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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오태규 Oct 07. 2024

서평 : '살권수, 그거 개나 줘라'

<검찰국가의 배신>, 윤석열, 김학의, 긴급출금, 검찰독재

'검찰총장 출신 대통령' 윤석열이 탄생한 지 어느덧 2년이 훌쩍 지났다. 전 정권(문재인 정권)에서 임명된 검찰총장이 그 정권에 등을 돌리고 야당(국민의힘)의 대선 후보가 되어 정권을 잡은 것은, 세계에서 유례가 없는 일이다. 


전 정권에서 사정을 총괄 지휘했던 검찰총장이 자신을 발탁한 정권에 칼을 들이대고 정권을 잡았으니, 내용적으로는 '쿠데타'라고 할 수 있다. 그러나 합법적인 선거를 통해 정권을 잡았으니, 형식적으로는 쿠데타가 아니다. 독일의 바이마르공화국 시절, 선거를 통해 합법적으로 탄생한 히틀러 정권의 권력 장악 방식과 흡사하다. 그래서 시중에서 그를 '윤틀러'로 부르는지도 모르겠다.


윤석열이 이끄는 검찰 국가의 모습은 참담하다. 정치, 경제, 외교, 사회, 문화 등 어느 한 곳도 그가 들어서기 전보다 나아진 곳이 없다. 각종 여론조사에서 윤석열 하면 고개를 절레절레 흔드는 사람이 10명 중 7명 정도나 되는 현실이 검찰 정권이 초래한 참담한 실상을 잘 보여준다. 


그가 정권을 잡을 때 사용한 가장 큰 무기는 '살아 있는 권력 수사', 즉 '살권수'였다. 이를 공정과 상식으로 포장해, 그를 임명한 문재인 정권의 '내로남불'을 공격했다. 순진한 유권자들이 그런 가짜 공정과 상식에 현혹되어 그를 대통령 자리에 올려놨지만, 지금 아주 혹독한 대가를 치르고 있는 중이다.


<검찰 국가의 배신>(한겨레출판, 이춘재 지음, 2024년 5월)은 유권자를 속이고 권력의 정점에 오른 윤석열의 검찰 국가가 정권을 잡기 전부터 배신을 내장하고 있었음을 밝히는 책이다. 저자인 이춘재씨는 검찰과 법원을 오래 출입한 법조통 기자로, 지금 <한겨레> 논설위원으로 일하고 있다. 이 책은 지난해 1월에는 윤석열의  검찰 국가가 어떻게 탄생했는가를 파헤친 <검찰 국가의 탄생>(서해문집)에 이은, 그의 검찰 국가 비판 시리즈 2탄이다.  


검찰 국가의 탄생이 큰 틀에서 검찰 국가의 탄생 배경을 설명하려고 했다면, 이 책은 김학의 전 법무부 차관의 긴급 출국금지 사건 수사라는 단 한 가지 사건에 초점을 두고 검찰의 조직 이기주의와 일탈을 고발하고 있다. 전자가 숲을 보면서 실체를 찾아가는 방식이라면, 후자는 나무를 통해 사안의 본질에 다가가려는 방식이다.


'김학의 긴급 출국금지 사건'의 개요는 다음과 같다. 건설업자로부터 향응과 뇌물, 성 상납을 받은 혐의를 사고 있는 '잘나가는 검사' 김학의가 구체적인 물증과 피해자의 진술 등이 있는데도 검찰의 수사에서 잇달아 무혐의 처분을 받았다. 이에 문재인 대통령이 2019년 3월 18일  법무장관에게 김학의 성 접대 의혹, 장자연 리스트 의혹, 클럽 버닝썬 의혹을 철저히 조사하라고 지시했다. 김학의는 그 지시가 나온 나흘 뒤 인천공항을 통해 타이로 도파하려다가 검찰과 출입국관리국 직원들에게 출국을 저지 당했다. 이때 출국을 저지하기 위해 사용했던 제도가 '긴급 출금' 제도인데, 이때 절차를 제대로 지켰는지 아닌지 하는 문제가 긴급 출금으로부터 2년 정도 지난 2020년 말 문 정권과 검찰의 대립, 이른바 추미애 법무장관-윤석열 검찰총장의 '추윤 갈등' 국면에서 불거졌다. 


