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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평 :국가의 성공과 실패에 언론의 역할 막중하다.

<국가는 왜 실패하는가>, 노벨경제학상, 다론 아제모을루

by 오태규

2024년은 한국인에게 잊을 수 없는 기억을 두 가지 남겼다. 하나는 12월 3일에 벌어진 윤석열의 뜬금없는 비상계엄령 발표였다. 또 하나는 한국의 작가 한강이 10월 10일 노벨 문학상 수상자로 선정된 것이었다.

전혀 별개인 듯한 두 사건은 전혀 별개가 아니었다. 한강은 윤석열에 대한 탄핵 소추가 국회에서 통과되기 직전에 스웨덴에서 열린 노벨문학상 수상 강연에서 광주를 다룬 소설 <소년이 온다>를 준비할 때 가졌던 두 질문, '과거가 현재를 도울 수 있는가?' '죽은 자가 산 자를 구할 수 있는가?'를 소환했다. 마치 그의 말이 예언이라도 되는 듯 그 뒤 윤석열은 국회에서 두 차례 시도 끝에 탄핵 소추됐다. 과거가 현재를 돕고, 죽은 자가 산 자를 구한 순간이라고 누구나 느낄 수 있는 순간이었다.

2024년 노벨경제학상은 다론 아제모을루 매세추세츠공대(MIT) 교수, 사이먼 존슨 매세추세츠공대(MIT) 교수, 제임스 로빈슨 시카고대 교수 3명이 공동 수상했다. 노벨위원회는 "세 교수는 경제·사회적 제도가 어떻게 국가 간 번영 수준 격차에 영향을 끼쳤는지를 연구했다"라며, "국가 간 엄청난 소득 격차를 줄이는 것은 우리 시대의 큰 과제 중 하나"라고 선정 이유를 밝혔다.

<국가는 왜 실패하는가>(시공사, 대런 애쓰모글루·제임스 A. 로빈슨 지음, 최완규 옮김, 2012년 9월)는 2024년 노벨경제학상 수상자 3인 중 2명이 같이 쓴 책이다. 다론 아제모을루는 출판 당시엔 대런 애쓰모글루로 표기됐다.

이 책의 주장은 매우 간명하다. 포용적 정치·경제 제도를 지닌 국가는 성공하고, 착취적 정치·경제 제도를 지닌 국가는 실패한다는 것이다.

두 저자는 이 주장을 입증하기 위해 고금동서의 역사와 국가들의 영고성쇠를 두루 동원한다. 오늘날 지구촌의 내로라하는 부자 나라는 물론이고 로마제국과 마야 도시국가, 중세의 베네치아, 명예혁명기의 영국, 프랑스 대혁명의 프랑스, 옛 소련, 개방 이후의 중국, 남미와 아프리카 독재국가, 북한 등의 나라를 넘나들며 날카롭게 분석한다.

두 저자는 한 나라를 변영과 빈곤으로 가르는 요인은 지리적 위치설도, 문화적 요인도, 무지 가설도 아니라고 말한다. 각국의 사례를 들어 그 가설의 타당성을 격파한다. 대표적으로 동원되는 사례에 책 처음에 등장하는, 미국과 멕시코 국경에 걸쳐 있는 노갈레스라는 도시다. 미국의 노갈레스는 발전했지만 멕시코의 노갈레스는 낙후한 것은, 제도의 차이 외에는 설명할 수 없다는 것이다. 담 하나로 양쪽으로 나뉘어 있는 노갈레스는 지리적 위치도 같고 문화도 같다. 단지 틀리는 것은 정치와 경제 제도가 다르다는 것뿐이다. 저자들은 38도선으로 갈라진 남북이 큰 격차를 보이는 것도 포용적 제도냐, 착취적 제도냐에 따라 명암이 갈린 대표 사례로 제시한다.

저자들은 경제제도가 포용적이라는 것은 사유재산이 확고하게 보장되고, 법체제가 공평무사하게 시행되며, 누구나 교환 및 계약이 가능한 공평한 경제환경을 보장하는 공공서비스를 제공한다는 것을 의미한다고 말한다. 또 포용적 경제제도는 새로운 기업의 참여를 허용하고 개인에게 직업 선택의 자유를 보장한다. 경제가 포용적이 되기 위해서는 정치가 포용적이어야 한다.

