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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오태규 Aug 26. 2024

서평 : 한국외교 제대로 가고 있나?

<문정인의 미래 시나리오>, 외교, 코로나, 미중관계

2019년 말~2020년 초부터 2년 반 동안 세상을 발칵 뒤집어 놨던 코로나(코비드-19) 감염 사태가, 지금은 기억에서 가물가물하다. 코로나가 기승을 부릴 때는 코로나가 모든 것을 짚어삼킬 것 같은 위기감 속에서 하루하루를 지냈는데 말이다.

어떤 큰일이 발생하면 호들갑을 떨다가도 그 일이 지나가면 언제 그런 일이 있었느냐는 듯이 태연해지는 게 인간의 속성이자 한계인지 모른다. 여하튼 지금은 일상생활을 하는 데 코로나는 거의 잊힌 존재가 됐다. 

코로나가 막바지 기승을 부리고 있을 때 나온 <문정인의 미래 시나리오>(청림출판, 문정인 지음, 2021년 3월)는 코로나 사태가 없었다면 탄생하지 않았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코로나가 없어진 지금도 국제정세의 흐름을 내다보고 그 속에서 한국이 어떤 선택을 해야 하는지를 고민할 때  이 책이 제공하는 통찰력은 여전히 유효하다.

저자가 책 말미의 '감사의 글'에서 밝히고 있듯이, 코로나 감염 사태 때 <제이티비시(JTBC)> 의 '차이나는 클라스'라는 프로그램에서 했던 '코로나 사태와 국제정치' 강연과, <한국방송(KBS)>의 특집 프로그램 '코로나19 이후, 대한민국의 길을 묻다'에 출연해 강연했던 '코로나 시대의 미중관계와 한국의 선택' 등이 이 책의 주요 뼈대를 이룬다. 이 책이 '코로나 바이러스가 세상을 바꾸다'라는 제목의 1부와 '포스트 코로나 시대와 미중 신냉전의 미래'라는 제목의 2부 체제로 된 배경이다.

지금 코로나는 한고비를 넘겼으니 코로나가 세계 질서에 어떤 변화를 가져왔는지는 1부를 읽으면서 비교·점검을 하면 좋을 것 같다. 한 가지 분명한 것은, 코로나 사태는 잠잠해졌지만 인간이 개발 지상주의, 성장지상주의에서 탈피하지 않는 한 코로나와 같은, 아니 코로나보다 더한 감염병 사태는 반드시 재발할 것이고, 이런 사태가 국제 질서에도 큰 영향을 줄 것이란 사실이다.

문 교수는 1부에서 코로나 이후 미래의 세계 질서를 5가지 시나리오로 예측했다. 첫째 미중 대결 구도가 지속하는 현상 유지, 둘째  세계화에 역행하는 폐쇄적인 성곽도시의 부활, 셋째 유엔과 다자주의를 통한 세계 평화의 팍스 유니버설리스, 넷째 미국 주도의 팍스 아메리카나, 다섯째 중국 패권의 팍스 시니카를 제시했다.

코로나 사태가 종식된 이후 뒤돌아보니, 첫 번째와 세 번째의 중간 정도에서 세계 질서가 움직이고 있는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코로나 사태 이후에도 미국과 중국 두 강대국을 축으로 한 경쟁이 그대로 지속되고 있고, 유엔은 이전보다 힘을 잃고 있지만 글로벌 사우스의 존재감 상승과 브릭스의 확대에서 볼 수 있듯이 세계는 이전보다 다극화 방향으로 움직이고 있다고 할 수 있으니까 말이다.

중요한 것은, 코로나가 세계 질서에 어떤 영향을 줬든 한국이 이런 변화 속에서 어떤 선택을 해야 하는가 하는 점이다. 

문 교수는 2부에서 미중 사이의 신냉전이 다각적으로 펼쳐지고 있다는 것을, 지정학, 지경학, 기술 민족주의, 이념 대결과 소프트파워의 4가지 차원에서 설명한다. 그러면서 미중 패권도 개선 방향의 양두 체제, 악화하는 신냉전 체제, 현상 유지의 차가운 평화라는 세 가지 방향이 있지만, 추세로 보아 미중이 '강 대 강의 충돌형 패권 경쟁'을 피하기 어려울 것으로 전망했다. 그는 "코로나 사태로 미중 대결이 심화하면서 현상 유지가 악화되는 현상이 세계 질서의 새로운 일상으로 자리 잡을 것"(152쪽"이라고 예견했는데, 지금 돌아보면 적확한 예견이다.

