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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오태규 Nov 13. 2023

인도 대사 출신이 본 '인도의 미래와 과제'

조현, 외교관, <한국대사의 인도 리포트>

아마 한국 사람 중에서 인도에 관해 단편적인 지식 하나 정도 가지고 있지 않은 사람은 없을 것이다. 간디의 나라, 세계 최대 인구의 민주주의 국가, 카스트 제도가 있는 나라, 소를 숭상하는 나라, 파키스탄과 국경 분쟁을 하고 있는 나라, 요가의 나라 등등.

그렇다고 그들이 인도의 전모를 잘 파악하고 있느냐 하면 그렇지 않은 경우가 대부분이다. 즉, '장님 코끼리 만지기' 식으로 부분적으로 뭔가를 얘기할 수 있는지는 모르지만, 인도의 총체적인 모습을 잘 설명할 수 있는 사람은 매우 드물다.

알 것 같으면서도 잘 모르는 나라를 보통 '신비의 나라'라고 하는데, 한국 사람에게 인도는 그런 나라에 속한다. 대륙에 버금간다는 뜻의 '아대륙'으로 불릴 만큼 땅이 크고 세계 1위를 차지할 만큼 사람도 많은 까닭에, 인도를 총체적으로 파악하는 것은 애초에 불가능할지 모른다. 

하지만 최근 한국과 인도의 교류가 활발해지고 깊어지고 국제정치에서 인도의 전략적 가치가 상승하면서 '인도 알기 갈증'도 그만큼 커지고 있다. 그런데도 '인도는 어떤 나라인가'를 개괄적으로 설명해 주는 책이나 정보를 찾기는 쉽지 않다. 

<한국 대사의 인도 리포트>(공감, 조현 지음, 2020년 5월)는, 인도를 개괄적으로 조망해 주는 '인도 설명서'다. 대개 한국의 외교관들이 쓴 책을 보면, 신변잡기나 여행기 수준의 책들이 많은데 이 책은 그런 종류의 책과 격이 다르다.

저자는, 인도가 세계 무대에 가장 역동적으로  존재감을 드러낸 시기라고 할 수 있는 2015년부터 2년 동안 인도 주재 대사로 근무했다. 따라서 '과거의 인도'에서 '미래의 인도'로 바뀌어 가는 모습을 누구보다 잘 지켜볼 수 있는 위치에 있었다. 어느 한 지점에 머물지 않고 움직이고 변화하는 인도를 보여주는 것이 이 책의 장점인데, 저자의 대사 재임 시기와 깊은 관련이 있을 것이다.

한 나라에 파견된 대사는 직업 특성상, 어느 한 분야에 매몰되지 않고 그 나라의 외교, 정치, 사회, 경제, 문화 등 전반에 관심을 둘 수밖에 없다. 전문가처럼 한 분야를 깊게 볼 수는 없지만, 마음만 먹으면 그 나라의 내로라하는 각계 전문가들을 두루 만나 얘기를 들을 수 있으므로 누구보다 그 나라를 종합적으로 이해하는 데 제격이다.

대사가 그 나라를 전반적으로 이해할 수 있는 위치에 있다고 해서, 그렇게 얻은 지식과 정보를 바로 책으로 펴낼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책을 내기 위해서는 엄청난 노력이 필요하다. 들은 정보와 지식을 잊어버리지 않도록 그때그때 기록으로 남겨놔야 하는 것은 기본이고, 그것을 하나로 꿰어 설명할 수 있는 머리 훈련도 해야 한다. 그런 치열한 육체적·지적 훈련 과정을 거쳐야만 비로소 한 권의 책이 탄생할 수 있다. 그런 고통의 과정 없이 책이 술술 나올 수 있다면, 한국의 도서관은 수많은 대사들의 책으로 벌써 넘쳤을 테다. 

이 책은 모두 4장으로 돼 있다. 1장에서는 많은 사람들이 궁금해하는 카스트 제도, 종교, 요가를 비롯한 인도 사회의 전반적인 특징과 변화 모습을 다뤘다. 이 책이 대사 경험자가 쓴 것이라는 특징이 잘 드러나는 곳은, 2장 이하다. 2장은 변화하는 정치, 3장은 떠오르는 경제, 4장은 한국과 인도의 관계에 초점을 맞췄다.

