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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오태규 Sep 04. 2023

중국 전문가들이 보는'강대국 흥망'의 원인

폴 케네디, 중국, 미국, 강대국 흥망, 미중패권

강대국은 어떻게 흥하고 망하는가? 어느 시대든 국제정치의 가장 큰 관심사라고 할 수 있다. 특히, 미중 패권 다툼이 거세게 일고 있고 우크라이나 전쟁을 계기로 다극화 질서가 운위되고 있는 지금이야말로 이런 관심이 최고조에 이르렀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강대국의 흥망에 관해 가장 유명한 책은 폴 케네디 예일대 교수가 쓴 <강대국의 흥망>(한국경제신문사, 1990년 1월)이다. 이 책은 1500년대부터 1980년대까지 스페인, 네덜란드, 프랑스, 영국, 독일의 흥망 원인을 다루고 있다. 


폴 케네디 교수는 이 책에서 5세기 동안 강대국들의 흥망성쇠가 경제력과 군사력의 변화 추이에 따라 좌우되어왔다고 말한다. 즉, 경제력과 군사력의 함수에서 경제력에 맞는 군사력을 사용할 때는 흥했지만 경제력을 넘는 군사력을 쓸 때 망했다는 것이다. 그러면서 21세기에는 미국, 소련, 서유럽 등의 쇠퇴와 아시아계 강국의 부상을 전망했다. 1988년에 나온 이 책은 2년 뒤 실제로 경제력을 넘는 군사력 확대 노선을 취한 소련이 붕괴하면서 '국제정치의 예언서' 대접을 받았다.


<총, 경제, 패권>(역사산책, 리보중·웨이썬·류이 외 지음, 정호준 옮김, 2022년 2월)은 쉽게 말해 '중국판 <강대국 흥망>'이다. <강대국 흥망>이 폴 케네디 교수의 단독 저서인 데 비해, <총, 경제, 패권>은 중국의 다수 전문가들이 쓴 편저다. 이 책의 집필자들이 전공 분야에 따라 각 장을 나눠 집필했다.


이 책은 총론과, 각 시기의 주요 국가를 한 장씩 나눠 분석하고 있다. 총론(강대국의 흥망)은 리보중 베이징대학 인문석좌교수, 1장(베네치아공화국-최초의 자본주의 국가)은 류징화 텐진사법대학 역사문화학원 교수, 2장(합스부르크제국의 패권 추구와 실패)은 스인홍 국제정치학자, 3장(네덜란드-바다의 마부 황금시대)은 스청 서우두사범대학 교수, 4장(프랑스제국-중상주의의 대륙 강국)은 메이쥔제 상화이사회과학원 교수, 5장(영국-패권국의 균형정책)은 우정위 중국런민대학 국제관계학원 교수, 6장(독일-석탄과 철의나라가 세계 패권을 다투다)은 싱라이순 화중사범대학 역사문화학원 교수), 7장(미국-신대륙 국가의 세계 경제 패권의 길)은 왕리 지린대학 교수가 썼다. 모두 담당한 분야의 나라에서 유학을 한 경험이 있는 등, 중국에서 내로라 하는 지역 문제 전문가들이다.


이 책은 일본과 중국을 별도의 장으로 나눠 쓴 것이 특색이다. 8장(일본-전후 성장과 잃어버린 20년)은 위제 상하이금융법률연구원 연구원이, 9장(중국-개혁개방 이후 40년간 중국 경제 발전과 미래)는 웨이썬 푸단대학 경제학과 교수가 썼다.


이 책은 기본적으로 폴 케네디의 책과 주제가 같다. 강대국의 흥망 원인을 살피는 게 주목적이다. 분석의 시기도 비슷하다. 폴 케네디 교수도 서방세계가 원양 해로의 발견과 함께 대서양, 태평양으로 진출하기 시작한 16세기로부터 소련의 붕괴 직전까지 약 500년을 다뤘다. 중국 책도 최초의 자본주의(국제무역) 국가라고 할 수 있는 베네치아부터 일본, 중국까지 500년 동안의 강대국 흥망성쇠를 탐구하고 있다.


다른 점도 있다. 중국의 책은 분석 시기가 좀더 길다.책의 출간 시기가 폴 케네디 교수보다 30년 정도 더 늦기 때문에 분석 시기가 늘어난 것은 당연하다. 하지만 단지 분석 시기만 늘어난 것이 아니다. 폴 케네디 교수의 책 발간 이후 세상이 많이 바뀌었다. 소련의 붕괴 이후 초강대국 미국의 일강시대가 등장했고, 중국이 개혁개방 정책을 취하면서 경제적으로 급성장했다. 반면 승승장구하던 일본은 '잃어버린 30년'이란 말에서 엿볼 수 있듯이 쇠락의 길에 들어섰다. 이 책은 이런 상황을 배경으로 하면서 중국의 미래를 모색하고 있다. 


이 책의 집필 의도는 류이 <산렌생황주간> 국제보도 주필이 쓴 머리말에 잘 드러나 있다. 그는 머리말 끄트머리에 다음과 같이 말했다.


"21세기에 들어선 이후 미국도 소련과 유사한 과오를 범했다. 가장 두드러진 것이 아프가니스탄과 이라크에서와 같이 전적으로 군사 역량에만 의존해서 잠복해 있는 안보 위협을 제거하려 시도한 것으로, 결과적으로 전략 자원을 소모했을 뿐만 아니라 세계 많은 국가가 미국에 기대했던 신뢰를 스스로 무너뜨렸다."


"그러면 중국은 어떠한가? 지난 40년 동안 이어진 중국 경제의 눈부신 성장은 사실 글로벌 시장 개방과 경제체제에 상당 부분 힘입었으며 중국은 이 시스템을 유지하기 위해 많은 비용을 지불할 필요가 없었다. 중국과 미국의 관계 변화에 따라 중국이 전 세계를 상대로 경제 활동을 하며 경우에 따라 더 많은 비용을 지불해야 할지도 모르지만 폐쇄가 아닌 개방을 유지하는 것만이 중국 경제가 나아가야 할 방향이다."


개별 국가에 대한 분석은 결국 류이 주필의 말을 뒤받침하기 위한 과정이라고 할 수 있다. 이 책을 보면, 중국의 전문가들은 중국의 미래는 당분간 군사력 투사보다는 경제력 강화에 힘을 써야 한다고 생각하고 있다는 걸 알 수 있다.


이 책은 첨단기술을 중심으로 한 미국과 중국의 패권 다툼, 우크라이나 전쟁을 계기로 한 유동적인 국제질서는 다루고 있지 않다. 이런 새로운 변수의 등장에도 불구하고, 중국 지도부는 흔들리지 않고 개혁개방, 경제력 강화 중시의 길을 갈 것인가. 가장 궁금하고, 지금부터 가장 주의 깊게 지켜봐야 할 지점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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