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오태규 Aug 28. 2023

생각보다 치밀하고 조직적인 미국보수의 '미디어전략'

폭스뉴스, 폭스 저널리즘, 폭스 포퓰리즘, 티비조선

미국에서 십 수년 전부터 '극우 성향의 이단아'로 불리는 방송이 나와 큰 인기를 누리고 있다. 바로 <폭스뉴스>다. 폭스뉴스는 미국의 폭스코퍼레이션이 운영하는 24시간 케이블 뉴스 채널이다. 폭스뉴스코퍼레이션은 오스트레일리아(호주) 출신의 미디어 사업가 루퍼드 머독이 만든 회사다.

미국의 진보 인사는 물론 우리나라의 진보 성향 사람들도 폭스뉴스에 대한 평가는 매우 박하다. 폭스뉴스가 사실과 진실보다는 주장과 이념의 선전에 몰두한다고 비판한다. 인기는 있는 줄 모르겠으나 방송 내용이 반지성주의적이고 포퓰리즘적인 내용으로 가득차 있는 저질 방송이라고 평가하는 게 보통이다.

하지만 폭스뉴스를 그렇게 만만하게 봐서는 안 된다고 주장하는 책이 등장했다. <폭스 포퓰리즘>(회화나무, 리스 펙 지음, 윤지원 옮김, 2022년 10월)이다. 책 이름을 '폭스 저널리즘'이라고 붙였으면 더 좋았을 것이라는 생각이 들 정도로, 폭스뉴스가 어떻게 뉴스를 만들고 전달하는가를 중점적으로 탐구했다. 

뉴욕시립대 스태튼아일랜드컬리지 미디어문화학과 부교수로 재직 중인 저자 리스 펙은 보수 언론 매체가 미국에서 사회 계급의 의미를 재구성하기 위해 타블로이드 미디어 스타일과 포퓰리즘 정치 수사학을 어떻게 사용하고 있는지를 연구하고 있다. 이 책이 그의 첫 번째 저서다. 책의 부제가 '보수를 노동계급의 브랜드로 연출하기'로 돼 있는 것에서 알 수 있듯이, 폭스뉴스가 어떻게 '노동 계급의 친구'로 자리 잡게 됐는지를 밝히고 있다.

놀랍게도 폭스뉴스는 현재 진보 성향의 인기 케이블 방송인 <CNN>, <MSNBC>보다 훨씬 시청률이 높다. 뉴스 전문 채널 중 단연 1위다. 공화당의 후보 선정과 정책을 좌우할 정도로 공화당에 대한 영향력도 막강하다. 진보 성향의 매체가 민주당에 행사하는 영향력과 견줄 수 없을 정도다.

그럼 폭스뉴스가 왜, 어떻게 이런 성공과 영향력을  얻게 됐을까? 저자는 폭스뉴스가 노동계급의 성격과 그들의 성향에 맞는 장치를 이용해 동류 의식을 연출하고, 그들의 언어와 방식으로 뉴스의 논점을 전달하는 데 탁월한 능력을 보여줬기 때문이라고 말한다. "폭스뉴스의 진정한 이념적 힘은 폭스가 내세우는 논점 그 자체가 아니라, 오히려 폭스뉴스의 제작자들과 방송인들이 이 논점을 사회적으로 유의미하게 만들기 위해 사용하는 문화적-양식적 대상에 있다"는 저자의 말 속에 해답을 찾을 수 있다.

구체적으로 폭스뉴스의 대표 진행자인 빌 오라일리, 션 해니티는 자신을 노동계급 출신 또는 그들과 같은 부류의 사람이라는 발언을 방송 때마다 반복적으로 사용하며 동질감을 유도한다. 그리고 블루칼라의 취향과 정치 이념을 상징적으로 보여줄 수 있는 게스트를 신중하게 택할 뿐 아니라, 강렬한 색상의 세트와 자막, 그들에 인기 있는 컨트리 음악, 그들에게 익숙한 사물을 상징으로 이용한 그래픽 디자인 등 다양한 장치들을 활용한다.

저자는 이를 타블로이드적인 자극성과 대중 친화적인 윤리(포퓰리즘)의 혼합이라고 말한다. 이를 통해 폭스뉴스의 시청자들을 '진정한' 노동계급의 다수로 자리매김하게 해줬고, 소수 보수세력의 욕망을 대중적이고 보편적인 것처럼 연출할 수 있었다는 것이다. 이제까지 수많은 보수 성향 매체가 등장했지만, 그들이 단지 공화당의 보수 정책만 강조하면 된다는 식의 운영을 하다가 실패한 것과 대조된다.

