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처받기 쉬운 자존감
타인의 시선
과거 신입사원 때는 사회생활 모두가 새롭고 신기했다. 정확한 역활과 위치를 가지고 생활하지만 대학시절의 자유로움과 여유는 조직의 상하관계에 대한 어색함이 있었다. 젊은 친구들과 생활을 하다가 상화 관계에 종속되어 눈치를 보게된다. 또한 왠지 수줍음이 많았고 경상도 사투리가 서울 사람들에게 웃기는 모양이었다. 서울말투로 말하려니 더 이상한 억양이 되었다. 그래서인지 직장 모임에는 주도적이지 못했다. 나의 특성은 어쩔 수 없으니 단시간에 해결될 것 같지 않아 성실하게 실력으로 보여주고자 노력했다. 그러다 보니 말 잘하고 유머가 넘치는 동료를 보면 남의 재능과 인기도가 부러웠고 자꾸 움츠려 드는 경향이 생겼었다. 내가 잘못한 것이 없음에도 남을 배려하는 차원에 잘잘못을 따지지 않고 나의 실수로 쉽게 인정하고 넘어갈 때도 있었다. 돌이켜 보면 나의 단점만을 생각하고 움츠려 들었다. 나 보다는 타인에 대한 배려를 배우고 살아왔다.
고전에는 자신을 낮추고 타인을 존중하고 대접하라고 한다. 타인을 높이고 자기를 낮춰 신뢰를 주고자 하는 관습으로 태도를 취해왔다. 그리고 자신에 대해서는 엄격하라고 주문한다.
“남의 잘못은 관대하게 대하라. 그러나 자기의 잘못에는 엄격하지 않으면 안 된다 자기의 괴로움은 이를 악물고 참아내라. 그러나 타인의 아픔은 지나치지 마라.” - 홍자성 <채근담>
“소인은 늘 남을 탓하고, 군자는 자기의 잘못을 먼저 생각한다” - 공자
“자기가 하기 싫어하는 것은 남에게도 하게 하지 말라” - 공자
"남이 나를 소중히 여기기를 바란다면 먼저 나 자신이 남을 소중히 여겨라" - 정약용 <명심보감>
"남에게 대접을 받고자 하는 대로 남을 대접하라" - 성경 마태복음 7:12
나를 위해 타인의 관점으로 보기를 좋아한다. 아니 그렇게 가르쳐왔다. 그것도 맞는 말이다. 하지만 타인의 관점에 맞춰져 진정 자신에게 대해서는 깊이 생각하지 않는다.
채근담의 "자신의 잘못은 엄격하게 대하고, 괴로움은 이를 악물고 참아내라"를 바꿔 보면 왜 그렇게 해야 되는지 의문이 생긴다. "자신에게 관대하고 괴로우면 피하라!"로 하면 왜 안될까? 주식 격언에는 "소나기는 피하라!"고 한다. 그리고 "자기가 하기 싫은 일은 사람을 고용해서 남에게 시키면 된다." 굳이 하기 싫은 것을 억지로 할 필요가 없다. 또한 "군자는 큰 꿈을 위해 자기의 강점을 더 강하게 해야 한다."로 바꾸면 자기 잘못만 쳐다보는 사람보다 문제 해결 능력이 더 명확해지지 않을까 한다. 과거의 고전의 명언을 현대적으로 바꿔도 될 것이다. 하지만 고전의 명언은 성인군자는 잘 버틸 수 있겠으나 나 같은 사람은 스트레스를 엄청 받을 것 같다.
자기가 잘하는 것과 즐거워하는 것, 뜨거운 열정과 같은 일에 일시적으로 대응한다. 또한 진정 원하는 것은 주변 환경의 반대에 시작도 못하는 경우가 많다. 일단 시작부터 해봐야 하지만 말만 조금이라도 꺼내면 "안된다고 그랬잖아?", "네가 무슨 재주로 그걸 하냐?"등으로 무 자르듯 말을 싹 잘라 버린다. 남들이 가지 않는 길을 갈 때 더 그러하다. 평범한 직장인으로서 월급만 꼬박꼬박 받는 곳에서 생활하길 원한다. 하지만 인생은 그렇게 쉽게 가지 않는다. 쉬워 보이는 직업도 그 속에는 많은 스트레스가 있고 일이 없을 때 더 많은 스트레스가 동반한다. 일이 없는 것을 티 내지도 못하고 허심 탄해 하게 행동하지도 못한다.