문 교수가 미중 관계가 악화될 것으로 보는 이유는, 미국의 중국에 대한 적대 의식이 정권 교체와 관계없이 구조화됐다고 보기 때문이다. 버락 오바마 정권 때인 2011년 아시아 회귀 전략(Pivot To  Asia) 전략이, 도널드 트럼프 정권의 2019년 인도태평양전략으로 이어졌고, 2021년 출범한 조 바이든 정권도 이런 구조화된 틀을 깨지 못할 것으로 진단했다. 특히, 그는 트럼프 정권 때인 2020년 5월에 나온 '대중국 전략 보고서'를 큰 변곡점으로 봤다. 이전까지 트럼프는 거래주의 차원에서 중국을 견제, 압박했으나 이 보고서가 나온 뒤로는 본격적으로 대결주의를 택했고, 이런 흐름이 바이든 정권에서도 계속되고 있다는 것이다.

 특히, 그는 이념 전쟁을 가장 우려했다. "중국 공산당 타도라는 미국의 선제공격으로 촉발된 이념 대결은 미중 관계를 가장 불확실하게 만드는 변수"(257쪽)이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그는 2부 결론에서 한국의 선택 방향을 다뤘다. 미중의 악화된 패권 경쟁 속에서 한국이 선택할 방향으로 ①한미 동맹 강화, ②중국 편승, ③ 홀로서기, ④현상 유지, ⑤초월적 외교의 다섯 가지를 제시하고 각 시나리오별 득실을 점검했다. 

그는 '현상 유지 전략이 미중 신냉전 구도 아래에서 최선의 방안'이라면서도 미국의 압력 때문에 그것을 택하기 어려울 것으로 봤다. 그러면서 다음과 같이 말했다. 길지만 인용한다.

"지금까지 4가지 전략적 선택을 살펴봤다. 과거의 역사로 보아 한미 동맹을 강화하면 모든 문제가 풀릴 것 같지만, 현실은 그렇지 않아 보인다. 중국의 비중이 그만큼 커졌기 때문에 미국과 함께 중국을 견제·봉쇄하는 데는 숱한 위험과 비용이 뒤따를 것이다. 어떤 위험과 비용은 아예 우리가 감당하지 못할 수도 있다. 그렇다고 중국 편승이 대안이 되기도 어렵다. 무엇보다 중국이 한국과의 명시적 동맹을 원치 않는다. 중국의 전략은 미국이 만든 국제 질서 아래에서 미국과 경쟁하는 것이기 때문에 최소한 단기적으로는 한국이 중국에 편승하는 것이 부담스러울 것이다. 그렇다고 홀로서기 전략이 대안이 될 수 있는 것도 아니다. 독자 핵 무장은 그 실효성도 의문시될 뿐 아니라 국제적 제약 때문에 가능해 보이지 않는다. 그리고 중립화 통일 방안도 현실적 대안이 되기 어렵다. 이렇게 보면, 현상 유지 전략이 가장 바랍직하다고 평가된다. 가능한 미국, 중국과 좋은 관계를 유지해 우리의 생존과 번영, 한반도의 평화를 확보하는 것이 우리로서는 최선이다. 미국, 중국과 동시에 좋은 관계를 유지하려면 미중 관계가 좋아야 한다. 그러나 미중관계는 최악으로 치닫고 있다. 이런 추세라면 과거 김대중 대통령의 현상 유지 전략을 그대로 추진하기는 사실상 불가능하다. 여기서 초월적 전략을 하나의 대안으로 고려할 수 있다. 초월적 전략은 미중 진영 외교의 틀에서 벗어나 다자 협력과 지역 통합의 새로운 질서를 만들고, 그 질서 속에서 미국과 중국이 신냉전 충돌로 가는 것을 막고 새로운 외교 공간을 만드는 적극적이고 미래지향적인 전략이다."(294~295쪽)

현상 유지가 최선이나 그럴 환경이 아니므로 초월적 외교를 하자는 제안이다. 한국의 외교 역량으로 초월적 외교가 현실적으로 가능할 것인지는 의문이지만, 지금 윤석열 정권은 가장 쉽지만 위험한 길로 가는 것은 확실하다. 미국의 앞잡이로 나서 중국 압박, 견제의 선봉장 노릇을 하고 있으니 말이다.

문 교수는 녹록지 않은 초월적 외교를 수행하기 위해서는 4가지가 필요하다고 강조한다. 바로, ① 명민한 스마트 외교, ② 원칙에 기초한 결기 외교, ③ 국민적 합의 외교, ④ 공공 외교다. 

윤 정권이 이 방향의 외교를 택하기엔 너무 멀리 나갔다. 다음 정권 때는 과연 이런 전략의 선택이 가능할까. 미리 공부하고 준비해 둬도 쉽지 않은 일이지만 그래도 공부하고 준비해 놔야 지금보다 조금이라도 앞으로 나갈 수 있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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