그뿐만 아니다. 폭스뉴스는 포퓰리즘의 프레임 안에서 전문가 지식을 결합하는 '포퓰리즘적-지적 전략'도 교묘하게 구사한다. 폭스뉴스는 2008~9년 금융위기 때 버락 오바마 정권이 서민을 지원하는 경기부양법을 실시하려고 하자, 이를 저지하는 데 총력을 기울였다. 폭스뉴스는 그 과정에서 보수학자 애미티 슐레이스가 쓴 <잊혀진 사람들-대공황의 새로운 역사>라는 책을 최대한 활용했다. 그를 통해 1920년 말 대공황 당시 가장 밑바닥 계층을 뜻했던 '잊혀진 자'를 '세금을 내는 부유층'으로 바꿔버렸다. 이때 애미티 슐레이스도 폭스뉴스에 단골로 출연하며 혁혁한 공헌을 세웠다. 폭스뉴스는 또 자본가를 '일자리 창출자'라고 바꿔부르며, 대중의 그들에 대한 부정적인 인식을 걷어내는 데도 기여했다.

저자는 이렇게 포퓰리즘과 기술관료주의 사이의 합의가 형성되는 자리를 '포퓰리즘적-지적 전략'이라고 개념화한다. 그는 이런 전략은 보수세력이 수 십년 동안 준비해온 작업이 결실을 맺은 것이라고 말한다. 정책과 홍보 능력에서 진보권에 밀린다고 생각한 보수 진영은 1970년대부터 헤리티지재단을 비롯한 보수 싱크탱크들을 설립하고 키우는 데 전력을 기울였다. 또 이 싱크탱크들이 학문의 순수성에 매달리는 폐쇄 성향의 진보권과 달리, 홍보에 주력하는 개방적인 노력을 가열차게 벌였다. 드디어 폭스뉴스의 등장과 함께 싱크탱크와 미디어가 서로 주고받으며 그들의 생각의 대중에게 각인하려는 보수권의 전략이 꽃을 피웠다.

저자는 폭스뉴스를 '반지성주의라기보다 보수 진영의 지적 문화를 위한 대중적 인터페이스'라고 규정한다. 보수논리와 지식을 대중적 언어로 바꿔 전달하는 매체가 폭스뉴스라는 얘기다.

저자는 폭스뉴스에서 세 가지 교훈을 얻어야 한다고 말한다. 첫째 지금까지 폭스뉴스에 대한 연구는 이념적 세뇌 문제에 치중한 나머지 스타일에 대한 분석을 경시했고, 둘째 대부분의 분석가가 폭스뉴스의 영향력을 단순히 '거짓 의식'을 조장하는 측면에서만 설명하려는 경향을 보였으며, 셋째 폭스뉴스의 시청자들을 절망적인 정도로 편협하거나 반지성주의자들이라고 간주하는 경향이 있었다는 것이다. 

“그람시는 라이벌 헤게모니에 도전할 때 그 내부의 반동적인 요소들을 폭로하는 것 못지않게, 어떤 대중적이고 민주적인 요소들을 빼앗아오는 것이 중요하다고 주장했다.”

이 책에서 저자는 이탈리아 사상가 안토니오 그람시의 이론과 말을 자주 언급하고 있는데, 위의 말은 앞 부분에만 초점을 맞춰 폭스뉴스를 비판하고 있는 진보 진영 인사들에게 건네는 따가운 일침이라고 할 수 있다. 비판만 하지 말고 당신들도 폭스뉴스만큼 노력을 하라고 말하는 듯하다.

이 책을 읽으면서 우리나라의 미디어 상황에도 눈길이 가지 않을 수 없었다. 케이블방송 쪽에서 극보수의 <TV조선>이 승승장구하고 있는 현실, '김어준의 겸손은 힘들다 뉴스공장'과 같은 유투브방송이 성행하는 현상은 각기 다른 면에서 폭스뉴스의 성공과 공통점이 있는 것은 아닐까하는 생각이 들었다. TV조선이 기득권 세력의 선전도구라는 점에서 비슷하다면, 김어준 방송은 포퓰리즘적 요소가 많다는 점에서 유사점이 있다고 할 수 있다. 

아직 우리나라의 어느 매체도 폭스뉴스의 교묘한 전략을 그대로 복사해 쓰는 곳은 없는 것 같다. 하지만 조만간 폭스뉴스를 정교하게 모방하는 매체가 등장할지도 모른다. 워낙 미국의 영향력이 강한 나라이니까 말이다.

또한 폭스뉴스의 등장과 성공은 세분화된 독자를 대상으로 그들의 구미에 맞는 주장성 뉴스를 생산하면서도 이익을 볼 수 있는 인터넷시대를 배경으로 하고 있다. 미국의 영향도 영향이지만 이런 측면에서도 우리나라에서 폭스뉴스를 정교하게 모방하는 매체가 등장할 가능성은 충분하다.

이 책은 그럴 경우 우리가 어떤 관점을 가지고 그 매체를 바라봐야 할지, 또 어떻게 대응해야 할지에 관해 많은 시시점을 준다.

작가의 이전글 행서와 초서의 맛은 해서의 골격이 있어야 가능하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