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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오태규 Jun 17. 2024

서평 : 한 재일동포 '조작 간첩'의 민들레 같은 삶

<나는 김태홍입니다>, 서승, 이철, 민단, 총련

박정희 군사정권과 전두환 군사정권 시절, 재일 동포 유학생은 중앙정보부(현 국정원)와 보안사(현 국군기무사)의 좋은 먹잇감이었다. 군사 정권의 정통성이  흔들릴 때마다 그들은 정권을 부양하는 희생양으로 활용됐다.

군사정권 시절, 중정과 보안사는 정권이 위기에 처할 때마다 한국에 유학 온 재일 동포 학생들을  간첩으로 조작해 대대적으로 발표했다. 재일 동포 사회는 38선이 그어져 있는 남북한과 달리, 한 동네 또는 한 집안에도 민단과 총련 소속 사람이 동거하며 살기 때문에 간첩을 조작해 내기 쉽다는 점을 정보기관이 상습적으로 악용한 것이다. 

군사 정권 시절에 한국에 유학 온 학생들은 재일 동포 2세, 3세 중에서 가장 민족의식이 강한 청년들이었다. 역설적이게도 민족의식이 강한 재일 동포 청년들일수록  '조작 간첩'이 된 셈이다. 정확한 통계는 없지만 고국에 유학 왔다가 '조작 간첩'이 된 재일 동포 유학생은 족히 100명이 넘는다.

조작 간첩이 된 유학생들은 대부분 중형을 선고받고 고국의 감옥에서 장기 복역했다. 사형, 무기 징역, 10~15년의 중형을 선고받은 사람들이 수두룩했다. 형을 마치거나 중간에 석방돼 일본에 돌아간 사람 중에는 치를 떨며 다시는 고국 땅을 밟을 생각도 하지 않는 사람도 있다. 안타깝게 수사 중 받은 고문으로 앓다가 스러져간 사람도 있다. 서승씨나 이철씨처럼 감옥에서뿐 아니라 출옥한 뒤에도 조국의 민주화를 위해 헌신적으로 활동하며 살고 있는 사람도 있다.

<나는 김태홍입니다>(후마니타스, 김태홍 지음, 박수정 정리, 2022년 7월)의 주인공 김태홍씨는 재일 동포 유학생 '조작 간첩' 중에서 국내에 많이 알려지지 않은 인물이다. 아니, 잘 알려지지 않은 사람이라기보다 내가 몰랐던 사람이라고 하는 게 맞을 것이다. 그래도 한국에서 옥중 수기를 펴낸 재일 동포 조작 간첩 연루자 중에서는 생소한 이름이다. 

재일 동포 조작 간첩 사건의 당사자가 직접 쓰거나 다른 작가가 대신 쓴 그들의 옥중 수기를 몇 권 읽은 적이 있다. 모두 내용이 너무 애잔하다. 고국을 너무도 사랑한 나머지 왔는데 간첩으로 조작된 채, 면회 올 수 있는 혈연도 없이 장기간 지옥 같은 감옥 생활을 해야 했으니 더 무슨 말을 하랴. 이 수기도 기본적으로는 그런 종류의 책이다.

하지만 다른 사람들의 수기와는 확연하게 분위기가 다른 점이 있다. 이 수기에는 다른 사람의 옥중 수기에 없는, 뭔가 밝고 긍정적인 에너지가 서려 있다. 이상한 일이다. 무기징역을 선고받고 15년이나 복역한 사람이 쓴 글인데도 그렇다. 필자인 김씨의 생각과 삶이 밟아도 밟아도 죽지 않고 되살아나 널리 퍼지는 민들레와 비슷하기 때문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는, 복역 중에 먼저 나가는 사람을 보면서 실망을 할 법도 한데도 조국이 민주화가 되는 한 나도 언젠가는 나갈 것이다,  일본과 한국에서 나를 구출해 주기 위해 노력하는 사람이 있는데 나를 언제까지 잡아두지 못할 것이라고 확신한다. 감옥에서 바깥에 나갈 때를 대비해 영어와 중국어도 책과 감옥 동료의 도움을 받으며 열심히 배운다. 채소도  재배하고 새도 기르고, 육체 단련 운동도 열심히 한다.

