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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오태규 Jul 31. 2023

변방의 몸부림에서 '저널리즘의 재건'을 탐색한다

신문재생, 일본신문, 저널리즘의 위기, 지방신문

신문의 위기, 저널리즘의 위기는 우리나라만의 문제가 아니다. '신문 대국'이라고 불리는 일본도 예외가 아니다. 우리나라의 처지에서 보면, 일본의 신문은 아직도 엄청난 부수를 유지하며 큰 힘을 발휘하고 있다.

하지만 일본 언론계의 위기의식은 예상보다 강하다. 신문의 위기, 저널리즘의 위기를 진단하는 서적의 수로 따지면, 우리나라와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위기의 수준이 높다. <신문 재생>(평범사신서, 하타나카 데쓰오, 2008년 12월)도 그런 책 중 하나다.

이 책은 신문의 위기에도 불구하고 저널리즘에는 반드시 미래가 있다고 말한다.

신문기자 출신으로 도쿄대에서 저널리즘을 공부하고 있는 저자는, 일반적으로 신문의 위기설을 말할 때 '위기'의 실상은 '대신문의 위기'에 불과하다고 단언한다. 저자는, 신문을 단지 '업계'와 '산업' 또는 '상품'으로 보는 것은 일면적인 고찰에 불과하다고 말한다. 즉, 비지니스 관점만으로 신문 위기를 설명하다 보면 신문의 존재 이유를 따져묻지 못하게  된다는 것이다.

저자는 근대 초 일본에서 '신문'과 '신문지'라는 말은 인간의 공공적인 의식활동과 정신활동을 계발하고, 저널리즘이라는 의식의 활동을 촉진하며 사람과 조직 상호 관계에 의해 만들어진 현상을 가리키는 말이었다면서, 이런 애초의 개념을 살리는 것을 '신문 재생'이라고 본다. 그리고 그런 재생의 움직임을 엘리트 기득권 세력인 중앙지에서가 아니라 변방의 지방지의 움직임에서 찾는다. 저자의 설명에 따르면, 변방에 위치한 지방지에서 일하는 기자들이 오히려 자신의 주변적인 위치 때문에 신문과 신문지의 존재 이유, 즉 저널리즘의 존재 이유를 더욱 잘 느낄 수밖에 없다고 말한다. 같은 이유로 저널리즘의 위기를 극복하려는 노력도 더욱 가열찰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무릇 모든 변화는 기득권이 자리 잡고 있는 중앙이 아니라 가장 약하고 핍박 받는 변방에서 일어난다는 점을 생각하면, 정곡을 찌르는 문제의식이다. 

저자는 이런 관점에서 세 지방신문의 신문 재건 노력을 차례로 소개한다. 첫 번째 사례가 경영난으로 폐간된 가고시마신보사 퇴직 기자들의 얘기다. <가고시마신보>는 1959년 창간됐으나 경영난을 이기지 못하고 2004년 5월 문을 닫았다. 이 신문의 장점은 '모든 독자를 한 번은 모두 지면에 등장시킨다', '현민의 눈높이 뉴스를 지향한다'는 전 사장의 말에서 알 수 있듯이, 지방면을 매우 중시했다. 

신문 폐간을 아쉬워한 퇴직 기자들은 1년 뒤 'NPO 가고시마신보'라는 친목단체를 만든 뒤 '모두의 네트워크 가고시마'라는 인터넷 홈페이지를 개설한다. 그리고 '발언하는 시민'을 지향하는 언론 활동을 한다. 이들의 활동이 지금도 계속되고 있느지는 알 수 없다. 하지만 저자는 이 신문사 퇴직 기자들의 움직임에서 기존 대신문사만을 대상으로 한 비지니스론, 산업론이 간과하기 쉬운 신문의 공공적인 역할을 찾아볼 수 있다고 말한다.

두 번째 사례는 도쿄 주변에 있는 가나가와신문사의 노력이다. 가나가와현은 현세로만 따지면 일본에서 손가락 안에 드는 현이다. 하지만, 도쿄의 주변에 있는 탓에 강한 지방색을 내기 힘들다. 이 신문사는 수도권 주변의 현에 위치한 애매모호한 지방지의 한계를 개방적인 인터넷 사이트 '가나로코'를 만들어 극복하려고 했다. 참고로 일본 신문들은 아직도 뉴스를 인터넷에 전면 공개하지 않는다. 우리나라와 달리, 유료회원에게만 공개하거나 기사의 일부만 보여주는 데 머물고 있다. 

