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일, 호주감옥에서

by unwritten



18일 월요일 저녁, 말도 안 되는 그날의 일과를 마치고 기다렸다는 듯, D544라는 나의 셀로 들어와 저녁을

먹었다. 그날도 어김없이 YU는 음식을 하나 더 가져왔고, 나에게 주었고, 우리는 포만감 느끼는 저녁을

먹었다. 식곤증과 피곤함에 잠시 눈을 붙였고, YU는 심심했는지 종이에 '부루마블'과 같은 놀이 게임을 연필로 그리고 만들더니, 종이를 찢어 주사위를 만들고 있었다. 어떻게 주사위를 만드나 호기심으로 바라보고

있는대, 정말 주사위를 만들었다. 신기했다. 이상한 놈이다. 바보 같기도 하고 멍청한 것도 같고, 조금 지식이 있는 것도 같고, 아무것도 모르는 것 같지만, 어쨌건 조금 이상한 면이 있다. 그렇게 뚝딱 주사위를 만들어

나를 바라보며 자랑할 때 셀 안의 인터폰이 울렸다.


YU가 다른 곳으로 옮기니 짐을 싸라는 것이다. 그 말이 울림과 동시 우린 서로 걱정을 하였다.

그는 다른 곳으로 옮겨 누구를 만날지 어디로 갈지 모르는 걱정과 나 또한, 누가 이곳에 올지, 어디로 갈지

모르는 걱정 그리고 공통된, 서로 헤어져야 한다는 아쉬움. 이곳에서 헤어짐은 또 다른 만남이고,

또 다른 이동이고, 또 다른 두려움과 마주해야 한다는 것이기에, 그 어두운 장막은, 마치 사형수가 죽기 전,

시야를 가리려 뒤집어 씌우는 헝겊 같은 그러한 공포를 느끼게 한다.


서로 말을 할 수 없었다. 그렇다는 것을 잘 알았기에 YU는 한숨만 쉬며 자신의 몇 안 되는, 짐을 「짐이라

해봤자. 담요밖에 더 있겠나.」 챙겼고, 나는 그저 누워, 그를 바라볼 수밖에 없었다. 조금 후 간수가 왔고,

그렇게 YU는 다른 곳으로 떠났다. 서로에게 고마움과 아쉬움, 밖에서 보자는 침묵의 말을 뒤로한 채, 그렇게 나는 또 혼자가 되었고, 다른 간수의 말에 나 역시 짐을 챙기기 시작했다. 짐을 다 싸고 간수를 기다리는데

문이 열리고, 또 다른 사람이 짐을 들고 들어오는 것이다.


"맙소사, 인디언(인도 사람)이다."

내가 이곳 호주에서 인디언에 대한 개인적 생각을 말하지는 않겠다. 대신 영국 속담 하나를 말하겠다.

"네가 한 방안에 인디언과 독사와 같이 있다면, 인디언을 먼저 죽여라."


그는 나를 보고는 먼저, 거친 흑인과도 비슷한 영어로 반갑게 인사했고, 자기는 아시아 사람을 정말 좋아한다며 말도 안 되는 경계심을 풀기 위해 오버하며 아는 척을 했다. 나는 그저 질문에 대한 답을 했을 뿐이고

친해지고 싶은 생각은 전혀 없었다.

그는 감옥을 7번이나 왔고 이곳 호주에 2채의 집과 차들이 있다고 한다. 자신은 부자이며 필요한 게 있으면 자신에게 말해라. 뭐든지 구해주겠다 하며, 조금 시간이 지나면, 여기서 주는 쓰레기 같은 음식은 먹지 않고 밥통과 물건, 음식들을 구입해 직접 요리해 먹을 거라 자랑처럼 떠들어 댔다.

그의 말들을 별로 신경 쓰고 싶지 않았다.

직접적인 문제는 그날 밤 시작되었는데, 염병할, 엄청 심하게 코를 고는 것이다.

웬만하면 1-2시간 골다 말겠지 했지만, 정말 아침까지, 그것도 강도의 변화 없이 벽이 무너질 정도의 파워로 코골음을 계속해대는 것이다.

