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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오태규 Jul 22. 2024

서평 : 인공지능, 저널리즘에 독인가 약인가?

AI저널리즘, 저널리즘, 자동화 기사쓰기, 기자, 언론

'사느냐, 죽느냐 그것이 문제로다(To be, or not to be, that is the question).' 셰익스피어의 4대 비극 중 하나인 햄릿에 나오는 명 대사다.


2022년 말 등장한 생성형 로봇 챗GPT의 충격적인 활약상을 보면서, 대다수 언론계 종사가들은 다른 의미에서 이 대사를 떠올렸음 직하다. 이제 인간 고유의 영역이라고 할 수 있는 저널리즘까지 인공지능에 자리를 내주고 사라지는 것이 아니냐고 말이다.


<AI 저널리즘>(두리반, 박창섭 지음, 2023년 6월)은 인공지능이 선도하고 있는 자동화 저널리즘이 무엇이고, 자동화 저널리즘의 발달로 저널리즘은 어떻게 변할 것인지를 탐구한 책이다. 저자인 박창섭씨는 머리말에서 "원하든 원하지 않든, 이제 인공지능은 지식 노동의 대표적인 영역 가운데 하나인 저널리즘에서 필수불가결한 요소가 되고 있다. 따라서 인공지능이 기사 생산방식을 어떻게 바꾸어나갈지, 자동화된 기사들이 독자에게 어떤 영향을 미칠지에 대해서 면밀한 관찰과 진지한 성찰이 시급해졌다"라고 책을 쓴 배경을 밝혔다.


챗GPT 등장하기 10여년 전부터 이미 세계 주요 언론사를 비롯해 저널리즘 현장에 인간이 아닌 로봇이 기사를 쓰는 자동화 저널리즘이 활약하고 있었다. 세계경제포럼의 자료에 따르면, 2009년에 이미 인공지능 로봇이 경기 관련 데이터를 이용해 독립적인 이야기를 가진 스포츠 기사를 작성했고, 2059년에는 기존 수학 이론들을 증명하고 새 이론을 제시하는 수학 연구까지 할 것이라고 한다. 머지않은 시기에 미디어 회사에서 쓰는 기사의 절반을 AI 로봇이 쓰게 될 것이라는 관측도 나오고 있다.


현재에도 <AP 통신>의 '워드스미스', <뉴욕타임스>의 '에디터', <워싱턴포스트>의 '헬리오그래프', <로스앤젤레스 타임스>의 '퀘이크봇' 등 세계의 수많은 언론사가 AI 프로그램으로 상당 부분의 기사를 쓰고 있다. 한국도 예외는 아니지만, 미국과 유럽 등의 수준에 비하면 초보 단계에 있다.


모든 신기술이 그렇듯이 인간은 처음 새로운 기술이 등장하면 놀라움과 함께 거부감을 느낀다. 그리고 시간이 지남에 따라 적응하고 그 기술을 활용한다. 저널리즘 세계에 한정해 봐도 활자 신문에서 라디오가 등장할 때, 라디오에서 텔레비전이 등장할 때, 텔레비전에서 인터넷이 등장할 때 그랬다. 문제는 신기술의 등장과 적응 사이의 시차일 것이다. 라디오와 텔레비전 등장 때만 해도 인간이 어느 정도 따라갈 여유가 있었지만, 인터넷 등장 이후에는 기술 발전 속도를 인간이 따라가는 것이 더욱 힘들어졌다. 인터넷보다 훨씬 고성능 기술인 생성형 AI의 등장은 이런 간극을 더욱 크게 할 것이 분명하다.


이 책은 모두 3부로 돼 있다. '인공지능과 저널리즘의 이해'라는 제목이 붙은 1부에서는 인공지능이 무엇이고 자동화 저널리즘은 어떻게 작동하는지 기술적 내용을 소개하고 있다.


2부(자동화 저널리즘의 활용)에서는 자동화 저널리즘이 현장에서 어떻게 활용되고 있고, 자동화 저널리즘의 장단점과 소비자의 반응을 살피고 있다. 자동화 저널리즘은 데이터를 구조화할 수 있는 분야에서만 기능을 발휘할 수 있으므로 통계를 쉽게 구할 수 있는 스포츠, 금융, 일기예보 분야에서 활용도가 높고, 소비자들도 이런 기사에 관해서는 인간 기자가 쓴 기사와 전혀 차별을 느끼지 못하는 수준까지 왔다는 것이다. 또 자동화 저널리즘은 기자들이 해야 할 반복적이고 지루한 일을 대신함으로써 기자들이 기획이나 심층 보도를 할 여유를 확보해 주고, 효율성을 높임으로써 경영난에 처한 회사에 도움을 주는 장점이 있다.


