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리의 미중론>, 우치다 다쓰루, 미중패권, 미중 갈등
'요즘 시대를 규정하는 열쇳말이 무엇이냐'라는 질문을 던져 보자. 하나의 정답만 있는 것은 아닐 것이다. 누구는 인공지능(AI)이라고 할 것이고, 또 다른 사람은 기후변화를 들 것이다. 또 인구 문제를 말하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사안을 보는 각도와 관심에 따라 여러 가지 다양한 답변이 나오겠지만, 국제정세에 관심이 있는 사람이라면 십중팔구 '미중 대립'이나 '미중 패권 경쟁'을 꼽을 것이다. 우크라이나 전쟁, 가자 전쟁과 같이 세계정세를 달구고 있는 더욱 뜨거운 문제가 있지만, 그것들은 미중 대립이나 미중 패권 경쟁만큼 세계정세에 끼치는 영향력이 크지 않다.
<거리의 미중론(町場の米中論)>(동양경제신문사, 우치다 다쓰루 지음, 2023년 12월)은 요즘 세계정세를 주도하고 있는 미국과 중국 두 나라의 전략과 사상을 논하는 책이다. 다방면에서 박식한 지견을 발신하고 있는 일본의 사상가 우치다 다쓰루가 사상적인 측면에서 미중 패권 경쟁의 심층을 탐구한 책이라고 보면 된다.
합기도 사범으로 고베에서 가이후칸이라는 합기도장을 운영하고 있는 우치다는, 합기도장을 일본 말로 '데라코야'로 부르는 사설 강습소로 활용하고 있다. 최근 이 강습소에서 '미국과 중국'이라는 주제로 연례 세미나를 했다. 세미나의 진행은 초대 강사가 강연을 하고 이어 우치다가 30분가량 코멘트를 한 뒤, 참석한 일반 시민이 강사와 자유토론을 하는 방식으로 진행했다. 이 책은, 강연에서 우치다가 했던 코멘트를 다듬어 펴낸 것이다.
책의 제목이 '거리의 미중론'으로 돼 있지만, 미국론이라고 하는 것이 적절한 것 아니냐는 생각이 들 정도로 미국 얘기에 치우쳐 있다. 저자도 밝히고 있듯이, 강사의 대부분이 미국 전공자인 탓이다. 우치다는 미국과 중국을 균형적으로 보기 위해 중국 쪽 사정을 발표할 강사를 많이 초청하고 싶었지만 그렇게 하지 못했던 사정을 밝히며, 미국에 비해 중국에 관한 정보량이 압도적으로 적은 일본 안의 지식 풍토에 책임을 돌렸다. 따라서 중국에 관해서는 미국처럼 심층을 들여다보지 못하고 세계전략과 지정학적 개관에 관해 얘기하는 것에 만족할 수밖에 없었다고 아쉬워했다.
우치다는 "지금 세계는 미국과 중국이라는 두 선수가 어떻게 행동하느냐에 따라 향방이 결정되지만, 우리 일본인은 할 수 있는 게 한정돼 있다"라는 사정을 전제로 이야기를 풀어간다. 그는 "우리가 할 수 있는 것은 관찰과 예측 정도"라면서 "두 초강대국이 어떠한 통치 원리에 서 있는가, 단기적인 정책보다도 기본적으로 어떠한 취향성을 가지고 있는가"를 파악하는 게 중요하다고 말한다. 즉, 내가 국제정세를 좌지우지할 수 있는 힘이 없다면 국제정세에 영향을 주는 나라의 사정과 생각을 잘 아는 게 중요하다는 얘기다. 이런 자세는 일본보다도 국제 정치에 관한 영향력이 약한 한국에 더욱 필요한 것이이라.
그는 미국론을 전개하면서, 자유와 평등의 길항과 그 극복의 역사가 미국을 움직여온 가장 큰 동력이라고 말한다. 그는 미국은 건국 당시부터 자유와 평등의 갈등을 내장한 국가였다고 말한다. 평등을 강조했던 연방파와 자유를 강조했던 주 독립파의 대립이 그 시초였고, 이것을 처음 봉합 또는 극복한 것이 연방헌법이라는 것이다. 그 이후 일어난 남북전쟁도 애초부터 병립하기 어려운 자유와 평등이 대립하면서 터졌고, 최근에 벌어지고 있는 트럼프 현상도 이런 관점에서 볼 수 있다고 말한다.
