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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평> '폭군 윤석열'을 배설한 검찰을 내부고발한다.

임정은 검사, 검찰 조직이기주의, 위해모증 교사

by 오태규

'콩 심은 데 콩 나고 팥 심은 데 팥 난다.' 어떤 결과가 나오는 것은 그런 결과가 나올 만한 이유가 있기 때문이라는 말이다.

한국 역사상 최악의 폭군이자 혼군이며 암군이랄 수 있는 윤석열은 어떻게 태어났을까? 집권 전에 그가 유일하게 근무했던 검찰 조직의 행태와 생리가 '폭군 윤석열' 탄생에 8할 이상의 책임이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터이다.

1987년 민주화 이후 검찰의 역사는, 수사권과 기소권이라는 무소불위의 권력을 가지고 마구 힘자랑을 과시해 온 역사라고 할 수 있다. 민주화 이전에 검찰을 견제해왔던 군과 정보기관의 힘이 빠지면서, 검찰의 독주는 '브레이크 없는 자동차'처럼 질주했다. 정권이라도 자신의 이익과 일치하는 정권에는 충성을 했지만, 자신의 이익에 반하는 정권에는 총력전을 펴듯 대들었다.

그때그때마다 '살권수(살아 있는 권력 수사)'네 '성역 없는 수사'네 '거악 척결'이네 하며 화려한 말로 포장하지만, 그 저류에는 항상 검찰의 조직 이기주의가 도도하게 흐르고 있다. 검찰의 이익을 지켜 준 이명박, 박근혜 정권 시절의 검찰과 검찰 개혁에 나선 노무현, 문재인 정권 시절의 검찰이 어떻게 달랐는지 살펴만 봐도 누구나 금세 알 수 있다.

검찰은 '공익의 대표자' '정의와 인권의 수호자'라고 스스로 내세우지만, 속을 보면 전혀 딴판이다. 검찰 밖 사람들에게는 추상같이 법의 칼을 들이대지만 자기 식구들의 위법에는 질끈 눈을 감는다. 그래도 일반 시민들이 그 조직 내부의 비밀스러운 치부를 들춰 볼 수 없었기 때문에 그런 검찰의 죄악상을 제대로 알기 힘들었다.

<계속 가보겠습니다>(메디치, 임은정 지음, 2022년 7월)는 검찰의 '내부 고발자'를 자임하는 임은정 검사(현 대전지검 부장검사)가 일반 시민들이 알 수 없는 검찰의 치부를 까발리고 고발하는 책이다. 검찰을 취재했던 기자나 그 조직에 잠시 머물렀던 관계자가 검찰을 고발한 책은 더러 있었지만, 검찰 조직 안에서 일하고 있는 현직 검사가 검찰 조직을 고발한 책은 이 책이 유일하지 않은가 한다. 그만큼 이 책뿐 아니라 임 검사의 존재가 귀중하다.

책은 크게 2부로 나뉘어 있다. 1부는 임 검사가 검찰 내부망인 이프로스(e-PROS)검사 게시판에 썼던 글 일부를 골라 그 글을 쓴 배경을 붙여 놨다. 2부는 <경향신문>의 '정동칼럼'에 기고했던 글을 같은 형식으로 묶었다.

1부가 검찰 내부를 향한 비판이라면, 2부는 검찰 조직의 문제와 비리를 외부에 고발하는 내용이다. 목적은 한 가지다. 검찰 내부에서 보고 느낀 것을 널리 공유하고 알림으로써 '자정 능력을 상실하고 고장 난 저울'이 된 검찰을 바로잡는 데 조금이라도 공헌하겠다는 일념이다.

검찰 조직은 상명하복, 일심동체, 일사불란이 강조되는 조폭과 같은 특성을 지니고 있다. 조직 안에 '정의'가 작동하는가 아닌가에 따라 검찰 조직이냐 조폭 조직이냐로 나뉠 뿐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이런 조직 생리에서 조직의 문제와 비리를 까발리는 임 검사의 존재가 달가울 리 없다. 그가 그런 일에 나선 2012년 이후 검사 적격심사를 통한 퇴출과 징계, 승진 누락의 검박과 불이익을 달고 산 이유다.

