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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오태규 Aug 07. 2023

미국 언론 분석해보니, '기득권세력의 선전도구'였다

여론조작, 놈 촘스키, 에드워드 허먼, 뉴욕타임스, 베트남전쟁

노엄 촘스키(MIT 교수)는 미국을 대표하는 '세계적인 지성인'이다. 그는 지금도 전 세계에서 벌어지는 여러 사회 문제를 눈을 부릅뜨고 지켜보며, 약자의 입장에서 비판적 발언을 하고 있는 노학자다. 그의 얘기를 듣다 보면, "아!"하는 탄성과 함께 자연스럽게 무릎을 치게 되는 경우가 많다.  


사건과 사안의 배후를 꿰뚫어보는 그의 날카롭고 통렬한 비판은, 수많은 세계 사람들의 찬사와 경탄을 자아내곤 한다. 우리나라에서도 예외는 아니다. 어느 도서관을 가든 그의 책이 꽂혀 있지 않은 곳이 없다. 번역된 그의 책도 헤아리기 어려울 정도다.


<여론 조작-매스미디어의 정치경제학>(에코리브르,  노엄 촘스키·에드워드 허먼 지음, 정경옥 옮김, 2006년 4월)은, 그의 저작 중에서도 매우 두꺼운 책이다. 색인까지 무려 640쪽에 이른다. 공저자인 에드워드 허먼은 펜실베이니아대 와튼스쿨 명예교수로 미디어 정치경제학의 권위자다.  이 책은 현대 매스미디어의 속성과 생리를 파헤친 고전으로 잘 알려져 있다. 


이 책은 미국의 외교정책을 비판한 책이자, 미국의 언론이 잘못된 외교정책을 정부의 의도대로 어떻게 전달하고 있는지를 분석한 언론 비판서다.


이 책은 모두 7장으로 구성돼 있다. 1장에서는 대중매체가 선전매체의 역할을 하게 만드는 힘을 '선전 모델'이라는 분석 도구를 통해 설명한다. 2장부터 6장까지는 실제 언론 보도에서 선전 모델이 어떻게 작동하고 있는지를 구체적인 사례를 들어 보여준다. 7장은 결론이고, 책 끝에는 본문에 담지 못한 부록 3개가 붙어 있다.


저자들이 이 책에서 말하는 선전 모델은, 쉽게 말해 돈과 권력이 뉴스 보도를 걸러내고 반대 의견을 무시하며, 정부와 우세한 사적 이익집단이 자기들이 하고 싶은 말을 대중에게 전달하도록 만드는 장치를 가리킨다. 두 저자는 뉴스를 여과하는 장치를 큰 항목별로 분류하면, 다음의 다섯 가지가 있다고 한다.


(1) 집중된 소유권, 소유자의 부, 거대 어론기업의 수익 지향성, (2) 언론의 중요 수입원인 광고, (3) 정부, 기업, 그리고 이들 일차적인 정보원이자 권력의 대리인들로부터 자금과 인정을 받는 '전문가'가 제공하는 정보에 대한 언론의 의존, (4) 언론을 훈육하는 역할을 하는 '강력한 비난', (5) 국가적인 종교이자 통제 메커니즘으로서 '반공주의'. 


저자들은 "이 요소들은 상호작용을 하면서 서로를 보강한다. 이 여과 장치들은 뉴스의 원료를 연속적으로 걸러내어 인쇄하기 좋게 세탁한다. 또한 담론과 해석의 전제를 규정하고, 뉴스 가치의 우선순위를 결정하며, 아울러 선전 캠페인의 원칙과 역할도 설명한다"고 말한다.


이런 선전 모델이 가설이라면, 2장부터 6장까지는 가설을 증명하기 위해 주요 외교 사안과 정책을 어떻게 언론이 보도했는지 살피보는 내용들로 채워져 있다.


 2장에서는, 1984년 폴란드에서 살해된 신부 에르치 포피엘에 관한 보도와 남미의 수 많은 성직자 등이 살해된 사건 보도를 구체적으로 비교하면서 <뉴욕타임스> 등 미국의 주요 언론이 이중 잣대로 폴란드는 키우고 남미는 줄이는 과정을 파헤친다. 제목도 '가치 있는 희생자와 무가치한 희생자'로 돼 있는데, 미국에 가치 있는 희생자 보도는 중시하고 미국이 볼 때 가치 없는 희생자는 무시한다.


