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의 야생초 : 쇠뜨기
오늘의 야생초 : 쇠뜨기
"원자폭탄이 떨어져 폐허가 됐던 히로시마에서 가장 먼저 새싹을 틔운 것이 쇠뜨기였다고 할 정도로 강한 생명력을 지닌 풀이다. 방사능의 열선을 피할 수 있을 정도로 뿌리줄기가 땅속 깊이 뿌리를 뻗어 살아남았던 것이다." (출처 : 위키백과)
잡초에 대하여
오전엔 9월에 수집한 풀을 들여다보는 시간을 보냈다. 스스로 풀들을 바라보며 지칭할 때 잡초와 야생초, 들풀 등 러시아 소설 속 인물처럼 계속해서 다른 이름으로 부르게 되는데, 그중 잡초라는 단어는 유독 좋지 않은 뉘앙스다. 왜 그럴까 싶어 주변에 들어간 ‘잡’이 들어간 글자들을 떠올려보았는데, 잡동사니, 잡채, 잡학지식, 잡종 등이 있었다. 여기서의 잡은 무슨 뜻일까.
한자사전에서 잡(雜)은 ‘섞이다’ 나 ‘뒤섞이다’’ ‘어수선하다’라는 뜻을 가진 글자로, 글자가 만들어지기 시작한 갑골문의 초기 갑은 3마리의 새가 모여있는 모양이었다. 색이나 품종이 다른 여러 마리의 새가 뒤섞여 있다는 의미로 시작했다는데, 서로 다른 새가 섞여있는 장면 떠올리면 그리 낯설지 않게, 그러니까 자연스럽게 상상된다.
작업을 하기전 아침엔 강아지와 집 근처 천가를 산책했다. 천으로 가는 길 옆엔 논이 있는데, 논과 아스팔트 사이엔 1m 정도의 땅이 있고, 그중 두 손바닥 크기의 작은 땅만을 보더라도 눈에 들어오는 풀들만 5종 이상이 있다. <정원가의 열두 달>에서는 봄이 오는 걸 알아차리는 데에는 딱 고양이 이마만 한 땅만 있으면 된다고 한다. 손바닥만 한 혹은 그 보다 작은 땅에서도 자연의 특징을 볼 수 있다는 뜻인데, 고개를 돌려 새를 보거나 빈 땅으로 여겨지는 곳에 자란 풀만 살펴봐도 뒤섞임이 자연의 특징이라는 걸 쉽게 알아차릴 수 있다. 그러나 뒤섞인 풀이 자라나는 땅 바로 옆에 있는 땅은 매끈한 아스팔트와 1종류의 작물이 자라고 있었다. 초여름, 가을 녘엔 벼가 겨울이 다가올 땐 보리가, 그 옆의 밭엔 옥수수와 양파 등이 있었지만, 몇 백 평, 몇 천평의 논과 밭에는 한 작물이 주를 이루며 독점하고 있었다.
https://www.youtube.com/watch?v=cwf_pVRq1P4
자연을 관찰하며 살아온 생물학자 최재천 교수님은 위 영상에서 자연의 성격 중 하나로 다양성에 대해 이야기한다. 그는 ‘다양성은 자연에서 너무도 당연한 특성이지만 유독 인간사회 즉 호모사피엔스라는 동물의 사회행동을 관찰해 보면 다양성보다는 ‘균일함’, ‘반복적인’ 이런 것을 좋아하는 것 같다’라고 언급했다. 이와 같은 특성은 주변을 조금만 둘러봐도 인간이 자연을 바라보는 시각과 태도가 다양성보다는 매끈한 방식이라는 걸 쉬이 관찰할 수 있다. 같은 종류의 가로수가 같은 간격으로 심어져 있는 도심 속의 나무(플라타너스 – 은행나무 – 벚나무) 들을 보면서도, 한 종류의 작물이 자라는 논과 밭, 마당에 일정한 크기의 잔디를 마주하면서도 인간을 통과한 자연의 모습에선 자연의 얼굴과 성격이 잘 보이지 않는다.
