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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오태규 Aug 14. 2023

'소신파' 러시아통 전 외교관의 '우크라이나전쟁' 진단

우크라이나전쟁, <우크라이나전쟁, 이렇게 봐야 한다>, 외교부

세계 각국의 외교부 중에서 우리나라 외교부처럼 한 가지 생각으로 똘똘 뭉쳐 있는 조직은 없을 것이다. 바로 '친미주의'와 '보수주의'로 말이다. 다른 나라의 경우, 외교관들의 성향은 그 나라 평균치보다 대체로 진보적이라고 한다. 상식적으로 봐도 외국의 문물을 접할 기회가 많기 때문에 그럴 가능성이 높다.




반면, 우리나라 외교관들의 성향은 정반대다. 국내  평균보다 더 보수적이면 보수적이지 절대 진보적이지 않다. 왜 그런지에 대해서는, 몇 가지 설이 있다. 




가장 주요한 설은 해방 이후 우리나라 외교의 주류세력이 친미보수였고, 그것이 년년세세 이어져 내려왔다는 것이다. 즉, 선배와 비슷한 생각을 가지지 않으면 출세를 할 수 없으니 자연스럽게 초창기 주류세력의 생각이 대세로 자리 잡게 됐다는 얘기다. 출신 배경도 영향을 끼쳤다고 한다. 외교관들은 대체로 기득권세력의 자녀들이 많다. 외교관이 될 때는 기득권세력이 아니었다 하더라도 혼맥과 학맥으로 엮이며  기득권세력으로 편입되기 일쑤다. 




그래서 우리나라 외교관을 분류할 때 '친미파냐, 아니냐', '보수파냐, 진보파냐'로 구분하기보다 '주류파냐, 비주류파냐'로 나누는 것이 더욱 적절하다는 게, 나의 생각이다. 물론 예외도 있다.




<우크라이나 전쟁, 이렇게 봐야 한다>(뿌쉬낀하우스, 박병환 지음, 2023년 2월)는 러시아통 전직 외교관이 쓴 책이다. 이 책을 쓴 박병환씨는 외교관 생활 31년 중 러시아에서만 11년 동안 근무한 러시아 전문가다. 현재 유라시아전략연구소장이라는 이름으로 각종 매체에 외교 문제에 관해 활발하게 기고를 하고 있다. 내가 보기에 박씨야말로 우리나라 외교관 출신 중에서 보기 드문 '비친미- 비주류 외교관'이다. 한 번도 만난 적이 없지만 글을 읽어 보니 그렇다. 




이 책은, 박씨가 2021년 10월부터 2023년 2월까지 각종 매체에 기고한 글을 모아 펴낸 것이다. 우크라아니아와 관련한 글 34편을 1부(우크라이나 사태, 어떻게 볼 것인가?)로, 그외 일본, 중국 등과 관련한 글 31편을 2부(외교 단평)로 삼았다.




내가 관심 있게 읽은 곳은 1부, '우크라이나 사태. 어떻게 볼 것인가?'였다. 우리나라의 전문가라는 사람들-대부분 우크라이나 대사 출신-이나 각종 매체가 쏟아내는 분석이 너무 천편일률적이다. 거의 전적으로 서방의 시각에 동조하고, 피침략국이자 약소국인 우크라이나에 동정적이다. 하지만 박씨의 분석은 그런 부류와 전혀 다르다. 미국과 서방의 우크라이나 동진에 관한 러시아의 우려도 감안해야 하고, 맹목적인 서방 추종적인 자세는 옳지 않으며, 우리나라 국익의 관점에서 주체적으로 정세를 봐야 한다는 것이다. 너무 당연한 지적이지만, 이런 얘기가 전직 외교관의 입에서 나왔다는 점만으로도 눈길을 끌기에 충분하다.




박씨는 우리나라의 언론 보도에 대해서도 혹독하게 비판한다.