1부와 2부가 자동화 저널리즘의 기술과 현상을 소개하는 것에 치중하고 있다면, 3부(자동화 저널리즘 대 인간 기자)와 4부(챗GPT와 AI시대, 그리고 저널리즘의 미래)는 AI가 야기할 저널리즘에 대한 충격을 집중적으로 다루고 있다. 내가 볼 때는 이 부분이 이 책의 핵심이다.  


저자는 먼저 인공지능의 발달로 저널리즘의 영역이 크게 확대하는 면을 소개한다. 비용과 시간의 문제로 다루지 못한 지역 뉴스, 지방과 중고등학교 수준의 스포츠 리그, 개인 맞춤형 기사들을 인공지능의 힘을 빌려 다루게 됐다는 것이다. 또 최근 비용 문제로 주춤해진 탐사 보도도 AI가 복잡한 데이터를 분석해 줌으로써 활성화할 수 있다고 말한다. 대표적인 사례가, 세계에서 탐사 전문 기자 400여명이 1년 동안 매달려 밝혀낸 2016년의 '파나마 페이퍼스' 탐사보도라는 것이다.


저자는 그러나 언론의 핵심적인 요소인 기자들의 저널리즘적 판단까지 AI가 맡기엔 한계가 있다고 말한다.  AI가 아무리 발달해도 그 수준은 프로그램 설계자의 능력 정도에 머물 수밖에 없고, AI는 인간 기자의 보조적 수단이라는 얘기다. '태산이 아무리 높아도 하늘 아래 메'라는 시가 언뜻 떠올랐다.


저자는 "전문가로서 기자들의 뉴스 작업은 기본적으로 판단을 내리는 것"이라면서 "이런 판단은 종종 모호하지만 언론계 내에서 전문적 경험을 바탕으로 학습된 산물인 '기자적 직감과 내공'에 의해 이뤄진다"라는 점을 강조했다. AI는 이런 것을 흉내 내기 어렵다는 것이다.


저자는 4부에서 챗GPT로 대표되는 생성형 로봇의 등장으로 자동화 저널리즘이 더욱 깊숙하게 미디어계에 자리를 잡을 것으로 본다. 하지만 인간 대 기술, 인간 기자 대 챗GPT의 관계에서 인간과 인간 기자 우위이고 우위에 서야 한다고 일관되게 강조한다. '챗GPT는 도구로 사용해야 한다'라거나 '로봇은 인간의 하인'이라는 표현이 이런 시각을 보여준다.


저자는 저널리즘에서 인간 기자와 로봇이 경쟁하는 면이 있다는 것을 부인하지는 않지만, 인간 기자와 AI가 협업해 기사를 쓰는 것이 최상의 시나리오라고 말한다. 예를 들어 챗GPT가 잘할 수 있는 문서 요약, 새 아이디어 발굴, 인터뷰 질문 작성 등은 로봇에게 맡기고, 인간 기자들은 그들의 장점인 비판적 사고와 맥락 이해에 집중하는 게 가장 바람직한 협업의 형태라는 것이다.


다음 대목이 아마 이 책이 주장하고자 하는 핵심 내용이라고 나는 생각한다.


"AI는 기자들이 저널리즘을 수행하는 과정도 크게 바꿀 것으로 예상된다. 이미 자동화 저널리즘을 도입한 언론사의 기자들은 다양한 컴퓨터 프로그램을 사용하는 방법을 배우고, 데이터를 이해하고 분석하고 있다. 으로 기자들은 기본적으로 코딩 능력을 갖추고, 데이터를 해독하는 기술을 갖추어야 할 것이다. 또한 컴퓨터와 상호작용하는 법도 터득해야 한다. 미래의 기자들은 단순한 취재 및 기사 작성 능력보다는 어떤 사안을 꿰뚫어 보는 통찰력을 가지고 있느냐에 따라 능력을 평가받은 것으로 보인다."(295쪽)


아는 만큼 보인다는 말이 있듯이, 준비하는 만큼 AI도 주체적으로 활용할 수 있을 것이다. 새로운 기술 발전이 항상 인간에게 도전과 적응이라는 과제를 안겨줬듯이, 장기적으로 보면 AI가 저널리즘에 던지는 과제도 마찬가지 과정을 겪으며 해소되어 가지 않을까,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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