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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오태규 May 13. 2024

<서평> 한국의 기자는 뭣을 하고 뭣을 꿈구나?

<한국의 기자>, 좋은  저널리즘 연구회, 저널리즘, 언론자유지수

윤석열 정권 들어, '한국의 국민으로 사는 것이 극한 직업'이라는 냉소적인 말을 자주 듣는다. 21세기에 20세기에서도 통하지 않을 방식으로 정치를 하니, 그 속에서 사는 국민이 얼마나 괴롭겠냐는 뜻의 말이다.

한국의 기자는 그런 국민 중에서도 가장 '극한적인 직업인'일 것이다. 정보통신 기술의 발달로 하루에 처리하는 일이 크게 늘었다. 일이 늘었어도 월급은 그만큼 오르지 않는다. 민주화의 진전으로 권력 눈치 보면서 기사 쓰는 일은 더 이상 없을 걸로 생각했지만, 권력의 간섭이 군사정부 시절 뺨칠 정도로 심해졌다. 미디어 회사도 기자들을 기사만 쓰게 놔두지 않고 돈벌이의 도구로 내세운다. 일반 시민들이 기자를 대하는 시선도 싸늘하다. 존경은커녕 경멸을 받는 경우가 많다. 쉽게 말해, 한국의 기자는 회사 안팎에서 정신적, 물질적 압박을 받는 천덕꾸러기로 전락했다.

<한국의 기자>(이화여대출판문화연구원, 김경모·김창숙·문영은 외 8인 지음, 2024년 1월)는 기자에 초점을 맞춰 한국 저널리즘의 문제를 탐구한 책이다. '좋은 저널리즘 연구회'가 한국 저널리즘의 질 향상을 위해 시리즈로 내고 있는 책 중 여섯 번째이자 가장 최근 작이다. 저자 11명 중 김경모·김창숙·문영은을 제외한 8명은 현장 기자로 일한 경험이 있는 사람들이다. 

에필로그 '기자의 사명'에서 밝히고 있듯이, 이 책은 "민주화 이후 진행되어온 한국 저널리즘의 환경 변화와, 그 속에서 취재하고 기사를 써야 하는 기자들이 마주하는 문제들을 체계적으로 분석하려는 시도"에서 나왔다. 한국 저널리즘 책 중에서 기자에 초점을 맞춰 쓴 최초의 책이다.

이 책은 한국 언론의 역사, 교육과정, 경력 관리, 직업윤리부터 미래 대응까지 기자 사회의 모든 것을 체계적으로 분석해, 한국의 기자는 누구이고 무엇을 하고 있으며 미래는 어떨지를 다룬 보고서라고 할 수 있다. 

구성은 3부 11장으로 돼 있다. 1부 '기자 교육과 커리어'에서는 한국 저널리즘 교육의 문제의 현황과 문제에 초점을 맞췄다. 1장에서 한국 저널리즘 교육이 저널리즘 현실과 동떨어진 탁상공론에 있다는 점을 대학의 교육과정을 분석해 들춰냈다.

2장에서는 미국의 CBS와 일본의 NHK와 비교를 통해 한국의 기자 제도가 미국과 일본의 제도를 선택적으로 수용하면서 한국 방송만의 특성을 갖게 됐지만, 세 가지 정도의 중요한 문제를 체질화했다고 지적했다. 첫째 방송저널리즘을 대표할 만한 인물을 배출하지 못했고, 둘째 취재보도 인력의 전문성을 강화하지 못했으며, 셋째 프로듀서 역할을 정립하지 못했다는 것이다. 미국과 일본 모두 프로듀서는 철저하게 카메라 뒤의 인물(김민기의 표현을 빌리자면 '뒷것')로 존재하는데 한국에서는 프로듀서가 직접 카메라 앞에 나서는 역할을 하고 있는 점을 지적하며, '한국식 프로듀서 저널리즘은 그 정체성 정리가 시급하다'고 주장했다. 방송 저널리즘에서 앞으로 논쟁을 하며 정리할 부분이라고, 나는 생각한다. 3장에서는 한국과 미국의 기자 채용과 수습 교육을 비교했다. 미국은 대학 때부터 기자 실습을 거쳐 현업 기자가 되며, 채용도 작은 매체에서 인정받은 기자가 점차 큰 회사로 스카우트된다는 점을 강조했다.