"내가 잠이 안 와 잠을 못 자는 거야, 코골음 때문이 아니야, 잠이 오면 저절로, 자연스레 아침이 올 거야."

라는 명상을 하며 잠을 불렀지만, 결국, 나는 그를 흔들어 깨웠고, 그는 역시나,

"OH, SORRY BRO. I WON'T DO IT SNORING, NEVER AGAIN."

이라며 잠시 조용하나 싶더니, 금방 다시 폭주기관차가 되어 지 혼자 자신의 꿈속을 미친 듯이 달려 나가는 것이다. 어찌하리 'FUCK'을 연발하며 미친 기관차 소리에 지쳐 쓰러질 수밖에, 그렇게 쓰러져 눈을 뜨니

아침 먹으라고 문을 두드린다.


"휴~ 그래도 내가 조금이라도 잠은 잣었구나" 하며 그렇게 같으며 다른 하루를 맞이했다.



잠을 자려 눈을 감았지만, 피곤함에 자꾸 내 머릿속 생각들이 펜을 잡아 이야기를, 글을 쓰라며 나를 종용한다. “아, 좀, 귀찮다. 점심이 끝나면 나는 다시 한에게 찾아가 이야기를 들어야 한다. 그러니 좀 쉬게

놔둬."라고 말을 하지만, 당최 눈을 감을 수가 없다. 나를 잡기 위해 써내려 가던 글들이, 이제는 이 할 것 없는 감옥에서의 나의 유일한 호르몬 해방구가 되어 버렸나 보다.


어제, 처음 받아 써갔던, 약 20장의 메모지에 글을 차근차근 읽어 보았다. 나 역시 그 글들이 당최 무슨

이야기인지 감이 잡히지 않는다. 이렇게 지금, 나의 치유보다, 이야기를 써가는 습관이 들어 글을 쓴다면, 그 글에 대한 조금의 책임을 가져야겠다는 생각이 든다. 조금 더 구체적이고 이해하기 쉽게 써야겠다는

'생각이 든다. 나는 이제 조금의 안정을 찾았고, 조금 많은 약 50장 정도의 편지지도 갖게 되었다.

그러므로 종이 걱정하며 한 장 한 장 빼곡히, 띄어 쓰지도 못하고, 아주 작은, 알아보기 힘들 정도의 글자로, 종이를 걱정하며, 잊어버리지 않을 정도로 간략히 적던 문장을 조금은 풍부하게 써야겠다는 생각이

조금 든다. 하지만 아직, 언제 이 빨간 펜이 떨어질지 모른다.

오늘은 다시 월요일이 왔다. 25일 월요일이다.


이곳에 왔을 때부터, 나는 이것을 내 이야기로, 내 영화에 써먹어야겠다는 생각을 가졌었다.

상황의 심각성을 알아채지 못했는지, 혹은 정신이 나가 그랬는지 모르겠지만 그러한 생각으로

조금이나마, 나는 이들과 같은 죄수가 아니다. 나는 디렉터라며 현실을 거부했던 것 같다.


넘쳐나는 내 생각들을 써야 한다. 그래야만 미치지 않는다 생각했다.


그리고, 이 글을 쓸 수 있게끔 해준, 감옥에서 보게 되는 것들과 만나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써야겠다고 결심하게 해 준 사람이 있었다.



ERGUN BOLEN 455606



삼일 전, 정확하지 않다. 당시, 나의 룸메이트(YU)가 없어 나는 잠시 다른 방에서 저녁식사를 해야 했다.

「왜냐면 혼자 방 안에 있으면 자살을 시도할까 봐.」


그때 만난 남자는 ERGUN이고 터키 사람이다. 갈색눈에 평범한 체구다. 그는 내게 어느 나라 사람이냐

물었고, 한국인이라니, 반갑게 맞이해 주었다. 진심인지는 모르겠지만, 한국사람이라면 다들 반갑게 맞아준다. 왜 그럴까?