현대에는 자기의 강점과 개성을 부각해야 살아남는다. 다행히 최근에는 "부러우면 지는 것이다"라는 신조어가 생겨 남을 부러워하는 경향이 줄어들었다. 하지만 자기의 장점과 개성을 존중하고 스스로 칭찬하는 것은 인색하다. 남들에게 보이는 장점만 인정하고 자기 스스로의 장점에 대해서는 무시하는 경향이 있다. 하지만 자기의 장점과 우월감을 가져야 직장생활에 자신감을 가질 수 있다. 고전에도 자기를 통해 타인을 보길 원한다. 하지만 잘못 해석해서 타인에 중점을 두고 있다. 나는 그렇게 해석을 하였다. 그것이 편하기 때문이다.
자신의 강점에 집중하라!
자신의 재능을 발휘하기 위해서는 자신에 대해 아는 것만큼 중요한 것이 없다. 내가 정말로 좋아하는 것이 무엇인지, 어느 때가 가장 즐거웠는지, 어떤 생각을 할 때 가슴 뛰는 삶을 살았는지 기억하지 않는다. 자신을 알고자 한다면 자기의 가슴이 어느 때 뛰는지를 관찰해야 한다. 누구나 장점과 단점이 있다. 장점보다는 단점을 생각할 때가 많았다. 하지만 단점만 생각한다고 좋은 대안이 나오지는 않는다. 부족한 것을 채우기 위해 노력할 때 자기의 단점을 찾는 것이 도움이 된다. 하지만 살아오면서 단점보다는 장점이 많다는 것을 잊고 살아왔다. 장점을 찾고 좋아하는 일을 찾아야 한다. 그렇게 장점은 더 강조되고 상대적으로 단점은 더 작아진다.
자신의 강점과 약점을 파악해서 강점에 좀 더 집중하라
피터 드러커의 <프로페셔널의 조건>에서는 "자신의 강점과 약점을 파악해서 강점에 좀 더 집중하라"고 조언한다. 현대에는 자신을 돌아보고 단점보다는 장점을 강조하고 있다. 강점을 찾아 자기가 좋아하는 일을 하라는 것이다. 물질의 풍요가 가져다주는 혜택을 통해 좋은점을 누려야 할 때가 온 것이다. 누구나 자기가 좋아하는 일을 찾아 즐겁게 생활하는 것을 원한다. 한때 유행했던 린다번의 <시크릿>에서 "자기가 원하는 것을 찾아 생각과 사고를 긍정적으로 살면 상상하는데로 그렇게 이루어진다"고 주장하여 '시크릿 신드롬'을 만들었다. 단점과 강점이 비슷하다면 강점을 더 강조할 때는 강점이 단점을 덮어버리고 새로운 단점이 생긴다. 그건 정반합의 법칙으로 순환되어 앞으로 성장되어 간다. 단점만을 부각하면 단점만 생각하고 도태된다. 장점과 긍정적인 생각이 더 뇌를 자극하고 확대된다.
누구나 다 열등감을 가지고 있다.
우리는 나에 대한 생각보다 상대에 대한 생각을 많이 한다. 그가 어떻게 움직이는지, 어떤 걸 좋아하는지, 언제 가고 오는지, 어떤 장점과 단점이 있는지, 주변 동향을 살피게 된다. 나와는 무관한 사람들까지 상대가 생각하는 것에 집중하게 된다. 또한 타인에게 호감을 갖기 위해 노력한다. 과한 몸짓과 표정, 행동 등 많은 노력을 하지만 진정으로 대하는 마음 상태는 타인도 느낀다. 우리는 타인의 행동을 관찰하고 집중하는데 많은 에너지를 소모하고 있지는 않을까? 타인에게 집중하는 이유는 있다. 나의 열등감이 노출되지 않고 상처받지 않도록 주의하기 때문이다.
