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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오태규 Jan 01. 2024

일본을 알려면 천황제를 알아야 한다

천황제 국가의 지배원리, 작동원리, 일본 헌법, 가족국가

일본 헌법은 모두 11개 장으로 되어 있다. 제1장은 천황에 관한 장으로, 1조부터 8조까지 이어진다. 비로소 그 뒤에 전쟁의 포기를 담은, 그래서 일본 헌법을 '평화 헌법'이라고 부르게 된 제2장 9조(전쟁포기와 교전권의 부인)가 뒤따른다.

일본 헌법 제1장 1조는 "천황은 일본국의 상징이자 일본 국민 통합의 상징이며, 이 지위는 주권이 존재하는 일본 국민의 총의에 근거한다"라고 돼 있다. "대한민국은 민주공화국이다. 대한민국의 주권은 국민에게 있고, 모든 권력은 국민으로부터 나온다"라는 우리나라 헌법 제1장과 전혀 다르다. 

일본의 헌법에서 볼 수 있듯이, 일본은 '천황의 나라'다. 즉, 천황과 천황제에 관한 이해 없이 일본을 이해할 수 없다. 이런 관점에서 보면, 일본의 천황을 우리나라에서 '일왕'으로 부르는 것은 일본을 적확하게 이해하는 데 방해가 된다. 

천황의 이름 아래 일제의 가혹한 식민 지배를 받은 우리나라 입장에서 '천황'을 '일왕'으로 애써 낮춰 부르려는 것은 충분히 이해할 수 있다. 하지만 일본의 천황은 일본 국민에게 다른 나라의 왕과 같은 존재가 아니다. 훨씬 절대적인 존재다. 패전과 함께 현인신에서 인간으로 격하됐지만, 여전히 전쟁 전의 위세와 영향력이 잔존해 있다. 일본의 보수 정치인들이 간혹 '일본은 신국'이라고 하는 경우가 있는데,  일본 사람 또는 일본 사회에 깔려 있는 이런 분위기의 반영이라고 할 수 있다.

<천황제 국가의 지배원리>(논형, 후지타 쇼조 지음, 김석근 옮김, 2009년 4월)는 패전 이후에도 끈질기게 강한 위력을 발휘하고 있는 천황제의 형성과정과 지배원리를 규명한 책이다. 저자인 후지타 쇼조(1927~2003)는 '학문의 천황'으로 불리는 일본 정치사상 연구의 일인자 마루야마 마사오(도쿄대)의 문하에서 공부를 했다. 천황제, 마르크스주의자들의 전향, 전체주의 등의 분야에서 독창적인 분석과 업적을 남긴 비판적 지성이다. <아사히신문>은 생전의 그를 '현대 일본의 마지막 사상사'라고 불렀다. 

책 내용은 쉽지 않다. 이 책은 <천황제란 무엇인가>, <천황제 국가의 지배원리>, <천황제와 파시즘>, <천황제의 파시즘화와 그 논리구조>, <'료안'의 사회적 구조_'쇼와 원년'의 신문에서> 등 5편의 글로 되어 있다. 물론 그중에서 대표적인 글은 제목으로 사용된 <천황제 국가의 지배원리>다.

후지타 쇼조는 마루야마의 문하생이면서 마루야마의 한계를 뛰어넘는 업적을 이뤘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마루야마가 일본 절대주의의 문제를 시민의 부재에서 찾고 시민을 어떻게 창출할 것인가를 과제로 삼았다면, 후지타는 메이지유신 이후 일본의 정치체제를 '공동체적 국가 요소'와 근대 '정치국가'적 요소의 결합에 의한 이중성으로 파악했다. <천황제 국가의 지배원리>는 근대 일본이 왜 천황제 국가에 포섭·동화될 수밖에 없었는지를 규명한 논문이다.

후지타는 천황제의 권력 상황은 "국가의 구성 원리로 보자면 분명히 이질적인 두 원리의 대항·유착의 발전 관계로 파악할 수 있다"면서, 하나는 국가를 정치권력의 장치로 구성하려는 것이고 또 하나는 국가를 공동체에 기초 지워진 일상적 생활공동체로 구성하려는 원리라고 말했다. 즉, 권력국가와 공동체국가라는 이질적인 두 원리로 천황제 국가가 형성됐다는 것이다. 그는 이런 독특한 배경 때문에 "나치처럼 원자화된 개인을 단위로 하는 것이 아니라, 공동체를 결집의 단위로 하는 파시즘의 천황제적 형태가 성립"됐다고 분석했다. 바로 일본의 천황제가 가족국가라는 독특한 모습을 띠게 된 것이 이런 연유 때문이란 얘기다.

그는 태평양전쟁의 패배로 일본이 가족국가의 통합을 잃어버리고 분산했지만, 미 점령 당국이 통치의 편의를 위해 천황을 온존시키면서 애초부터 관료 전제를 중핵으로 삼았던 천황제가 여전히 강한 연속성을 유지하게 됐다고 말했다. 또 패전 이후 천황이 이전처럼 국민을 적극적으로 통합하는 일은 쉽지 않게 됐지만, 국민 생활을 관통하는 '천황제'는 국민 각 개인의 생활영역으로 분극화해 개인과 그 생활 집단의 평온한 일상을 보장하는 것에서 주요한 기능을 찾아내고 있다고 말했다. 즉, 전후 일본 사회는 '거리의 천황제'와 '일상생활의 미국주의'가 서로 보강·보완하면서 사회의 깊은 곳에서 결합해 있다고 진단했다.

후지타의 제자인 미야무라 하루오 세케이대 교수는 전후를 계기로 후지타의 관심은 천황제 국가로부터, 그로부터 생겨나 일본 사회 속에 뿌리를 내리게 된 '천황제 사회'로 바뀌었다고 말했다. 

후지타는 일본어판 후기에서 "내가 여기서 노력하고 있는 방법이, 대상 그 자체의 논리 안으로 들어가서 대상으로 하여금 스스로 논리적 귀결 앞에 서게 하고, 그로써 비판하려고 하는 점도 아울러 기억해 주면 고맙겠다"라고 말했다. 숨질 때까지 비판정신을 잃지 않고 천황제 또는 천황제 사회가 가진 문제와 대결해온 저자의 철저한 학문적, 실천적 자세를 엿볼 수 있는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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