"평소에도 국제뉴스를 잘 다루지 않는 한국 언론은 독자적인 현장 취재를 거의 하지 못하고 있는 탓인지 영미 언론의 보도를 아무 생각없이 그대로 베끼고 있다. 사정이 이러하니 한국인들이 우크라이나 전쟁을 객관적으로 인식하기란 쉽지 않아 보인다. 결국, 이번 전쟁의 사실상 당사자인 미국, 영국 등 서방의 관점에서만 보게 된다."




한 글자도 더하거나 뺄 필요를 느끼지 않을 정도로, 그의 언론 비판은 정곡을 찌른다.




이 책은 언론에 기고하거나 인터뷰한 글을 모아 놓은 것이기 때문에 중복되는 내용이 상당히 많다. 하지만 기고글이기 때문에 길지 않아 쉽게 읽을 수 있고 주요한 내용이 반복적으로 나오기 때문에 오히려 생각의 정리가 잘 되는 면도 있다.




우크라이나에 관한 그의 주장을 간략히 정리하면, 전쟁이 일어난 원인은 러시아의 영토욕이 아니라 미국과 서방이 우크라이나를 나토에 편입하려고 하면서 안보에 위협을 느낀 러시아가 "코앞의 안보 위협에 대해 선제공격한 것"이다. 전황은 우리나라 언론이 서방의 선전을 받아 전하며 마치 러시아가 곤경에 처한 듯이 보이지만, 러시아의 타격은 심하지 않고 경제는 오히려 제재에도 불구하고 굳건하다. 전쟁의 전망에 대해서는 미국 등 나토 회원국들이 러시아를 고갈시키기 위해 지속적으로 우크라이나에 무기를 지원할 것으므로 러시아가 전쟁의 수렁에서 빠져나오기 쉽지 않다.  




그는 이 전쟁 와중에서 가장 이익을 본 나라는 미국이라면서, 미국은 전쟁을 통해 러시아와 유럽국가의 관계를 완전히 파탄나게 함으로써 유럽국가들을 좌지우지할 수 있게 됐고, 유럽국가에 무기와 러시아 가스를 대체할 셰일가스를 팔아 막대한 경제 이익을 봤고, 러시아를 고갈시켰다고 분석했다. 그는 전쟁 후 국제질서는 러시아가 패배하지 않는 한, 지금과 같은 미국 유일패권은 더는 유지되기 어렵고 다극체제가 출현할 것으로 예상했다. 그러면서 우리나라는 "우크라이나 전쟁이 우리의 전쟁이 되지 않도록 중심을 잡아아 한다"면서 항상 국익을 중심에 놓고 대처할 것을 주문했다. 즉, 침략한 러시아를 편들 수는 없지만 우크라이나에도 인도적인 지원을 넘어 과도하게 지원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고 말했다. 국제사회는 선과 악이 대결하는 무대가 아니라 국가들의 이해관계가 부딪히는 장일 뿐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어쩌랴, 이미 윤석열 대통령은 이미 박씨가 말한 선을 넘어도 한 참 넘었으니. 가치 외교를 앞세우며 우크라이나의 승리가 자유 세계의 승리라는 선악관에 빠져 여차하면 언제든지 우크라이나에 살상무기를 지원할 태세를 보이고 있다.




이 책을 읽으면서 외교 현장에서 일한 경험이 있는 많은 외교관들이 이런 종류의 책을 많이 냈으면 하는 생각이 들었다. 우리나라 외교관들이 낸 책을 보면, 대부분이 외교정책에 전혀 도움이 되지 않는 신변잡기 수준의 잡서다. 




하나의 생각으로 돌아가는 조직은 건강성을 상실할 수밖에 없다. 앞으로 다양한 주장을 담은 많은 전직 외교관들의 책이 쏟아져, 외교부 안팎에서 백가쟁명을 불러일으키길 기대한다. 특히, 현직 때 한직에 머물러 자신의 생각을 실현할 수 없었던 비주류 외교관들이 더욱 많이 출판 활동에 힘썼으면 한다. 그래야 일사분란한 생각으로 무장한 외교부도 자극을 받고, 나라도 더욱 건강해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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