지 한명숙 재판은 대법원 확정 판결이 난 지 7년이 훌쩍 지났는데도 논란이 끝나지 않고 있다. '현실의 법정'에서는 심판이 끝났지만 '역사의 법정'에서는 아직 심판이 끝나지 않았음을 보여주는 것이다.




이 재판과 관련해 가장 안타까운 것 중 하나는 언론, 특히 법조 담당 기자들의 역할이다. 신문사를 떠난 지 꽤 오래 된 강씨가 한명숙 재판에 거의 개근을 하면서 취재를 한 거의 유일한 언론인이었다는 점이 제 역할을 못하고 있는 법조 담당 기자들의 현주소를 잘 보여준다.




법조 담당 기자들은 그들이 의도했든 의도하지 않았든 변호사와 피고인의 말을 외면하고 검사의 말만 진실인 것처럼 포장해 옮기는 데 급급했다. 아마 그들이 재판정에 두 눈을 부릅뜨고 검찰과 피고인의 공방을 지켜보고 있었다면 검찰이 그렇게 부실한 증거 자료를 내밀고 증언을 조작하며 안하무인의 태도를 취할 수 없었을 것이다. 재판부도 긴장하고, 결과도 달라졌을지 모른다. 이런 점에서 언론은 검찰과 함께 죄 없는 사람을 죄 있는 사람으로 만든 공범 내지 방조범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강씨는 이 책 서문에서 "한명숙 전 총리에 대한 재판 과정에서 내가 모을 수 있는 사실은 다 모아서 그걸 바탕으로 한 내 의견은 무죄다"라면서 "이 책을 다 읽은 후 독자들이 갖게 될 의견이 궁금하다"고 말했다. 나는 이 말을, 검찰이 현실의 법정에서는 흰콩을 검은콩을 만드는 신공을 발휘했지만 역사의 법정에서는 흰콩은 흰콩일  뿐이라는, 현장을 가장 열심히 지켜본 기자의 자신감의 발로로 받아들였다. 




이 책은 대장동 사건과 관련해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를 표적 삼아 집요하게 물고 늘어지고 있는 검찰 수사 방식과 검찰 중심 보도에만 매달리는 미디어의 태도를 구조적으로 이해하는 데 큰 도움을 준다. 그러나 더 중요한 것은 이해하는 것이 아니라 어떡하면 인디언 기우제 식 수사를 막고 검언유착의 고리를 끊을 수 있을 것인가다.  




이 책의 마지막 장을 닫으면서, 민주주의를 지키기 위해 여러 할 일이 있지만 "하다 못해 담벼락에 욕이라도 하라"는 김대중 전 대통령이 말이 더욱 의미심장하게 다가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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