그는 처음인 나를 반갑게 맞이해 주었고 담배도 말아 태우라며 주었다. 너는 나의 게스트라며, 모든 것을 권유해 주었다. 식사를 하며, 나는 역시나 항상 중얼거리던 이야기를 해주었고, 그는 천천히 생각나는 대로 말해라 시간은 많다 들어주겠다 하며 나의 서투른 영어를 들어주었다.

그리고 "울고 싶으면 울어라" 말했다. 나는 바로, "나는 울지 않는다." 말했다.

그러자 그는 그의 이야기를 시작했다. 그리고 그는, 순식간에 울기 시작했다...


다시 20일, 그를 다시 만났고, 그는 그의 이야기를 이어해 주었다. 우리는 걸어야 했다.

걷지 않으면 나의, 우리의 머릿속에 드는 수많은 생각들이 우리를 미치게 만들기 때문이다.

그는 터키인이고 40살이다. 20년 전, 그리스 여자를 사랑하게 되었다고 한다. 하지만 그들은 결혼할 수

없었다. 부모님들의 반대로, 터키와 그리스는 마치 일본과 한국처럼 역사적인 사건이 있었나 보다.

그는 처음 나를 만났을 때, 자신의 이야기면 영화 몇 개는 만든다 말했었고, 그래서 다시 만나 그의 이야기

듣기를 기대했것만, 결과적으로 별거 없었다. 단지 그가 감옥에 오게 된 이유가 나를 좀 놀라게 했을 뿐이다.

그의 아버지는 암에 걸렸고, 그들은 결국 부모를 설득하여 결혼하였다. 그리고 딸을 하나 갖게 되었고,

집을 사기 위해 융자받고, 그것을 갚기 위해 그는 일했고, 점차 둘 사이는 멀어졌고 결국 따로 살게 되었고,

외로움에 서로 다른 사람, 가까이 있는 사람을 만났고..



점심시간 후, 조금 달렸는데 상당히 피곤하다.

오늘은 여기서 글쓰기를 접도록 해야겠다고 펜을 놓으려는 데, 그냥 손이 움직여 글을 쓰고 있다.


무슨 이야기를 해야 할까.. 저녁은 밥과 민스(minced), 콩이 섞인, 쉽게 말해, 소고기 갈아 으깬 덮밥을

먹었다. 역시 포만감을 주며 빵빵하게 해주는 것은 쌀, 라이스다. 그걸 꾸역꾸역 처먹는대 왜 그리

배추김치와 총각김치 생각이 나는지 그것을 상상하며 꾸역꾸역 처먹었다.

확실히 한국인들은 맵고 짠, 자극적인 식사를 하는 것 같다. 양념이 가미된 반찬에 또 매운 김치를 얹어

먹으니, 짤 수밖에, 반면, 이놈들은 기껏해야 토마토니 머니, 몇 가지 소스만을 첨가해 먹으니 확실히

음식이 담백하고 심심하다.


오늘은 월요일인대 내일은 하루 종일 락 당해 밥만 받아 먹는다고 한다.

즉, 내일은 하루 종일 이 조그마한 셀안에 갇혀 있어야 한다.

휴~ 배부른데 상당히 불쾌하고 피곤하게 배가 부르다. 오랜만에 쌀을 먹어서 그런가 좀 빵빵 해진

기분이 그저 좋게만 느껴지지 않는다.

휴~ 자유라는 게 그립다. 물론 밖이나 여기나, 생활하고 먹고 자고 싸는 건 똑같지만 어떤 면에서는 밖

생활보다 조금 나은 게 한 두 개 있지만, 확실히 수많은 영화나 책에서 말했듯 공기가 다르다.


밖의 자유로운 공기가 무척 그립다. 2년 2개월간 군대라는 곳도 다녀왔지만 그곳과도 다르다.

그곳은 사회와 차단된 다른 공간 안의 생활이라 할 때, 이곳은 사회와 똑같지만 자유라는, 그렇게 밖에

표현할 수 없는 그 자유의 공기가 없기에, 무언가 자유에 대한 갈망이, 갈증이 생긴다.

