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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오태규 Sep 02. 2024

서평 : 대한민국이 선진국 되기 위해 넘어야 할 문턱

최재천, <숙론>, 폭력테러, 정치

지난 7월 14일, 미국에서 도널드 트럼프 공화당 대통령 후보를 총기로 암살하려다 미수에 그친 사건이 발생했다. 이에 앞서 1월 2일엔 더불어민주당의 이재명 대표가  등산용 칼로 목을 습격 당해 목숨이 경각에 처했던 일이 벌어졌다. 다행히 미국과 한국의 두 정치 지도자는 간신히 목숨을 ·건졌다. 

하지만 두 사건은, 미국과 한국 사회가 아주 커다란 중병에 걸려 있다는 것을 잘 보여준다. 사회가 극도로 분열된 나머지, 문제를 대화가 아닌 폭력으로 해결하려는 풍조가 만연해 있음을 보여준다. 특히, 사회의 갈등을 수렴하고 해결하는 것을 본업으로 하는 정치인이 폭력과 증오의 대상이 된다는 것은, 그 사회의 분열과 대립이 갈 데까지 갔다는 징표라고 봐도 무방하다.


꼭 이재명 대표에 대한 암살 미수 사건이 아니더라도 한국 사회가 갈등 해소 능력을 상실했음을 보여주는 사례는 주위에 수두룩하다. 최근의 사례로는 정부의 일방적인 의사 정원 2000명 증원과 의료계의 맹 반발을 들 수 있다. 의료 종사자와 환자뿐 아니라 학생과 학부모, 일반 시민까지 포함하는 다양한 이해관계자가 있는 사안을 총선 유· 불리만을 고려해 밀어붙이다 벌어진 참사라고 할 수 있다.

이렇게 이해관계자가 많이 있는 사안일수록 당사자들이 모여 시간이 걸리더라도 머리를 맞대고 숙의를 해  해결 방안을 만들어내야 하는데, 정부가 사심을 가지고 힘으로 제압하려고 하니 사달이 나지 않았다면 그것이 이상한 일이다.

<숙론>(김영사, 최재천 지음, 2024년 5월)은, 쉽게 말하면 갈등을 대화를 통해 해결하는 방법을 가르쳐 주는 책이다. 평생 인간과 자연을 관찰해온 생태학자이자 동물행동학자인 최재천 이화여대 에코과학부 석좌교수가, 평생 품어온 문제의식과 해결 방안을 정리했다.

그는 프롤로그에서 "나는 대한민국 교육이 안고 있는 온갖 문제점은 물론, 우리 사회가 겪고 있는 다양한 형태의 갈등도 상당 부분 토론 부재에 기인한다고 생각한다"라고 말했다. 책의 부제가 '어떻게 마주 앉아 대화할 것인가'로 된 이유를 짐작할 수 있는 말이다. 

그는 한국 사회의 토론 부재, 소통 부재를 해소하기 위해  이 책을 썼다. 하지만 토론을 잘하는 방법이 아니라 토론을 잘 이끄는 방법을 다뤘다. 배고픈 사람에게 빵을 주는 것이 아니라 빵을 만드는 법을 가르쳐 주는 것과 같은 문제의식이라고 보면 된다.

이 책은 모두 5부로 구성돼 있다. 1부 숙제에서는 이념, 지역, 남녀, 세대, 환경, 다문화 등 한국 사회가 안고 있는 다양한 갈등 상황을 동물의 의사소통과 인간의 의사소통을 비교하면서 소통의 어려움을 쉽게 설명한다. 2부(교육)에서는 한국 사회의 소통 부재의 근본 원인이 교육에 있다고 지목하고 해결 방안을 논한다. 그는 학교가 "공존을 위한 협력과 배려를 배우는 곳이 아니라 오로지 신분 상승을 꾀하는 경쟁의 각축장”이 됐다면서, 홀로서기가 아닌 함께 손잡기 교육의 중요성을 설파한다.

3부(표본)에서는 저자가 학생으로서 교수로서 배우고 경험했던 숙론 교육을 소개한다. 예를 들면, 하버드대학 시절에 배우고 실험했던 숙론의 유효성을 자세하게 설명한다. 4부(통섭)에서는 1990년 넬슨 만델라의 석방 이후 혼란이 예상됐던 남아공의 사례와 저자가 한국의 각종 위원회에서 위원장으로 경험한 일을 돌아보며 숙론의 중요성을 강조한다. 남아공에서는 몽플뢰르 콘퍼런스를 조직해 갈등을 숙론을 통해 성공적으로 해결했고, 저자가 위원장을 맡았던 '제돌이야생방류시민위원회’와 '기획재정부 중장기전략위원회'에서도 통섭적인 회의를 통해 좋은 성과를 거뒀음을 소개한다. 

마지막 5부(연마)에서는 숙론을 성공적으로 이끄는 방법들을 알려준다. 프롤로그에서 말한, 탁월한 사회자, 훌륭한 진행 중재자가 익혀야 할 기술이라고 보면 된다. 작은 제목만 보면, 그가 좋은 토론 사회자가 갖춰야 덕목이 무엇인지 알 수 있다. 작은 제목을 순서대로 적으면 다음과 같다.

적정 환경을 조성하라, 너 자신을 알라, 치밀하게 준비하고 유연하게 진행하라, 규칙부터 합의하라, 발언 정리할 시간을 허하라, 기꺼이 '선의의 악마'가 돼라, 막히면 쪼개라, 필요하면 열정도 가장하라, 개떡같이 말해도 찰떡같이 알아들어라.   

그가 이 책에서 하고자 하는 말은 분명하다. 다음 대목에 그의 문제의식과 답이 오롯이 들어 있다.

"소통은 원래 안 되는 게 정상이다. 잘되면 신기한 일이다. 소통이 당연히 잘 되리라 착각하기 때문에 불통에 불평을 쏟아내는 것이다. 소통은 안 되는 게 정상이라고 해도 우리가 하는 일의 어느 순간에는 반드시 소통이 필요하다는 데 문제가 있다. <중략> 소통은 아무리 어렵더라도 반드시 이뤄내야 한다. 힘들어도 끝까지 될 때까지 열심히 최선의 노력을 다해야 한다. 이제 우리 사회가 숙론을 통한 소통을 배워야 할 때다."(160쪽)   

그는 에필로그에서 말한다. 한국이 "어느덧 어떤 기준을 들이대도 당당한 선진국이 되었건만 여전히 후진성을 면하지 못하는 단 분야가 정치다. 그러나 이걸 이대로 그냥 둘 우리 국민이 아니다. 머지않은 장래에 우리 국민은 반드시 정치도 다른 모든 분야처럼 세계가 칭송할 수준으로 끌어올리고 말리라 나는 확신한다."라고.

나는 그가 정말로 확신해서 이 말을 한 것이 아니라 정치가 그렇게 하지 못하면 한국이 다시 후진국으로 전락하고 말 것이라는 '최후의 경고'를 반어법으로 표현한 것이라고 생각한다.  말로 할 것을 주먹으로 하는 야만적인 풍조를 정치권부터 대오각성해 고치지 못하면 한국의 미래는 없다는 게 최재천 교수의 본심일 것이라고, 나는 굳게 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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