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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평 : 어떻게 '음모론'에서 벗어날 수 있나?

<음모론이란 무엇인가>, 사회 혼란, 윤석열, 극우

by 오태규 Mar 31. 2025

사회가 혼란할 때 음모론도 어김없이 기승을 부린다. 윤석열 탄핵 국면에서 나온 중국 주도의 선거 부정론이 대표적이다. 탄핵 반대를 주도하는 쪽은 중국의 선거 개입으로 22대 총선에서 야당 의원의 절반 정도가 부정으로 당선됐다고 선동한다. 이런 근거도 없는 선동에 많은 사람들이 휩쓸려 탄핵 반대 집회장에 나선다.

더 기가 막힌 것은 <스카이데일리>라는 '듣보잡' 극우 매체가 이런 분위기를 주도한다. 윤석열이 비상계엄을 발령했을 때 군인들이 선관위 연수원에서 부정선거에 개입한 99명의 중국인을 체포해 오키나와 미군기지로 압송해 조사하고 있다고 이 신문이 대문짝만한 기사를 냈다. 미국 쪽도 선관위도 모두 부인했는데도 믿고 싶은 것만 믿는 탄핵 반대편 군중들은 이 기사를 마치 진실인 듯 되뇐다. 이제까지 한국에서 나온 음모론 중에서 가장 저질이자 최악의 음모론 사례일 것이다.

음모론은 한국만의 현상이 아니다. 최근 미국에서 나오는 음모론을 보면, 한국보다 더하면 더했지 덜하지 않다. <음모론이란 무엇인가>(바다출판사, 마이클 셔머 지음, 이병철 옮김, 2024년 4월)는, 음모론에 맞서 진실이 무엇인지 밝히려고 노력하는 회의주의 운동의 최전선에서 활동하고 있는 미국의 과학 저술가 마이클 셔머가 쓴 책이다. 저자는 이 책을 쓰게 된 계기는, 2021년 1월 6일 '조작된 선거'라는 음모론에 빠진 일군의 미국 폭도가 미국 의사당을 습격한 사건이다.. 즉, 미국 헌법에 대한 직접 공격에 충격을 먹고 이 책을 저술한 것이다.

'왜 사람들은 음모론을 믿을까?' '우리를 위협하는 진짜 음모와 그저 누군가를 기만하려는 가짜 음모를 구별할 수 있을까?' '내 가족과 친구가 음모론에 빠져 있을 때 그들과 어떻게 대화할 수 있을까?' 저자는 음모론이란 무엇인가라는 근본 주제를 다루기 위해 먼저 이 세 가지 질문을 스스로에게 던지며 자신만의 답을 제시해 간다.

저자는 외계인, UFO, 비밀조직 일루미나티, 달 착륙 조작, 9/11 테러 자작극, 선거 조작 세력, 코로나19 백신 사기, 지구 온난화 사기 등 황당무계한 음모론을 맹신하는 건 바보라서가 아니라 오히려 똑똑해서라고 주장한다. 모든 음모론은 그 속에 더 깊은 진실을 숨긴 대리 진실로서 세계를 이해하려는 합리적 반응이기 때문이다. 또한 역사상 수많은 음모론이 진짜 음모로 밝혀진 사례가 적지 않다는 사실을 인정하고 진짜 음모와 가짜 음모를 구별하는 기준을 제시하려고 노력한다. 음모론자를 비합리적인 사람으로 경멸하는 것은, 양극단으로 나뉜 정치적 분열을 더 심화할 수 있기 때문이다.

저자는 사람들이 음모론에 빠지는 데는 세 가지 요인이 있다고 말한다. 그가 과학적 회의주의자로 활동해 온 지난 수십 년 동안 기상천외한 믿음을 가진 음모론자를 수없이 만나고 그들의 이야기를 들으면서 멀쩡한 사람이 왜 음모론에 빠져드는지 정리한 것이다. ‘대리 음모주의’, ‘부족 음모주의’, ‘건설적 음모주의’가 그것이다.