저자의 주장을 거칠게 축약하면, 이 사건의 본질은  문 정권의 검찰 개혁에 불만을 가진 윤석열의 검찰이 절차상의 문제를 빌미로 검찰 개혁에 앞장섰던 청와대 민정수석실의 이광철 행정관(변호사)과, 그에 협력해온 이성윤, 이규원 검사 등에게 보복을 가하려고 한 것이다. 이 과정에서 윤석열 사단은 갖가지 법 기술을 동원했다. 검사가 공익 고발인이 되어 이 사건을 야당에 제보하고, 윤 총장은 이 사건을 '윤석열 사단의 행동대장'으로 불리는 자신의 심복 이정섭 검사에게 배당했다. 그리고 친윤 검사들이 관여한 것은 빼고 반윤 검사와 인물에는 철저한 수사를 했다. 기소도 당연히 편파였다.


이때 윤석열 사단이 동원한 논리가 '아무리 흉악한 범죄 혐의자라도 절차를 지켜야 한다'라는 미란다 원칙인데, 친검 미디어들은 '자기 식구 봐주기'와 검찰 개혁에 대한 조직적 거부라는 사건의 본질은 외면한 채 이 사건을 한국판 '미란다 사건'으로 포장해 주기에 급급했다. 더욱 희극적인 것은, 이 사건을 맡은 주임 검사 이정섭은 김학의는 죄가 드러나지도 않았는데 흉악범인 미란다와 비교하는 것은 맞지 않다는 논리를 구사했다는 사실이다.


결국, 이 사건은 윤석열 사단의 총력전에도 불구하고 검찰이 불법 출금을 했다고 기소에 관여했다며 기소한 이광철 변호사, 이성윤, 이규원 검사, 차규근 전 출입국관리본부장은 모두 1, 2심에서 무죄 판결을 받았다. 아직 대법원 판결이 남았지만, 윤석열 검찰의 완패다. 더욱이 이 사건 재판에서 피고석에 섰던 이성윤(더불어민주당)과 차규근(조국혁신당)은 22대 총선에 출마해 금배지를 달았고, 윤석열의 행동대장 노릇을 했던 이정섭 검사는 2023년 12월 처남의 마약 흡입 사건 무마 등의 혐의로 국회에서 탄핵안이 통과돼 지금 헌재에서 탄핵 재판을 받고 있다. 역시 세상은 한 방향으로 가는 것이 아니라 돌고 돈다는 걸 느끼는 장면이다. 


저자는 이 사건의 본질을 "검찰이 제 식구에 대한 노골적인 봐주기 수사로 국가의 사법 질서를 왜곡해 놓고 그에 대한 책임을 물으려던 이들에게 보복 수사를 한 것"이라고 말했다. 저자가 이 사건의 발생부터 재판까지 시간 순으로 자세하게 검찰 안팎에 있는 관련자들의 움직임을 그림 그리듯이 추적해 기록해 놨다. 글을 읽다 보면 자연스레 저자가 왜 이런 결론을 내리게 됐는지 알 수 있다.


저자는 검사 윤석열을 대통령으로 만든 건 '살권수(살아 있는 권력 수사)'였다고 단언했다. 그는 역대 총장이 살아 있는 권력을 수사하면서도 한 번도 입 밖에 꺼내지 않았던 '살권수'를 공공연히 강조했고, 국민과 검사들은 환호했다. 그러나 그가 권력을 잡은 뒤, 그의 부인 김건희씨가 연루된 도이치 모터스 주가조작 사건, 디올 명품 가방 수수 사건, 그가 깊게 관여된 채 상병 죽음 사건 등은 검찰 수사에서 성역으로 남아 있다. 내로남불도 이런 내로남불이 없다. 살권수는 인기를 독차지하기 위한 일시적인 선택적 언사였음이 드러났다.


더욱이 살권수를 소리 높여 외치던 때 뒤쪽에선 그의 총장 시절 그의 '눈과 귀'라고 불리는 손준성 수사정보정책관 등이 윤 총장과 그의 부인, 한동훈씨를 명예훼손한 혐의로 여당 정치인과 기자 등을 국민의힘을 동원해 고발하도록 사주했다. 손준성의 위치로 보아 윤 총장이 이런 일을 몰랐을 리가 없었을 터이다. 사주를 사주했을 가능성이 매우 크다.


"'윤석열 검찰'의 살권수가 권력의 부패를 막기 위한 목적보다 검찰 개혁을 추진하는 정권에 타격을 가하려는 의도가 더 크게 작용한 게 아니냐는 의심이다."(224쪽)


나는 이 책을 읽으면서 의심이 아니라 '확신'이 들었다. 그리고 다음과 같은 말이 입가를 맴돌았다. '살권수, 그거 개나 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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