하지만 <가나가와신문>은 2005년 일본 신문사로서는 최초로 쌍방향의 블로그 기능을 가진 사이트를 개설했고, 대박을 터뜨렸다. 우리나라에서는 너무 당연한 일이지만, 일본에서는 '상식 파괴'의 행동이었다. 

이 사이트를 주도한 기자는 사이트를 개설한 이유를 묻는 질문에 '지방지 기자 특유의 불완전 연소감' 때문이라고 말했다. 지방지 기자라 지방의 현실을 잘 아는 것 같지만 적은 인원에 이것저것 다양한 분야를 취급하다 보니 '점'만 알고 '선'이나 '면'은 모르는 것이 지방지 기자의 실태라면서, 개방형 사이트 개설을 이런 점을 타개하려는 노력의 하나였다고 설명했다. 

세 번째는 지방지 창간 실폐 사례다. 간사이지역에 있는 시가현은 지방신문이 없는 희귀한 곳이다. 주변에 오사카, 교토, 나고야라는 큰 도시가 버티고 있어, 지방신문을 만들어도 유지하기 힘든 탓이다. 그러고 보니, 내가 오사카총영사 시절 관할 지역(오사카부, 교토부, 시가현, 와카야마현, 나라현)의 지방 신문사를 순방했는데, 시가현에만 지방지가 없어 이상하게 생각했던 기억이 난다. 이 책을 읽으면서 비로소 이유를 알게 됐다.

이런 공백을 아쉬워한 시가현의 상공인들이 중심이 되어 2005년 4월 <모두의 시가신문>을 창간했다. 하지만 경쟁 신문사의 방해와 우연한 사건 등 여러 사정이 겹치면서 반년 만에 문을 닫았다. 이 신문은 저널리즘이 아니라 현민을 위한 정보 인프라 구축을 목적으로 내세웠다. "지방신문은 지역에 뿌리를 내린 정보를 모두 공유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드는 장치"라고 봤기 때문이다. 이런 취지에 따라, 이 신문이 가장 주력했던 것이 참여 민주주의다. 신문은 논의의 장소를 제공하고, 독자들이 논의에 참석하고, 신문은 다시 논의에 관한 기사를 쓴다는 발상이다.

저자는 신문의 위기, 신문의 미래를 살피면서 변두리 신문에 눈을 돌린 이유를 "주변은 가장 변화가 일어나기 쉬운 곳이고, 실패도 성공도 포함해 미래의 모습을 볼 수 있는 장소이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즉, 변두리의 작은 신문사는 대신문사처럼 경영 자원이 풍부하지 못한 탓에 쉽게 곤경에 처하고 모든 수단과 방법을 동원해 곤경을 벗어나려고 애써야 한다.

 또 신문의 재생을 산업 규모의 재생이 아니라 공공권의 재생으로 보는 저자는, 이런 공공권 재생의 노력이 가장 잘 나타날 수밖에 없는 곳도 지역 밀착 성향이 강한 지방신문이라는 점에서 지방신문의 노력에 초점을 맞췄다고 말했다.

이 책을 읽으면서 우리나라 지방신문은 어떤 노력을 하고 있는지 궁금했다. 대부분의 지방지가 '건설회사의 부속물'으로 전락한 암울한 현실, 지역 밀착보다는 중앙의 소식 베끼기에 몰두하는 모습이 먼저 눈에 어른거렸다. 하지만 <경남도민신문>의 김주완 기자가 했던 것처럼 지역 인물 발굴하기, 지역 역사 발굴하기의 의미 있는 작업이 없는 것도 아니다.

이 책이 던져주는 의미는 변두리에 있기 때문에 더욱 위기의 본질이 잘 드러나고 그 위기를 극복하기 위해 더욱 절박하고 처절하게 노력할 수밖에 없는 지방신문과 기자들의 모습에서, 저널리즘 재건의 진정한 의미를 찾아봐야 한다는 얘기라고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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