2부 기자윤리는 4~6장까지 3개 장으로 이뤄졌다. 4장에서는 박종철 고문치사 사건의 보도 과정, 특히 <동아일보>의 취재 과정을 돌아보며 기자 정신과 편집국 독립의 의미를 살펴봤다. 5장에서는 한국의 기자와 미국 기자의 윤리를 비교하며, 한국의 기자가 미국 기자에 비해 취재 윤리가 느슨하다는 점을 지적했다. 결론적으로 한국 기자는 기자 개인의 일탈이나 비도덕적 행위뿐 아니라 취재 과정 전반의 윤리성을 제고하는 노력을 해야 한다고 말했다. 6장에서는 한국언론진흥재단이 1989년부터 2021년까지 실시할 언론인 의식조사를 분석해, 한국 언론인의 생각 변화를 추적했다. 이를 통해 한국 기자는 공적 소명의식이 강하고, 평등주의적인 생각이 강하며, 정보 전달자보다 해석자로 인식하고 있다는 점을 추출했다. 또 직업에 대한 자부심이 점차 낮아지고 있으며 취약한 재정 사정으로 광고주가 언론자유를 심각하게 제약하고 있는 점을 우려했다. 아마 윤 정권에서 이뤄진 조사까지 포함했다면 언론자유를 심각하게 해치는 주체가 광고주에서 정치권력으로 바뀌었을지도 모른다.

3부 '기자의 현재와 미래상'(7장~11장)은 한국 기자 사회의 다양한 현상을 분석하고 미래를 전망했다. 7장에서는 경력 6년 이하의 기자 11명을 인터뷰해 그들이 어떤 계기로 기자가 됐고, 어떤 성과를 올렸으며, 어떤 전망을 가지고 기자 생활을 하는지를 보여줬다. 각 사에서 가장 우수한 기자들의 얘기여서 기자 사회 전반을 대표한다고 보기 어렵지만, 현재 가장 활발하고 왕성하게 활동하며 좋은 성과를 내고 있는 기자들의 얘기 속에서 한국 저널리즘의 희망을 찾아볼 수 있다. 8장에서는 기자들 인터뷰를 통해 기자의 보상 의식을 살폈는데, 기자들이 좋은 기사를 쓸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 주는 것을 가장 큰 보상으로 생각한다는 점이 눈에 띄었다. 좋은 예로 동아일보의 경우 '히어로 콘텐츠팀'에 가는 것을 좋은 보상으로 생각했다. 또 기사 평가에서 한국기자협회의 '이달의 기자상'이 좋은 기사의 공인 기준처럼 인식되고 있다는 점이 눈에 띄었다.

9장에서는 한국 기자의 사고습관을 들여다봤는데, 한국 기자는 좌우 성향의 매체에 관계없이 유교 사회라는 집단주의적 문화적 인지 편향성이 있다는 것이다. 즉, 2015년 3월 5일 일어난 마크 리퍼트 주한 미국대사의 피습 사건 보도 때 미국 언론은 범인의 개인적 성향을 주목한데 비해 한국 언론은 집단 범죄에 초점을 뒀다는 얘기다. 10장에서는 여성 기자의 증가로 지면이 다양성, 공정성, 포용성으로 발전할 가능성이 커졌다는 점을, 11장에서는 뉴미디어 시대와 52시간 근무제라는 변화 속에서 방송 기자들이 적응하고 분발하는 모습을 살펴봤다.

이 책은 한국 저널리즘이 당면하고 있는 상황과 문제를 기자라는 취재 보도의 주체에 초점을 맞춰 살펴봤다는 점에 의미가 있다. 기자가 취재 보도의 가장 중요한 주체라는 점에서 이런 시도가 늦은 감이 없는 것은 아니지만, 한국 기자가 안고 있는 문제점과 가능성의 단면을 잘 보여주고 있다.

이 책의 책임 편집을 맡은 이재경 이화여대 저널리즘교육원 원장은 에필로그에서 "한국 언론계는 안타깝지만 기초부터 저널리즘 생태계의 틀을 새로 만들어가야 하는 과제를 마주하고 있다"면서도 "다행인 점은 그래도 젊은 기자들의 일부가 저널리즘에 대한 열정이 있고, 퀄리티 저널리즘에 대한 공부 의지도 충만하다는 사실을 확인할 수 있었던 점"이라고 말했다. 그 일부 젊은 기자들이 오래도록 그런 생각을 유지하고 퍼뜨려 나갈 수 있는 환경을 조성하는 일을 그들만의 몫으로만 돌리지 않는 것, 그런 환경을 적극적으로 만드는 것이 한국 저널리즘을 회복하는 길이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하며 책뚜껑을 덮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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