타인의 행동을 주시할 필요가 있을까? 타인보다는 나를 더 관찰하고 집중해야 된다. 중요한 것은 나의 자질과 역량이 자신감이 있다면 무엇이 위태롭고 무엇이 두려울까?. 열등감에 의해 낮아진 자존감을 높일 수만 있다면 나에 대한 자신감으로 표정이 달라진다.
국제 정신분석학자인 이무석의 <나를 사랑하게 하는 자존감>이라는 책에는 "누구나 다 열등감을 가지고 있다"라고 한다. 나만 있는 것이 아니라 상대방도 있다는 뜻이다. 남부러울것 없이 성공한 사람도 열등감이 있다는 얘기다. 그건 서로 공평한 것이 아닐까? 열등감은 개인의 비밀이다. 스스로 나를 낮춰 상대방보다 낮게 바라보게 된다. 하지만 자존감이 낮은 행동에 타인에게 금방 들통 난다. 말을 하지 않을 뿐이다. 책에 의하면 "자존감과 열등감은 관점의 문제"라고 한다. 나를 바라보는 관점, 그건 선택인 것이다. 나를 좋게 바라볼 것인지 나쁘게 바라볼 것인지는 자기의 선택의 문제다. 자신을 바라보는 관점이 달라지지 않는다면 열등감에 쌓여 살게 될 것이다.
"자존감과 열등감은 외적인 조건의 문제가 아니라 자신을 바라보는 관점의 문제다. 같은 고졸이라도 자존감이 높은 사람은 떳떳하고 당당하지만 열등감을 가진 사람은 수치스럽고 창피하게 여긴다." - 이무석 <자존감>
내가 가지고 있는 열등감과 상대가 가지 있는 열등감 중 누가 더 열등감을 가지고 있을까? 그건 아무도 알 수 없다. 단지 자존감이 부족하면 행동으로 고개를 숙이듯 표현이 될 뿐이다. 열등감은 "자신에 대한 관점이 부정적이고 자신의 능력을 실제보다 낮게 보는 관점의 문제"라고 한다. 나를 돌아보았을 때 '나를 알지 못하고, 사랑하지 않는 다면 상대를 이길 수 없다'는 얘기다. 즉 나를 사랑해야 상대방을 이길 수 있다.
자신을 내려놔야 얻을 수 있다.
자존감은 이렇듯 남이 나의 자존감을 해칠까 봐 전전긍긍한다. 양보하지 않고 소극적으로 행동하기보다는 자신을 내려놓고 상처를 받더라도 한발 양보하고 더 자신감 있고 자연스럽게 활동하는 것이 유연한 자존감이 된다. 직장 상사나 동료에게 상처를 받을까 봐 경직된 행동으로 대하기 보다는 자신을 내려놓고 더 유연하게 생활하여 자신감을 얻을 수 있다. 미쳤다는 소리를 듣더라도 크게 웃을 수 있다면 그것이 자신감으로 돌아온다. 그러기 위해서는 자신의 내면을 관찰하고 집중하여 강점을 찾고자 노력해야 한다. 하지만 자존심과 열등감 때문에 진정 원하는 것을 찾지 못한다.
현직에 있는 한의사가 모든 걸 그만두고 '차량 정비소'를 차린다면 누가 좋아하겠는가? 하지만 그 한의사는 의사의 직업보다 차를 너무 좋아하는 나머지 차를 수리하는 일을 더 좋아하여 정비소를 차린 사려가 있다고 한다. 만약 사회적 지위와 시선이 있어 자존심과 체면을 지킨다면 결코 차량 정비소를 차지리 못한다.
