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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오태규 Sep 25. 2023

'가짜뉴스' 어떻게 퍼지고, 어떻게 막아야 하나

'가짜 뉴스'라는 말이 범람하고 있다. 심지어 윤석열 정권은 자신의 입맛에 맞지 않는 뉴스를 가짜 뉴스로 규정하고 이를 퇴치하겠다고 설치고 있다. 이를 보면 가짜 뉴스가 아니라, '가짜 뉴스라는 용어'의 전성시대가 온 것 같다.



학계에서조차 가짜 뉴스가 무엇인가에 관해 엄밀하게 정의하지 못하고 있다. 하지만 '고무줄 해석'을 통해 마녀사냥으로 활용될 수 있는 가짜 뉴스라는 용어보다는, 구별과 대책이 따를 수 있는 '허위 조작 정보'라는 용어가 적절하다는 데는 대체로 의견이 일치한다. 개념이 자의적으로 정해지면, 대책도 자의적이 되기 십상이기 때문이다.



<가짜 뉴스의 시대>(반니, 케일린 오코너·제임스 오언 웨더럴 지음, 2019년 11월)라는 책을 읽게 된 것은, 가짜 뉴스라는 말을 앞세우며 야만적인 언론탄압에 나선 윤 정권의 폭정과 무관하지 않다. 도서관 서가를 구경하다 제목이 눈에 확 들어왔다. 하지만 이 책의 원제를 보니, 역시 가짜 뉴스라는 단어는 없다. <THE MISINFORMATION AGE: How False Belief Spread)>가 원재다. 아마 오정보나 가짜 신념이라고 번역하면, 독자의 눈길을 사로잡지 못할 것으로 생각한 출판사가 '가짜 뉴스'라는 단어를 제목에 집어넣은 것 같다.



이 책은 제목만 보면 가벼운 에세이처럼 보이지만 내용이 상당히 무겁다. 본격 학술서라고 할 수 있다. 공동 저자인 두 사람은 부부로 모두 캘리포니아대 어바인 캠퍼스에서 논리·철학부 교수를 하고 있다. 저자의 경력을 얼핏 보더라도 영화관에서 팝콘 먹듯이 가볍게 볼 수 있는 책이 아니란 걸 짐작할 수 있다.



이 책은 허위 정보가 어떻게 퍼져나가는지를 수학 모델을 통해 설명한다. 이 모델을 통해, 가장 확실한 정보를 바탕으로만 신념을 갖거나 바꾸는 과학자들조차 허위 정보에 휘둘릴 수 있다는 것을 보여준다. 과학자들도 그러한데 하물며 그런 과학적 훈련을 받지 않은 일반 사람들은 어떻겠느냐는 얘기를 하고 있다.



저자들은 가짜 정보의 확산이 어제오늘의 일이 아니라고 말한다. 대표적인 예가 14세기 중반 유럽의 지식인들 사이에 널리 퍼진 '타타르의 식물성 양'의 존재에 관한 가짜 믿음이다. 영국의 한 여행가가 쓴 책에서 유래한 '식물성 양'에 대한 믿음이 3세기 동안 맹위를 떨쳤다. 그러나 '식물성 양'이 위세를 떨쳤던 당시와 지금은 거짓 정보의 확산 속도, 위험의 수준이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다르다.



가짜 뉴스나 오도 가능성이 있는 정보를 의도적으로 퍼뜨리는 일은 지난 세기부터 폭발적으로 늘어났다. 저자들은 이를 이끄는 두 축이 라디오, 텔레비전, 인터넷을 중심으로 한 정보 유포 기술과 거짓으로 이끄는 세력의 정교화라고 말한다. 2016년 연달아 세계를 충격에 빠뜨린 브렉시트와 도널드 트럼프의 미국 대통령 당선은 이런 새로운 현상과 밀접하게 닿아 있다.



저자들은, 진실을 추구하려고 누구보다 애쓰는 과학자조차 '누구와 알고 지내느냐'에 따라 잘못된 신념을 가질 수 있다고 말한다. 여기에 인간이 가지고 있는 확증편향과 동조편향이 개입하면 거짓 정보에 더욱 취약해진다. 특히, 신념을 의도적으로 조작하는 선전 전문가들이 중간에 개입하면, 올바른 신념을 가지기가 더욱 어려워진다.



저자들은 산업세력이 개입하는 '산업적 선택'을 가장 위험하게 본다. 예를 들어, 미국의 거대 담배회사들은 흡연과 폐암의 연관성이 드러나자 대대적인 홍보전략을 구사했다. 이들은 과학자의 수많은 실험 중에서도 흡연과 폐암의 연관성이 드러나지 않은 희귀한 사례를 집중적으로 홍보하며 진실을 은폐하는 데 총력을 기울였다. 즉, "과학에 더 많은 과학으로 대응한다"는 이름 아래, 실험 때 불가피하게 나올 수밖에 없는 희귀 사례로 보편 사례를 뒤엎는 전략을 구사해 흡연-폐암 연관설을 수십 년 동안 잠재웠다.



저자들은 선전이 작동하는 방식이 매우 미묘하고 치명적이고, 심지어 선전가가 없는 상황에서도 선전효과가 나타날 수 있다고 경고한다. 예를 들어, 저널리스트들이 공정성을 이유로 어떤 과학적인 논쟁에서 찬반 쌍방의 결과를 제시한다면, 오히려 한쪽 편을 들게 될 수 있다고 경고한다. 100번의 실험에서 70번 ㄱ이라는 결과를 낸 쪽과 10번만 ㄱ이라는 결과가 나온 쪽을 공정이라는 이름으로 동등하게 취급할 경우 소수의 주장을 과장하는 결과를 빚게 된다는 얘기다. 



저자들은 "거짓말과 잘못된 정보의 확산을 막는 묘책 따위는 없다"고 비관적으로 말한다. 또 "특정한 개입을 밝혀내는 것도 중요하지만, 개입의 체계를 이해하는 것 역시 중요하다"고 말한다. 즉, 거짓 정보의 작동 방식을 이해하는 것에서부터 시작해야 한다는 얘기다.



물론 저자들은 구체적인 방법도 제시한다.  과학계가 위조된 연구 결과가 나올 가능성을 줄이는 엄격한 공표(publication)의 규범을 세우고, 독일이 쇼셜미디어에서 혐오 발언을 규제하는 법을 도입한 것처럼 거짓 정보를 고의적으로 만들고 배포하는 것을 처벌하는 규제를 마련할 것을 주문한다.



 하지만 이런 것이 근본적 대책이 될 수 없다는 것은, 저자들도 잘 아는 것 같다.



"무지와 조작에 우리 모두가 인질로 잡히지 않으면서 민주주의의 이상도 놓치지 않을 수 있는 가치들을 통합하는 새로운 메커니즘을 찾아야 한다."



저자들이 책의 마지막에 써놓은 이 글에서, 당장은 눈에 보이는 대책을 찾을 수 없지만 그것을 찾지 않으면 우리가 지금 누리는 민주주의가 큰 위험에 처할 수 있다는 절박감을 느낄 수 있다. 가짜 뉴스와 민주주의의 관계, 무 자르듯이 간단하게 정의하고, '사형' '폐간' '원스트라이크 아웃' 같은 험한 말로 함부로 단죄할 문제가 아니다. 더욱 사려 깊게 생각하고 고민한 뒤 숙의에 숙의를 거쳐 대책을 내봐도 시원치 않은 우리 사회의 중대 과제 중 하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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