더 놀라운 것은 감옥에 나가면 수사 과정과 감옥에서 겪은 비인도적이고 반인권적인 만행을 고발하겠다고 작정을 하고 낱낱이 암기해 놓았다. 그가 나중에 책을 써서 고발하겠다고 마음먹은 것은, 서울구치소에 수감되고 몇 달 뒤였다고 한다. 감옥 생활 초기부터 이런 생각을 한 것이다. 

하지만 감옥에서는 자세하게 집필할 수 없고, 메모 형식으로 써놓는다 해도 수시 점검 때 걸릴 수 있어 예민한 내용은 적어 놓을 수 없었다. 그래서 그만의 독특한 방식으로 머릿속에 차곡차곡 담아 놓는 방법을 고안했다. 예를 들면, 4.19나 어느 대통령 취임식과 연계해 그 전후로 벌어진 일을 몇 번이고 반복해 생각하면서 기억하는 방식이다. 이렇게 해서 보안사에서 고문하고 조작 수사를 했던 수사관들의 스쳐 지나가는 이름도 놓치지 않고 머릿속에 담아놨다. 그 이름 중의 하나가 재일 동포 출신으로 보안사에 회유돼 보안사 수사관을 했던 정인덕이다. 그는 그를 처음 잡으러 왔던 사람 중 하나였다. 

고베 출신의 김씨는 1977년 문교부 장학생으로 뽑혀 한국에 유학을 온 뒤 78년 연세대 경제학과에 입학했다. 그리고 4학년 2학기 때인 81년 9월 9일 보안사 수사관에 영장도 없이 납치돼 고문 끝에 간첩으로 조작됐다. 무기징역을 선고받고 1996년 광복절 특사로 가석방될 때까지 서울구치소, 광주·대구·대전교도소에서 15년 동안 복역했다. 출소 뒤 97년 1월 일본을 돌아가 40살 때 늦깎이 사회생활을 시작했다. 김씨는 이런 과정을 시간순으로 기술했다.

책 중에서 이제까지 잘 몰랐던 내용도 나오는데, 김재규가 중정 부장을 할 때 보안사는 민간인 수사를 하지 못하게 해 일본 유학생 간첩 조작도 할 수 없었다는 것도 그중 하나다. 김씨 사건은 보안사가 조작했다. 전두환이 집권하고 보안사의 위세가 커지면서 일본 유학생 간첩사건을 다시 조작하기 시작하면서 내놓은 최초의 사건이다. 

재소자들이 감방에서 요구르트와 소화제인 에비오제를 섞어 술을 만들어 먹는 얘기도 처음 들었다.

김씨는 일본으로 건너간 뒤 신발공장 등을 전전하며 생활을 하고 있다. 한국처럼 재소자 출신이라고 내놓고 차별은 하지 않아 다행인 면이 있지만, 뒤늦은 사회생활이 쉬울 리 없다. 한국 교도소에서 닦은 어학 실력과 손 기술이 도움이 되기도 했지만 기본적으로 악전고투의 생활임에 틀림없다. 일본 생활 중 2012년 주위의 권유를 받고 재심을 신청했고, 5년 만에 무죄 판결을 받았다. 36년 만의 신원이었다.

이 책을 읽으면서 특히 다음과 구절이 뇌리에 강하게 남았다. 

"현실은 좋은 상황과 나쁜 상황이 번갈아 나타난다. 좋은 일만 계속되지 않는다. 그럼에도 역사를 돌아보면 민중을 억압하고 배신하는 자들은 몰락했다."(183쪽)

그가 15년의 억울한 감옥 생활을 슬기롭게 극복하며 보낼 수 있었던 것도, 감옥에 나온 뒤 지조를 잃지 않고 꿋꿋하게 살고 있는 것도, 그의 생을 기록으로 남긴 것도 그의 이런 낙관적인 역사관이 있었기에 가능했을 것이다. 김씨의 수기를 읽으면서 자연스럽게 야생초 민들레가 떠올랐다. 권력이 아무리 무자비해도 한 사람의 야무진 마음을 짓밟아 무너뜨릴 수 없다는걸, 이 책은 웅변해 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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