저자들은 포용적 제도의 두 축을 중앙집권과 다원주의라고 설명한다. 중앙집권과 다원주의가 언뜻 모순적인 것 같지만 사실은 상생관계다. 중앙집권이 이뤄지지 않는 곳에서는 법을 시행할 수 없고, 다원화가 이뤄지지 않은 곳에서는 독주하는 권력을 견제하기 어렵다. 저자는 이런 두 축이 갖춰진 예로, 명예혁명 후의 잉글랜드, 프랑스혁명 후의 유럽, 남북전쟁 이후의 미국 등을 든다.

중앙집권이지만 다원화가 되지 않은 착취적 제도의 국가에서도, 즉 옛 소련과 현재의 중국처럼 경제가 성장할 수 있다. 하지만 지속 가능한 성장은 불가능하다고 그들은 말한다. 권력층이 자신들에게 도전하고 위협이 될 수 있는'창조적 파괴'를 허용하지 않기 때문이란 것이다.

이 책을 읽으면서 내가 주목했던 부분은 국가의 성공과 언론의 역할을 지적한 부분이다. 돼지 눈에는 돼지만 보인다는 말이 있듯이, 언론인 출신인 나의 눈에는 책을 읽을 때마다 언론 관련 부분이 유독 눈에 띈다.

"마지막으로 포용적 정치제도 하에서는 자유 언론이 번성할 수 있고, 자유 언론은 포용적 제도를 위협하는 움직임을 널리 알려 저항 세력을 부채질하는 역할을 하는 사례가 많다. 19세기 말에서 20세기 초반까지 미국에서 강도 귀족의 경제 독점이 심화되어 포용적 경제제도의 본질이 훼손될 위험에 처했을 때도 자유 언론의 활약이 대단했음을 이미 살펴본 바 있다."(475쪽)

20세기 초 록펠러의 스탠더드오일을 비롯한 트러스트 문제를 바로잡으러고 정치인이 발 벗고 나서게 된 데에는 이런 문제를 집중 고발한 자유 언론의 역할이 지대했다는 것이다.

저자들은 마지막 15장(번영과 빈곤의 이해)의 마지막 부분에서 언론의 역할을 재차 강조한다.

언론은 광범위한 사회계층의 권한 강화를 좀 더 지속적인 정치개혁으로 이끄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할 수 있다는 것이다. 잉글랜드 명예혁명, 프랑스혁명, 19세기 영국의 민주화 과정에서도 소책자와 책이 정보를 제공하며 대중을 들끓게 하는 데 중요한 역할을 했다고 저자들은 강조했다.

또한 그들은 말한다.

"권위주의 정권은 자유 언론의 중요성을 의식하기 때문에 갖은 수를 써서 억압하려 들기 마련이다. 가장 극단적인 사례는 페루의 알베르토 후지모리 정권에서 살펴볼 수 있다."(647쪽)

그들에 따르면 후지모리 정권은 TV 방송국을 통제하려고 9백만, 천만 달러를 쾌척하고, 주류 신문사는 100만 달러, 여타 신문사에는 기사 한 꼭지 당 3천에서 8천 달러를 지급했다. 후지모리 정권은 "TV를 손에 쥐지 못하면 아무것도 안 하는 것이나 다름없다"라면서 정치인과 판사보다 언론을 통제하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고 여겼다. 이것이 어디 페루의 후지모리 정권만의 생각이겠는가? 정도의 차이만 있을 뿐 집권 초기부터 언론 통제에 목을 매달아온 윤석열 정권도 예외가 아니었다.

"자유 언론과 신생 통신 기술은 제도의 포용성을 강화하려는 이들의 요구와 행동을 널리 알리고 조율하는 측면에서만 도움을 줄 수 있다. 이런 도움이 의미 있는 변화로 이어지려면 사회의 광범위한 계층이 결집해 조직력을 갖추고 정치 변혁을 이끌어 내야 한다."(649쪽)

즉, 언론이 사회의 다양한 계층과 힘을 합칠 때 포용적인 정치·경제제도가 강화되고 나라가 발전한다는 얘기라고 할 수 있다. 국가가 번영하기 위해서는 포용적인 정치·경제 제도를 택해야 한다는 게 이 책의 핵심 요지이지만, 나는 이 책을 통해 자유 언론이 국가 번영의 필수 요소라는 점을 다시금 깨달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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