밖에 나가서 그저 숨 한번 쉰다는 것, 그 자체로 행복할 것 같다.

감옥 밖에서, 내가 원하는 곳으로 걷고, 그 자리에 주저앉아 담배를 태우고 피곤하면 땅바닥 어디에도

누워 잘 수 있는 자유, 그 자유가 그립다. 자유가 무엇인지 이곳에서야 알게 되었다.

자유, 그것은 인간의 생활에 있어서 가장 근본적인 에너지다. 한국 가고 싶다. 자유롭고 싶을 뿐이다.


눈이 감기고 주변 사물이 검게 진다. 덥수룩한 수염과 아무것도 하지 않음에도 자꾸만 시커메지는

내 얼굴, 왜 그런지 나도 모른다. 내속이 새카맣게 타버려서 그런가 보다.


점심 후 한이 이야기를 해주었다. 약 7년 전에 이곳 JAIL에서 탈옥이 있었다고 한다.

한 죄수의 애인이 헬기를 탈취해, 감옥 운동장 한복판에 착륙했고, 그 죄수는 착륙한 헬기 안으로 태연히 걸어 들어가, 그렇게 그들은 재회하고, 이곳 감옥에서 떠나 버렸다고 한다.

맥시멈 시큐리 상태의 초삼엄 JAIL임에, 교도관들과, 실탄을 장전한 경비원들, 모두,

그러한 광경을 멍하니 지켜보고만 있었다고 한다.


상상이 되는가?


하긴, 이곳에 들어오면 '프리즌 브랙'이니 '쇼생크탈출'이니 하는 탈옥 영화나 드라마가 많이 생각나지만, 그런 일이 벌어지기란, 아니 상상조차 할 수 없다.

그런 상상, 계획 자체를 한다는 것, 그 자체가 대단하다는 것을 알게 된다.

더군다나 헬기를 이용해 그렇게 태연히 날아가버리니 어찌하겠는가?

그저 보고 있을 수밖에, 그러면서 한은 그 여자와 남자의 사랑에 대해 이야기했다.


나도 사랑하고 싶다. 그 사람과 손잡고 이야기하고, 맛있는 거 먹고, 좋은 곳에 가고, 사랑을 나누고 싶다. 그 여자를 꼭 안고 아침을 맞이하고 싶다. 그 모든 것, 상상하는 모든 것, 할 수 있는, 하고 싶은 모든 것의 밑바닥에는 자유가 있다. 난 자유가 없다. 여기는 교도소, 감옥일 뿐이다.


알겠지만, 넘쳐흐르는 기억의 단편들을 펜을 이용해 굴러 다니던 종이에 주워 담았기에, 뒤죽박죽이고,

하지 못한 이야기도 많다.

그리고 이곳 MRRC, F103호에 온 후에야, 글을 다시 쓰기 시작했다.

여기서 잠시, 나의 그동안의 정확한 발자취를, 날짜를 사용해 간략히 정리하고, 이야기 못했던,

지금 기억나는 것들을 조금은 써야겠다.



5월 13일 새벽,

경찰에 붙들려 경찰서에 갔고, 그날 오후 센트럴 코트에서 BAIL을 받기 위해 법정에 섰으며

그날 저녁 서리힐 구치소로 넘어갔다.

14일 목요일

하루 종일 서리힐 구치소에 있었으며,

15일 금요일

다시 BAIL을 받기 위해 센트럴 코트로 다시 넘어갔다. 하지만, 그들의 거절로 BAIL이 다시 취소되었으며,

다시 서리힐 구치소에 잠시 있다가는 그날 밤 이곳 MRRC로 오게 된다.

데이비드와 같이 스페셜 구역에서 하루를 보내고,

16일 토요일

을 맞이한다. 그날 저녁 나는 다시 D54호인 바로 위층으로 옮기게 되고,

그곳에서 홍콩인 YU를 만나게 되어 정확히 18일 저녁까지 같이 지내게 된다.

18일 월요일 낮.

