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오태규 Oct 02. 2023

일본 전문가의 '한국 도자기 사랑' 이야기

오사카시립 동양도자미술관, 이병창, 고려청자, 조선백자


일본 간사이(관서) 지방, 특히 오사카를 방문하는 한국 사람들이 꼭 들려야 할 곳 중 하나가 '오사카시립 동양도자미술관'이다. 나카노시마의 오사카 시청사 옆에 있는 이곳은 우수한 고려청자와 조선백자 수백 점을 보유하고 있다. 특히, 고려청자는 한국국립중앙박물관을 빼고는 이곳에 가장 많다.




나는 오사카총영사 시절(2018.4~2021.6)에 한국에서 오는 손님을 만날 때마다 오사카에서 '반드시 가봐야 할 곳'으로, 이쿠노구의 코리아타운과 함께 이곳을 추천했다. 내가 도자기에 깊은 지식을 가지고 있는 것은 아니지만 재임 중에 이곳을 비교적 자주 갔다. 총영사로서 반은 의무감 반은 감사한 마음으로, 그리고 약간의 흥미를 가지고 가곤 했다.




이 미술관에는 한국과 일본이 국교를 맺기 전에 설치한 주일한국대표부 오사카사무소장을 지낸 이병창씨의 기증품을 모아놓은 '이병창 컬렉션'도 있다. 이씨는 1999년에 자신이 모은 고려자기와 조선자기 등 3백여 점을 이곳에 기증했고, 미술관 쪽은 이를 기려 이 미술관 3층 전시실 한편에 그의 흉상과 함께 '이병창 컬렉션'을 설치해놨다.




이토 이쿠타로씨는 1982년 설립된 이 미술관의 초대 관장이다. 2007년 퇴임할 때까지 무려 25년 동안 관장을 지냈다. 내가 부임했을 때는 명예관장을 맡고 있었다. 그는 도자기뿐 아니라 한국 문화에 두루 관심이 많았다. 그래서 총영사관이 주최하는 문화 행사에서 자주 만나 얘기도 나누고 친하게 됐다. 때때로 식사도 하면서 고려청자와 조선백자에 관한 그의 고견도 들었다.




이임을 하기에 앞서 그와 고별 점심을 할 때였다. 자신이 일본어로 낸 책을 한창 한국어로 번역하고 있다면서, 한국에서 책이 나오면 보내주겠다고 말했다. 그리고 거의 2년 정도가 지난 올해 3월 말, 지인을 통해 정성스럽게 쓴 손 편지와 함께 책을 보내왔다. <고려청자·조선백자에 대한 오마주>(컬처북스, 이토 이쿠타로 지음, 정은진 옮김, 정양모 감수, 2022년 5월)이다. 번역자인 정은진씨는 이 미술관에 근무하는 한국인 학예사고, 정양모씨는 잘 알다시피 위당 정인보 선생의 막내아들로 국립중앙박물관장을 지낸 저명한 미술사학자다.




책 표지를 보니, '2022년 세종도서 교양부문'의 우수도서로 뽑혔다는 표시가 붙어 있다. 내가 쓴 <오사카 총영사의 1000일>도 같은 시기 같은 부문의 우수도서로 선정됐으니, '인연이 이렇게 이어지는구나'라는 생각이 스쳤다. 하지만 도자기에 관한 전문 서적이고, 양도 600쪽 가까이 돼 쉽게 뚜껑을 열기가 겁이 났다.




그러던 중 좀 시간 여유가 생기면서 성의를 다해 보내준 책을 그냥 방치하는 것은 예의가 아니라는 생각으로 8월 들어 조금씩 읽기 시작했다. 그런데 독서라는 것이 묘해서 어려운 내용도 끈기 있게 읽다 보니 무슨 얘기인지 눈이 트였다. 책을 덮을 때는 끝까지 읽길 잘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 책은 대중서로 펴낸 것이 아니다. 저자의 한국어판 서문을 보면, 한국 지인의 지원을 받아 1000부 한정으로 출판했다. 이 책은 2부로 나누어져 있다. 1부가 고려 편이고, 2부가 조선 편이다. 고려와 조선 시대 도자기에 대한 전문 지식을 얻고 싶은 사람은 직접 책을 구해 보면 좋을 것 같다.