자세한 내용 소개는 생략하지만, 글 곳곳에 외교관의 통찰력과 관찰력이  담겨 있는 문장이 눈길을 사로잡았다. 대표적인 것만 몇 가지 소개한다.

"결국 공정함, 자유, 좋은 통치, 효율성 등 한 나라가 가진 기본적인 내공이 외교력의 바탕이 된다는 점을 생각하다 보면 어느새 외교 단지를 빠져나오곤 했다."(130쪽)

"인도의 대국 외교는 점차 강해지고 있는 130만 군대를 배경으로 이루어지고 있다. 인도의 지상군은 중국과 미국에 이어 세계 3위 규모를 자랑한다. <중략>   인도의 문민통치 전통은 매우 확고하며 헌법에서도 이 부분을 강조하고 있다. 현재 인도 국방부에는 단 한 명의 현역 장교도 없다. 전원 민간인으로 구성된 국방부의 지시를 각 군이 이행한다."(153쪽)

이 문장 뒤에는 인도를 방문한 한국 국회의장을 수행해 인도 국회의사당에 들어가려던 한국대사관 국방무관이 군복을 입었다는 이유로 의사당 출입을 제지 당했다는 얘기가 나온다. 이 내용을 읽으면서 아직도 '국방의 문민화'가 부족한 한국이 배워야 할 점이라고 생각했다.

"인도와 중국은 거대한 인구와 내수시장을 갖춘 국가로서 종종 비교의 대상이 되곤 한다. <중략> 그러한 면에서 인도와 중국의 공통점과 차이점을 짚어보는 것은 인도의 미래를 가늠해 보는 데 유용할 것이다. 두 국가 간의 가장 큰 차이는 인도는 선거를 통해 정치권력을 선출하는 민주주의 체제이고, 중국은 공산당 일당 체제 국가라는 점이다. <중략> 또한 인도는 힌두교를 바탕으로 종교의 다양성을 인정하고 있는 다원적인 사회인 반면, 중국은 전통적으로 유교를 바탕으로 하는 통일적인 사회라는 것도 중요한 차이다."(161~162쪽)

위에 인용한 대목 말고도 외교관만이 보고 쓸 수 있는 시각과 내용이 간간이 나온다. 이런 것을 찾아 읽는 재미가 쏠쏠하다. 예를 들어, <불확실성의 시대>라는 책의 작가인 존 케네스 갈브레이스가 인도 주재 미국 대사를 할 때 얘기다. 그가 인도 대사를 할 때 경험과 소회를 <대사 일지>라는 책으로 남겼다. 저자는 그 책을 보면 당시 대사의 역할이 대통령과 총리에게 조언을 할 정도로 컸는데 통신 기술이 발달한 지금은 대사가 본부의 지시를 받아 일을 처리하기 급급하다는 자조 섞인 얘기를 다른 외교관과 나눴다는 일화를 소개했다. 이런 일화에서 예전과 달리 기능적인 관리로 변한 외교관의 위상을 엿볼 수 있었다.

저자는 인도의 정치와 경제가 역동적으로 변화·발전하면서 세계적으로 존재감이 커지는 것을 목격하면서, 한국이 인도와 정치·경제적으로 더욱 협력할 필요가 있다고 역설한다. 

저자는 최근 한 모임 초청으로 열린 강연회에서, 인도는 진영 갈등의 국제정세 속에서 한국이 자립적인 외교 공간을 만드는 데 도움을 줄 수 있으며, 경제적으로도 서로 도움을 주고받을 수 있는 좋은 동반자가 될 수 있다고 말했다. 그러나 인도의 불공정한 관습에서 나오는 비효율과 제조업 경시 정책에서 초래된 일자리 부족에서 반면교사의 교훈을 얻을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또 해외에 나간 인도인이 국내에 있는 인도인에 비해 크게 성공한 사례가 많다는 사실을 들며, 좋은 거버넌스의 중요성에 주목했다.

인도뿐 아니라 다른 나라에서 근무했던 대사들도 이 책에 자극받아 자신들이 근무했던 나라를 이해하는 데 통찰력을 제공하는 책을 많이 펴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하며 책장을 덮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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