대리 음모주의는 모든 음모론 속에 더 깊은 진실을 담고 있다고 믿기 때문에 생긴다. 예를 들어, 코로나19 백신을 접종하면 거기에 심어놓은 컴퓨터칩으로 빌 게이츠가 우리를 조종할 것이라는 음모론의 심연에는 거대 제약 회사의 증거 조작, 이익 추구를 이유로 그런 회사를 신뢰하지 않는 두려움이 숨어 있다. 또한 음모론을 굳게 믿고 퍼뜨리는 사람은 자신의 부족원들, 즉 같은 집단의 사회 구성원에게 충성심을 드러내는 신호로 생각한다. 이것이 부족 음모주의다. 마지막으로 사람들은 상당수 음모론이 진실로 판명되었기 때문에 믿지 않는 것보다는 믿는 것이 생존에 더 유리하다고 생각한다. 즉, 나뭇가지가 뱀이라고 착각하고 도망갔던 옛 조상이 그렇지 않은 조상보다 더 잘 살아남았다는 걸 알기 때문에  마음속에 최악의 상황을 가정하는 자동 알고리듬이 내장됐다. 이것이 건설적 음모주의다.

저자는 이 세 가지 요인이 사람들이 음모론을 믿는 핵심 이유이며, 인지 부조화, 확증 편향, 우리 편 편향, 패턴 만들기 같은 다양한 심리적 요인이 추가로 작용한다고 설명한다.

저자는 9/11 테러가 미국 정부의 자작극이라고 믿는 음모론자, 일명 ‘9/11 트루서’, 버락 오바마 전 대통령이 미국에서 태어나지 않았다고 믿는 음모론자 ‘오바마 버서’, 가장 논란이 많고 영향력이 오늘까지도 이어지는, 셔머가 ‘모든 음모론의 어머니’라고 표현한 ‘JFK 암살 사건’, 즉 존 F. 케네디 암살과 리 하비 오스왈드 음모론과 같이 수많은 증거로 반박된 가짜 음모론도 치밀하게 분석한다. 또 ‘역사상 가장 치명적인 음모’인 제1차 세계대전으로 이어진 사라예보 사건의 작동 방식을 살펴본 뒤 '지식과 투명성'이 음모와 음모론 모두와 싸우는 열쇠'라고  강조한다.

다음은 저자의 결론이라고 할 수 있는 구절이다. 특히, 자신의 이익을 위해 음모론을 부추기는 것도 마다하지 않는 정치인들이 꼭 귀담아들어야 할 내용이다.

"자유로운 탐구, 표현의 자유, 특히 출판의 자유는 모든 시민이 이용 가능한 모든 지식에 접근할 수 있는 자유민주주의의 안정에 필수적이며, 정치인은 음모가 사회를 부패시키지 않고 음모론이 사회를 절대 부패시키지 않도록 보장하기 위해 우리 모두가 들여다볼 수 있는 투명한 돔 아래에서 활동해야 한다."(281쪽)

마지막에는 중요한 주제에 관해 자신과 다른 의견을 가진 사람과 대화하는 방법과 진실에 대한 신뢰를 회복하는 방법이 제시되어 있다. 음모론자와 수십 년 동안 접촉하며 저자 나름으로 정리한 대화와 신뢰 회복책이다.

 

대화법에는 '감정이 오가게 하지 마라', '사람을 공격하지 말고 아이디어를 논의하라', '존중을 표하고 최선의 의도를 가정하라' 등 13개를 제시했다. 진실에 대한 신뢰를 회복하는 방법도 '진실 말하기와 정직에 대한 규범을 강화하라', '적극적이고 열린 마음으로 연습하라', '이성과 합리성의 규범을 소중히 하라', 자신의 믿음을 무조건 달성하려는 군인 사고방식이 아니라 증거를 통해 무엇이 진실인지 발견해 가는 스카우트 사고방식을 개발하라' 등 10가지를 내놨다. 여기에 나와 있는 방안을 그대로 전부 적는 것은 너무 길어 대표적인 것 몇 개만 추렸다. 필요한 사람들은 직접 책을 들춰보길 바란다.

하지만 저자가 제시한 방법으로 음모론자와 대화하면서 진실을 회복하려는 것은 성인군자나 할 수 있는 지난한 과제라는 생각을 지울 수 없었다. 그래도 '진실에 기반한 공동체'가 우리가 추구하면서 살아야 하는 마당이라면, 쉽게 포기할 수 없는 것이 아니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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