이 책을 읽으면서 내가 느낀 점은, 우선 어떻게 외국 사람이 이웃나라의 도자기에 대해 이토록 해박하게 알고 있을까 하는 놀라움이었다. 이토 씨는 예술의 미적 가치를 중시하는 사람이기 때문에, 고려청자와 조선백자가 훌륭한 미를 갖추지 않았으면 흥미를 갖지도 않았을 것이다. 그렇다고 해도  한국에 대한 애정과 관심이 없었다면 그런 경지에 도달할 수 없었을 테다.




두 번째는, 도자기 연구에서도 기록의 매우 중요하다는 것을 새삼 깨달았다. 역사 연구가 다 그렇지만, 어떤 작품이 어떤 시기에 나왔는가가 정해져야 작품 전반의 발전 과정을 알 수 있다. 고려청자의 경우엔 송나라 때 사절단의 일원으로 고려 수도 개경을 방문해 쓴 기록 <선화봉사고려도경>(이하 '고려도경')이 결정적으로 중요한 책이라는 걸 알았다. 




조선도자의 경우는, 고려보다 기록이 풍부했다. <세종실록>을 비롯해, <신동국여지승람>, <용재총화>, <경국대전>의 기록을 더듬으며 시기를 정하고 변화를 파악하는 것을 알 수 있었다.  또 조선시대의 경우 사옹원의 분원을 경기도 광주군 남종면 분원리)에 설치하면서 분윈리 시대, 즉 조선 도자의 후기가 시작된다는 것도 알았다.




이토씨는 이 책에서 고려청자든, 조선백자든 초기에 중국의 영향을 받았으나 점차 고려 또는 조선 독창성을 지닌 기술과 문화로 발전했다고 말했다. 그리고 그 수준이 세계 최고 수준에 이르렀다고 칭찬을 아끼지 않았다. 고려청자와 조선백자에 관한 그의 평가를 한마디씩만 골라 옮긴다면, "많은 청자를 보아 왔습니다만, 세계에서 가장 섬세하고 아름다운 여성적인 청자는 고려청자가 제일", "조선도자는 한국이 만들어낸 도자 중에서 한국의 민족성을 가장 현저하게 시현"이라는 표현이 있다.




이 책에는 동양도자미술관에 있는 '기적의 백자' 얘기도 나온다. 일본의 유명한 소설가였던 시가 나오야 씨가 원 소유자였다는 이유로 '시가씨의 항아리'로 불리는 이 조선백자(달항아리)는 어느 날 도둑이 훔쳐가지고 달아나려고 하다고 들켜 놓치는 바람에 300여 조각으로 완전히 파손됐다. 그런데 이 항아리가 복원가의 세밀한 손길에 힘입어 거의 완전한 형태로 복원됐고, 지금 동양도자미술관에 전시돼 있다. 이 미술관에 가면 반드시 보고 느껴 볼 것을 강추한다.




이 책에 대한 총평은 정양모 선생의 추천사에 나오는 말로 대신하고자 한다. 정 선생은 '한국 도자 연구와 이해의 새로운 지평'이라는 제목의 추천사에서 "한국 도자에 대한 창의와 탁견으로 가득 차고 애정이 넘친 그의 연구는 무릇 차원이 다른 것으로 전신전령을 바치고 인격까지도 반영되어 있어 감명을 받는다"고 말했다. 또 "그의 논문은 한국 도자기에 대한 연구와 이해와 더불어 서술 방법에 있어서 완전히 새로운 지평을 연 것으로 나에게 큰 자극과 깨달음과 감명을 주었다"고 절찬했다.




'백문이 불여일견', 궁금하시면 직접 읽어보시기 바란다. 참고로, 동양도자미술관은 올해는 내부 수리를 위해 폐관하고, 내년에 다시 문을 열 예정이라고 한다.




작가의 이전글 '가짜뉴스' 어떻게 퍼지고, 어떻게 막아야 하나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