3장에서는 1980년대에 실시된 남미 3국, 엘살바도르, 과테말라, 니카라과의 선거 보도를 비교한다. 이 장의 제목은 '제3세계의 정당한 선거 대 무의미한 선거'다. 짐작할 수 있듯이, 미국의 주요 언론들은 미국이 뒤에서 지원하는 엘사바도르와 과테말라의 독재정권 아래서 실시된 선거는 아주 의미 있는 것으로 평가하고 보도한다. 반면, 앞의 두 나라보다 훨씬 민주적인 니카라과의 선거는 그 나라가 미국에 반대하는 산디니스타 정권이라는 이유로 합당한 대접을 해주지 않는다. 4장에서는 1981년 5월 31일 로마 성베드로 광장에서 벌어진 요한 바오로 교황 암살 미수 사건 보도를 다룬다. 요점은 억지로 소련의 KGB를 끌어들이기 위해 유리한 것은 키우고 불리한 것은 줄이거나 삭제하는 보도를 했다는 것이다.


인도차이나 전쟁을 베트남과, 라오스와 캄보디아로 나눠 각각 분석한 제5장과 제6장이 사례 분석의 백미라고 할 수 있다. 이 부분을 읽다 보면, 마치 베트남 전쟁사의 이면을 생생하게 들여다보는 듯한 느낌을 받는다. 미국의 입장에서 어떻게 베트남을 비롯한 인도차이나 전쟁을 끌고 가려고 했고, 미디어는 그런 정부의 의도를 어떻게 도왔는지가 주요 내용을 이룬다. 


언론은 가끔 미국의 정책을 비판하기도 하는데, 저자들은 이것은 미국의 전반적인 정책의 범위를 넘어서지 않는 수준 안에서 비판일 뿐이라고 말한다. 한마디로 '찻잔 속의 태풍'이자 '부처님 손바닥 안에서 뜀뛰기'라는 얘기다. 저자들은 베트남전 이후 나온, '언론의 과잉 보도로 미국의 국익을 훼손했다'는 내용의 프리덤하우스 보고서를 조목조목 실증적으로 비판하면서 언론 보도는 현실을 추수하는 데 그치거나 미국 정책을 옹호했으면 했지, 절대로 정부 정책을 앞장서 비판하지 않았다는 점을 지적했다.


저자들은 제7장 결론에서, "이러한 선전 체계는 최근 수십 년 동안 전국 텔레비전 네트워크의 성장, 점점 비대해지는 언론의 집중화, 공영 라디오와 텔레비전에 대한 우파의 압력, 홍보와 뉴스 관리의 영역과 복잡성 증가로 훨씬 더 효율적으로 변했다"고 말한다. "그러나 이 체계가 언제나 강력한 것은 아니다"면서 "정부와 엘리트 집단의 언론 장악은 베트남 증후군, 그리고 외국 정부를 교란하고 전복하는 데 직접적으로 미국이 개입하는 문제에 대해 대중이 표출하는 적대감을 극복하지 못했다"고 말했다. 선전 방식을 집중화하고 강화하는 중요한 구조적인 변화가 있었지만, 그에 못지 않게 더 광범위한 접근을 위한 잠재적인 반대 세력(대중)이 있었다는 것이다. 


이 책이 나온 뒤 20년 정도가 지난 지금도, 저자들이 결론에서 내보인 희망적인 생각을 유지하고 있는지는 잘 모르겠다. 20년 전보다 정보통신기술이 훨씬 발전됐고, 그와 더불어 여론을 조작하고 조종하는 기득권자들의 술수도 교묘해졌기 때문이다. 적어도 윤석열 정권이 들어선 2022년 이후 우리나라의 언론 환경은, 대중의 비판과 저항에 아랑곳하지 않고  정부가 조종하고 다수 매체가 협력하는 '선전기계'가 너무도 효과적으로 잘 작동하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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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희망을 포기할 수 없다'는 생각에서 이 책의 결론 부분에 나온 몇 몇 구절을 소개한다. 


"언론은 자신을 위해서가 아니라 자유로운 정치 시스템이 작동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해 (수정헌법 제1조의) 보호를 받는다. 결국 중요한 것은 기자나 편집자가 아니라 정부에 대한 시민의 비판이다."(<뉴욕타임스>의 엔서니 루이스)


"다루기 힘든 언론, 고집스런 언론, 어디에나 존재하는 언론은 표현의 자유와 사람들의 알 권리가 지닌 위대한 가치를 보존하기 위해 권력으로부터 시달림을 당할 수밖에 없다."(미국 <국방부 문서> 재판에서 문서를 보도할 권리를 지지하는 판결을 내린 머레이 거페인 판사)


그리고 이 책 마지막은 다음과 같은 구절로 끝난다.


"지역 공동체와 직장 단체, 자체 교육 집단, 그리고 그들의 네트워킹과 행동주의는 사회생활의 민주화와 의미 있는 사회적 변혁을 향한 발걸음에서 기본적인 요소가 되고 있다. 그런 진전이 이뤄진다면 우리는 자유롭고 독립적인 언론을 만날 희망을 품을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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