"자기가 원하는 것을 이루기 위해서는 자신을 내려놓아야 된다"
- 네빌 고다드 -
자신을 내려놓아야 진정 무엇을 원하는지 알 수 있다. 네빌 고다드는 자신의 욕심과 지혜를 내려놓아야 자연과 가까워지며 "우리의 상상이 자연스럽게 펼쳐질 때 현실이 됩니다."라고 제안합니다. 자존심과 열등감에 가려 진정 자신이 원하는 것을 찾지 못하고, 원하는 것이 있어도 나는 안 될 거라는 자진 포기로는 시작도 못한다. 진정 원하는 것을 찾기 위해서는 나를 내려놓고 나의 소리를 들어야 한다. 그래야 자신의 진정한 내면의 모습을 볼 수 있다. 진정원 하는 것을 상상할 때 이루어진다는 애기다.
피터 셍게. C의 <미래, 살아있는 시스템>에는 경제도 바닥을 끝까지 내려가 봐야 새롭게 시작할 수 있다고 한다. 즉, "U"자형으로 바닥으로 내려가 힘든 과정을 걸쳐 위로 새롭게 시작한다고 한다. 그러므로 바닥으로 내려가 봐야 새롭게 성장할 수 있다. 현재 상황이 힘들고 어려워도 내일의 희망을 기대하고 살아야 한다. 우리는 자신의 절망에 자살까지 생각하고 죽으려고 하다가 자신의 모든 것을 내려놓고 다시 시작하여 성공했다는 성공스토리를 많이 들어왔다. 모든 걸 내려놓으면 숨 쉬는 것조차 행복이 된다.
마음속에 울리는 작은 소리에 기뻐하고 즐거워하고 과거에는 싫어했던 일 들이 즐거운 일이 된다. TV를 통해서나, 뉴스를 통해서도 많이 접하는 우리 주변에 일어나는 흔한 일들이다. 그런 절망과 고통 속에서도 성공하는데, 지금 삼시세끼 잘 먹고 잘 살고 있는 나 자신의 자존심 조금 낮추는 것이 뭐가 힘든 일일까? 나의 자존심을 내려놓고 진정 원하는 것을 찾고 자신감으로 재무장해야 한다. 적극적이고 성실한 자세는 곳 자신이 좋아하는 일을 하고, 하는 일에 긍정적인 의미를 부여하여 즐거운 직장생활을 하는 것이다.
자신을 내려놓고 마음을 비웠으면 네빌 고다드와 같이 생각의 관점을 바꿔 자신의 강점을 채워나가야 한다. 네빌 고다드는 <5일간의 강의>에서 “여러분, 만약 여러분이 살면서 성공하기를 정말 원한다면, 여러분 자신을 크게 만드십시오.”라고 주장하며 자기의 관념을 크게 만들길 주문한다. 또한 "나에게 주어진 유일한 과업은 나의 관념을 위대함으로 채우는 것뿐이다."라고 주장하며 "자기의 관념을 위대함으로 채워 상상하면 현실이 된다"는 것을 끊임없이 주장한다. 자신이 진정원 하는 것은 자신을 내려놓아야 진정 원하는 것을 찾을 수 있으며, 자신이 원하는 것을 찾아 상상하면 현실이 된다.
조금 상처받아도 된다.
자신을 내려놔야 자기가 진정 무엇을 원하는지 알 수 있다.
자신을 내려놓는 방법
1. 조용한 공간에서 차분한 마음을 가진다.
2. 눈을 감고 생각을 관찰한다.
3. 자기의 생각을 초기화시킨다.(무자기는 어렵다.)
4. 모든 생각을 없앤다. (자기의 생각이 아닐 수 있다. 하루의 스트레스로 뇌에 각인되었을 수 있다.)
5. 작은 생각이라도 떠올리지 않는다.
6. 제3자의 시점이 된 것처럼 자연스럽게 떠오르는 생각을 관찰한다.
(감동인지? 계산인지? 어려움인지? 편견인지? 관찰하고 자기가 진정 원하는 것을 찾아본다)
https://brunch.co.kr/@ohthisv0nw