2022년 8월 천과 논이 가까운 주택으로 이사를 오며 하루도 빼놓지 않고 산책했다. 걷고, 걷고, 걸으며 봄에는 갈색이 돼버린 풀(제초제를 뿌려 죽어바스라진)을 만났고, 초여름에 피어나는 큰 금계국과 망초를, 짙은 남색이었던 파랑새와 샛노란 꾀꼬리를 만났다. 겨울철엔 가지만 남은 덤불 속에 몸을 웅크리고 있는 고라니와 족제비, 뱀을 보았고, 천과 논 사이의 땅에서는 소위 잡초들이 얼굴을 바꾸며 무성하게 자라고 스러지고 다시 자라났으며 그 사이에는 새 무리들이 분주히 움직이고 있었다. <잡초의 재발견>에서는 인간의 이해관계 아래 부정적인 가치를 지니는 식물에 대해 “누가 어떻게 식물이 자라는 때와 장소의 옳고 그름을 결정할 수 있는가”라고 하며, 잡초라 일컬어지는 야생초가 땅과 식물과 동물 등 자연에 어떤 역할을 하는지 설명한다.
Ep1. 잡초의 재발견의 저자가 농장에서 보낸 어린 시절 어머니와 이웃의 농장에서 잡초를 뽑는 일을 도왔다. 어느 날 이웃 솔벤슨 씨의 농장일을 도우러 옥수수밭의 잡초들을 빨리 뽑아야지 하며 일을 하러 갔는데, 솔벤슨 씨는 옥수수 옆을 뒤덮은 쇠비름의 뿌리를 곰곰이 살피며 쇠비름을 없애지 말자고 제안했다. 농장 끝 잡초가 무성한 곳의 옥수수가 잡초를 뽑은 곳보다 잘 자란 것을 보고, 쇠비름의 뿌리가 옥수수가 더 깊이 뿌리를 내려 양분을 흡수할 수 있게 길을 만들어 줄 수 있지 않을까 가설을 세우고 실험한다. 어린 소년은 다들 잡초를 가축들에게 먹이는 것, 가끔 요리할 때 외에는 쓸모없지 않냐고 반박하지만 솔벤슨 씨는 이렇게 이야기한다.
“그건 나도 알아. 그럼 지구가 평평하다고 믿었던 옛날 사람들을 생각해 봐. 그들이 그렇게 믿었던 것은 무지하거나 오류에 빠졌기 때문이야. (…) “그렇다면 아저씨의 말대로 잡초에 대해서도 그럴 수도 있지 않을까. 누군가는 지구가 평평하지 않다는 사실을 발견해야만 했다.”
이날을 계기로 잡초에 관심을 갖게 된 저자는 세계 곳곳에서 연구를 지속했고, 잡초가 어떠한 경우에도 토지비옥도와 관련되어 주요한 역할을 하고 있다는 사실을 깨닫게 되었다.
Ep2. 눈보라 치는 날 사슴을 잡으려 한다면 잡초밭에 가보면 된다는 이야기가 나온다. 잡초밭은 가장 추운 날에도 따뜻하기 때문이고, 사슴도 그 사실을 알고 있다는 이야기다. 잡초는 자라고 겨울엔 스러진다. 잡초가 사라지며 분해되는 과정에서 박테리아가 활동하며 많은 열을 만들어내기 때문이다.
잡초와 관련된 두 편의 에피소드에서만도 토양의 비옥함, 옥수수의 성장과 사슴의 안식처까지 지구에서의 풀들의 멋짐이 드러난다. 보이지 않고, 제거되어야 한다고 여겨지는 ‘잡’으로 퉁쳐지는 야생식물들의 얼굴을 제대로 바라보고 싶다. 빈 땅으로 여겨지는 곳에 아스팔트에 논밭 옆에, 고속도로 휴게소 옆 등 어찌 보면 우리와 주변에 가장 낮은 야생을 관찰하고, 이름과 얼굴을 알며 지구에 함께 살아가는 야생동식물들과 어떻게 관계 맺으며 살아가야 할지 나름의 답을 찾아가 보고자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