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의 운명에 대한 아주 개인적인 생각>, 유시민, 코끼리
일본의 극작가 이노우에 히사시(1934~2010)는 글을 잘 쓰는 방법에 대해 이렇게 말했다. 우선 어려운 것을 쉽게 써야 한다, 다음엔 쉬운 것을 깊게 쓰고, 그다음엔 깊은 것을 재미있게 써야 한다고.
어려운 것을 쉽게 쓰는 것이 첫 관문이다. 그러나 첫 관문을 돌파하는 사람이 의외로 많지 않다. 대단한 전문가로 알려진 사람도 글을 보면, 전문 용어가 난무하는 그래서 보통 사람이 이해하기 어려운 글을 쓰는 경우가 숱하다. 그래도 거기까지는 노력으로 해낼 수 있다. 2단계는 쉬운 것을 깊게 쓰는 것이다. 일단 쉽게 쓸 수 있으면 다음 단계로 나가기는 1단계보다 쉽다. 끈기와 노력이 뒷받침되면 돌파할 수 있다.
가장 어려운 관문은 깊은 것을 재미있게 쓰는 것이라고, 나는 생각한다. 이 단계는 끈기와 노력의 영역이 아니다. 타고난 재주가 있어야 한다.
나는 글을 쓸 때, 이노우에가 말한 1단계 돌파가 목표다. 그것도 달성하기 어려워 매번 낑낑댄다. 그래서 2단계, 3단계 수준의 글을 쓰는 사람을 보면 경외심과 함께 시기심이 발동한다. 유시민 작가가 그런 사람 중의 한 명이다. 내가 볼 때, 유 작가의 글은 2단계를 넘어 3단계의 어디쯤에 있다. 글쓰기의 고수다.
<그의 운명에 대한 아주 개인적인 생각>(생각의길, 유시민 지음, 2024년 6월)은 윤석열 대통령의 운명을 다룬 정치 평론서다. 22대 총선에서 참패하고도 전혀 반성도 변함도 없는 윤석열 대통령이 과연 임기를 마칠 수 있을까, 마치게 해도 대한민국을 괜찮은 걸까에 관해 묻고 대답한 책이다.
인문과 과학을 넘나드는 풍부한 독서와 다양한 경험이 녹아든, 쉽고 깊고 재미있는 그의 글을 따라가다 보면 어느덧 그의 주장에 빠져들게 된다. 그게 유시민 글의 장점이다. 그의 글쓰기 장점을 하나 더 추가하자면, 주장과 판단의 근거를 솔직하게 밝힌다는 점일 게다. 저널리즘에서 말하는 '투명성의 원칙'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런 글쓰기 자세가 그의 분석과 주장에 신뢰와 힘을 실어준다.
유 작가는 이 책에서 윤석열의 당선은 유권자도 가담한 '정치적 사고'였다고 규정한다. 유권자들도 그가 엄청나게 무지하고 무능하고 포악한 사람인 줄 전혀 모르고 뽑아놓고서 쩔쩔매고 있는 게 지금의 정치 상황이라고 본다.
그의 비유로는, 윤석열은 '도자기 박물관에 들어온 코끼리'와 같은 존재다. 스스로 박물관 밖으로 나갈 생각이 없는 아둔하고 고집 센 코끼리다. 그를 도자기(나라)를 깨뜨리지 않게 하면서 어떻게 밖으로 곱게 밖으로 내보낼 수 있을까? 이것이 지금 한국 사회가 당면한 긴급하고 중대한 과제다.
유 작가는 윤석열이 취할 수 있는 방안으로 세 가지를 제시한다. 하나는 자진 사퇴다. 두 번째는 야당과 협치고, 세 번째는 정면 대결이다. 유 작가는 윤의 성품과 능력, 관행으로 볼 때 첫째와 둘째는 전혀 고려하지도 않을 것이라고 말한다. 즉, 세 번째인 대결노선을 택할 가능성이 크다고 본다. 문제는 대결노선은 불행하게도 피바람을 동반한다는 것이다. 탄핵과 구속을 포함한 정치 내전이 불가피하다.
이런 불행을 모면할 방법은 없을까? 유 작가는 미국의 리처드 닉슨 대통령이 1974년 워터게이트 사건으로 탄핵 직전에 자진해서 사임한 사례를 소환한다. 닉슨이 사임한 뒤 후임 대통령이 된 제럴드 포드가 '항구적 불기소 사면(놀리 프로시콰이 nolle prosequi)'을 한 것처럼, 한국에서도 자진 사퇴와 불기소 특별사면을 동시에 조합함으로써 파국을 면해 보자는 제안이다. 한국은 법 제도상 항구적 불기소 사면 제도 없으니 이를 법제화해 윤의 자진 사퇴를 유도하자는, 즉 궁지에 몰린 쥐에게 퇴로를 열어주면서 쫓아내자는 아이디어다. 요즘 시민사회 원로들이 제안한 뒤 일부 야당 의원들이 추동하고 있는 '2년 임기 단축 개헌' 방안이 유 작가의 제안과 비슷하다고 할 수 있다.