하지만, 그는 미국의 장점은 공존하기 어려운 자유와 평등을 어렵게 조화시키면서 내구력 있는 사회를 만들어온 것이라고 진단한다. 즉, 갈등을 극복하는 강한 복원력이 미국의 가장 큰 힘이라는 것이다. 그는 미국의 복원력을 설명하면서, 영화와 소설, 음악의 역할을 자유자재로 끌어들여 자신의 논리를 보강한다. 미국의 힘을 사회과학이 아니라 문화나 생활 속에 스며 있는 저력으로 설명하는 게, 이 책의 장점이자 특색이다.
이 책 속에는, 미국의 내면 깊숙이 내려가 분석하는 우치다의 내공이 고스란히 담겨 있다. 예를 들어, 마크 트웨인이 미국의 국민작가로 추앙받는 이유를 그는 다음과 같이 설명한다. 마크 트웨인이 소설 <허클베리 핀의 모험>에서 남북전쟁 뒤 순박한 소년의 눈으로 남과 북의 모습을 나쁜 것은 나쁜 대로 좋은 것은 좋은 대로 그리며 남북 양쪽의 공감을 이끌어냄으로써, 남북 통합을 이뤄냈다.
또 가수 엘비스 프레슬리는 백인 음악인 컨트리송과 흑인음악인 알앤비 사이의 넘을 수 없는 벽을 넘는 국민 음악을 개척함으로써 음악으로 인종 통합을 이뤘다. 그의 별칭이 '킹'이 된 사연이 여기에 있다는 것이다. 이외에도 미국의 갈등과 통합을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되는 많은 문학 작품, 영화, 일화 등이 수없이 등장한다.
반면, 우치다는 중국에 관해서는 미국만큼 갈등을 넘어설 강인한 복원력이 없다고 말한다. 전통적으로 화이 질서를 통치 시스템으로 삼고 있는 중국은, '중앙 통제의 이완→기근→농민의 유민화→내전 상태'라는 도식이 예부터 지금까지 그대로 이어지고 있다는 것이다. 그래서 지금의 중국을 볼 때 3억명 이상이 넘는 농민공 존재와 점차 벌어지는 빈부 격차가 매우 위험스러운 조짐이라고, 그는 말한다.
그는 이런 중국의 전통적인 통치 시스템과 최근의 상황을 감안할 때, 중국으로서는 '다시 중앙 정부에 의한 공산화' 정책이 대안이 될 것이라고 조심스럽게 점친다. 실제로 2021년 실시된 학교의 학습시간을 줄이고 사설학원을 비영리화하도록 한 '쌍감정책'이 그런 조짐으로 보인다고 말한다.
어쨌든 그는 앞으로 전개될 세계가, 미국이 '불유쾌한 이웃' 중국과 공생하지 않으면 안 되는 시기가 장기화할 것으로 전망한다. 그래서 미국 안에서 '내 편을 늘리고, 적이 과도하게 공격적이 되지 않도록 요구하고, 잠재적인 적들이 동맹관계를 맺지 않도록 하는' 세계 전략을 지지하는 사람이 늘어나고 있다고 말한다.
그는 마지막으로 '불유쾌한 이웃'과 공존을 위한 방법으로, 우애를 제시한다. 서로 갈등하는 자유와 평등이라는 불편한 짝을 통치 원리로 삼는 미국이 미중 양웅 시대를 효과적으로 극복하기 위해서는 자유와 평등 외에 또 다른 제3극으로 우애의 가치를 장착할 필요가 있다는 것이다. 그는 "자유도 평등도 매우 폭력적인 이념이다. 자유를 무한하게 추구하면 '만인의 만인에 의한 투쟁'에 이르고, 평등을 철저하게 추구하면 전체주의 사회가 출현한다"면서 이 대립을 조정하는 우애를 통치원리로 받아들여야 한다고 제안한다.
그는 우애를, 우물가의 어린이를 보고 차마 가만있지 못하는 불인지심, 측은지심에 빗댄다. 자유의 주체인 개인, 평등의 주체인 국가가 아니라 우애의 주체인 공동체가 자유주의의 폭주와 평등주의의 폭주를 억제할 때 바람직한 세상이 온다는 것이다. 즉, 미국이 더욱 우애 있는 사회가 되어야 중국이라는 '불편한 이웃'과 공존공영할 수 있다는 얘기로, 나에겐 들렸다.
전체적으로 미국의 입장에서 '불편한 이웃'인 중국과 어떻게 지낼 수 있는가를 쓴 책이지만, 일반 시민에게도 자유와 평등만으로는 좋은 삶을 살기 어렵다는 교훈을 던져 주고 있다. 프랑스혁명의 이념도 자유와 평등 외에 따로 '박애'를 제시하고 있는데, 그런 깊은 뜻이 담겨 있지 않았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