한때 '도가니 검사'로 불리며 잘나가던 그가 '막무가내 검사', '부끄러운 검사', '빨갱이 검사', 심지어 '꽃뱀 검사'라는 비난을 본격적으로 듣게 된 것은 상사의 지시를 어기고 민주화운동을 했던 박형규 목사, 윤길중 전 의원의 재심 사건에서 무죄 구형을 한 2012년부터다. 이후 그는 잘나가는 검사에서 문제 검사로 찍혀 조직에서 왕따는 물론 항상 쫓아내야 할 암적 존재로 취급된다.

그래도 그는 여전히 꿋꿋하게 버티며 '내부 고발자'의 길을 외롭게 걷고 있다. 걸을 뿐 아니라 고발의 활동 범위를 내부 게시판을 넘어 사회관계망서비스(SNS), 신문 기고, 방송으로까지 넓히고 있다. 군대보다도 더욱 폐쇄적이고 위계를 중시하는 검찰 조직 안에서 변변한 조력자도 없어 이런 활동을 한다는 것은, 일제 때 독립운동하는 것과 비슷한 용기와 각오가 없었으면 하지 못할 일이다. 경향신문에 칼럼을 쓰는 것을 설명하며 "제 칼럼들은 상급자들에게서 '검사 부적격 F 평가'를 각오하고 쓰는 대국민 고발장입니다"(192쪽)라고 한 데서 그의 결기를 확인할 수 있다.

그는 검찰의 속성을 다음과 같이 통렬하게 비판한다.

"검찰은 검찰개혁을 강력하게 추진했던 노무현 정권 시절에는 정치권으로부터의 독립을 주장하다가, 검찰을 권력 수단으로 이용하려는 이명박, 박근혜 정부 시절에는 호위무사를 자처했습니다. 검찰의 변신은 검찰 공화국을 사수하는 카멜레온의 보호색 같습니다."(241쪽)

검찰의 이런 카멜레온 변신이 가능한 것은 언론의 지원이 크다.

"보수 언론은 검찰 수뇌부의 말을 속기사인 양 그대로 받아쓰며 저를 매도하기에 급급했고, 진보 언론 역시 법령을 뒤져보는 수고를 게을리하기는 마찬가지였습니다. <중략> 그러나 보수 언론은 황당했고, 진보 언론은 태만했습니다."(266쪽)

두 대목을 읽으면서 찰떡같은 검찰의 카르텔을 깨지 않고는 윤석열 내란 사태가 완전히 뿌리 뽑히지 않겠구나 하는 확신을 다시금 갖게 됐다.

이 책 2부의 마지막 글 '길모퉁이에서'에는 윤석열 당시 검찰총장이 한명숙 모해위증 교사 사건을 파헤치려는 임 검사를 이런저런 억지를 부리며 끝내 방해하는 내용이 나온다. 임 검사가 대검 감찰정책연구관으로 모해위증 사건 관계자를 입건해 기소하고 당시 수사팀인 엄희준 검사의 수사에 착수하려고 하자, 지휘권· 직무이전·승계권 등의 권한을 행사하며 그로부터 사건을 빼앗았다. 그가 아끼는 수하 검사를 보호하기 위한 몸부림이다. 윤 총장뿐 아니라 사실상 조직 전체가 방해 작전에 가담했다. 그 사이 다른 검사가 사건을 종결 처리하고, 윤 총장은 대선에 나가기 위해 2021년 3월 4일 사임했다.

윤석열이 탄핵되면, 고발 사주 사건 등과 함께 한명숙 모해위증 교사 의혹 사건도 낱낱이 파헤쳐 그의 죄를 물어야 한다. 그것이 갖은 핍박을 견디며 10년 이상 외롭게 내부 고발을 해온 임 검사에 대해 한국 사회가 해야 할는 최소한의 보답이자 예의일 것이다. 또한 검찰 조직에서 '제2의 윤석열 같은 인간'이 나오지 못하도록 하는 예방 조치가 될 것이다. 이제라도 그가 계속 가려는 길에 동참하는 동료 검사들이 많이 늘어났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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