하지만 아무리 좋은 아이디어라도 당사자가 받아들이는 것과는 별개다. 자기가 뭘 잘못했고 하고 있는지도 모른 채 여전히 왕 노릇에 취해 있는 윤 대통령이 스스로 그런 길을 받아들이긴 쉽지 않아 보인다. 장차 지지율이 10% 밑으로 떨어지고, 여권 안에서 자중지란이 벌어지면서 그를 버리는 움직임이 가시화하면 그거라도 하게 해달라고 읍소할지 모르겠지만.
그가 끝까지 임기를 채우든 중도에서 물러나든 그의 말로가 행복하지 않을 것은 분명한 것 같다. 이 책처럼 그의 탄핵과 중도 퇴진을 진지하게 분석하고 전망하는 글들이 쏟아져 나오고, 정치권에서 탄핵이라는 단어가 빈번하게 등장하고 있는 사실이 그의 앞날이 순탄하지 않을 것임을 예고한다. 나는 유 작가의 아이디어가 그럴듯하다고 보지만, 그가 받아들일 것 같지 않다는 데 500원을 건다. 그런 아이디어를 수용할 정도의 판단력 소지자라면 애초 그런 선택을 고민해야 할 상황을 초래하지 않았을 터이기 때문이다.
윤의 말로에 대한 얘기와는 별개로, 나는 이 책에서 '언론의 몰락'을 다룬 제3장을 주의 깊게 읽었다. '22대 총선에서 국민의힘만 패한 것이 아니라 언론도 졌다'는 유 작가의 주장, 한국의 신문 방송은 대부분 기득권 집단의 이념을 전파하고 그들의 이익을 수호하는 정보 유통회사로 전락했다는 유 작가의 말에 공감한다. 시민언론을 표방하고 나온 <한겨레> <경향신문> <오마이뉴스> <프레시안> 같은 독립언론이 '기자들의 언론'이 되어, 권력 감시, 공정 보도를 제대로 하지 못하고 있다는 지적에도 이의가 없다. 한국의 기자들은 경청하고 깊이 반성해야 한다.
유 작가는 기존 언론에 큰 실망감을 표시하면서 <김어준의 겸손은 힘들다>의 김어준 씨를 기존 언론을 대체할 새로운 저널리즘의 대표로 꼽았다. <뉴스타파>, <서울의 소리>, <스픽스TV>의 활약에도 높은 점수를 줬다. 이들 매체들이 22대 총선에서 기존 언론이 외면하거나 무시하는 내용을 적극적으로 발굴하고 보도한 것에 나도 박수를 쳤다.
하지만 기존 언론은 이제 완전히 맛이 갔고, 앞으로는 이른바 '새로운 저널리즘'만이 희망이고 신뢰할 수 있다는 평가에는 쉽게 동의하기 어렵다. '김어준의 겸공'의 장점은 기존 미디어가 외면하고 무시하는 쪽의 목소리를 생생하게 들려주는 것이다. 그를 통해 기존 미디어만 보면 알 수 없는 얘기와 해석을 들을 수 있다. 단점은 한쪽 당사자의 인터뷰에 치중된 경우가 많고 독자 취재가 아니라 이미 다른 미디어 등에서 나온 얘기를 대상으로 해석하고 평가하는 한계가 있다는 것이다. 어떤 면에서는 그 역시 일방적이고 편파적이다.
그래서 나는, 독자가 저널리즘을 대할 때 가장 중요한 것은 가려 보고 듣는 능력, 즉 미디어 리터러시라고 생각한다. 새로운 저널리즘이 구조적으로 기득권 세력에 편파적인 한국 전통 미디어의 보도 풍토에 구멍을 내고 전체적으로 시각의 균형을 잡아주고 있다는 점에서, 나도 유 작가처럼 매우 높게 평가한다. 하지만 당장 새로운 저널리즘이 전통 저널리즘을 완전히 대체할 것이라고 보지 않는다. 대체하는 게 바람직한 것인지도 의문이다. 오히려 그들의 활약에 자극받아 전통 저널리즘 중 일부 세력이라도 각성해, 권력 감시와 공정 보도, 진실 보도라는 저널리즘 본래의 가치를 되찾길 기대한다. 내가 전통 미디어 출신이어서 그런지 모르겠지만, 아직도 일부 전통 미디어의 경우는 각성하고 노력하면 좋은 저널리즘을 구현할 여지가 있을 거라는 미련을 버리지 못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