마지막으로 BAIL을 받기 위해 VIDEO LINK로 법정과 연결되었지만, 역시나 정확한 주소지가 없는 나는,

감옥으로 돌아온다. 혼자 있을 수 없어, 다른 셀에서 잠시 터키 남자 에르건을 만난다. 그리고 저녁, YU는

다른 곳으로 이동하고 YU대신 이름 생각나지 않는 인디언이 오게 되어 그와 하룻밤을 지낸다.

19일 낮

에, 법정 구치소에서, 지난 15일 금요일 두 번째로 법정에 갔을 때, 잠시 갇혀있던 구치소에서 만난 두 명의 사내를 다시 만난다. 한 명은 콜롬비아인이고 여자 엉덩이를 만지다 사복 경찰에게 잡혀왔고, 또 다른 한 명은 뉴질랜드 백인으로 엑스타시 여섯 알을 먹고 집을 부수다 신고받고 출동한 경찰에게 잡혀왔다.

그들을 기억하는 이유는 나와 비슷한 또래였고,

20일 낮

에 감옥 안의 운동장인 야외에 나갔을 때, 그들을 다시 만났기 때문이다.

그중 한 명인 뉴질랜드인, 그의 이름은 'CHARLY'이다. 찰리의 이야기가 조금 새로웠다. 그는 전형적인 마약 중독자로 그를 처음 보았을 때도 긴바지에 점퍼까지 입었음에도 창백한 얼굴로 벌벌 떨며 의자에 몸을 최대한 밀착시켜 자던 모습이 떠오른다. 그는 매일 같이 마약을 복용했고, 그가 말하기를 자기 같은 마약 중독자는

추위에 매우 민감하다며 자신이 떠는 이유를 설명했다. 콜롬비아 친구는 별말 없이 구석에 처박혀 앉아만

있었고, 찰리는 역시나, 그의 말대로 그의 가족들이나, 자신이 감옥을 들락날락하여 그런지, 빨리 적응해,

생존 본능대로 운동을 하며, 나에게도 같이 걷자, 그래야 이곳에서 살아나갈 수 있다 하며, 같이 걸었다.


그리고, 그렇게 걷다가는,

18일, 저녁 식사를 같이, 잠시 했던 터키인을 보았고,

그에게 다가가 너의 이야기 좀 해달라 말했고, 그렇게 그와 나는 오랜 시간을 조그만 감옥 운동장을 왔다 갔다 하며 그의 이야기를 들었다.


그는, 결국,

그들의 소망대로 결혼했고, 자식을 낳아 행복히 살았지만, 집의 융자금을 위해 하루도 쉬지 않고 일할 수밖에 없었다. 즉, 집 하나와 자신의 인생을 바꾼 것이다. 그렇게 지속되는 일과 일에, 또한, 일을 찾아 떨어져 지내고, 떨어져 지내니 외롭고, 쉽게 구할 수 있는 마약과 술에 의지하게 되고,

그러다 보니 또 누군가를 찾게 되고, 그렇게 그들은 멀어졌다.

그리고, 그는, 그의 딸이 너무나 보고 싶었고, 그의 딸을 보기 위해 전화를 하니 그녀의 부인은 차갑게 말을

했고, 다투게 되었고, 결국, 그녀에게, “지금 총을 두 개 가지고 있다, 널 죽여버리러 가겠다.”

말했고, 그녀의 신고로 출동한 경찰에 잡혀 5년형을 받았다고 한다.

그것 가지고 5년형이라니? 바로, 이해할 수 없었지만, 그 당시 상황에 대해 들으니 이해할 수 있었다.

그날도 역시 일을 마치고, 집에서 여느 때와 같이 그의 애인과 친구와 마리화나와 다른 마약을 하며 술을

마시고 있었고, 실제로 총을 두 개 가지고 있었다고 한다. 그리고 집안에서 마리화나를 키우고 있었다고 한다.

즉, 마약을 하며 술을 먹고 있었고, 거실에 총 하나와 그의 애인 방 침대 밑에 총 하나, 그리고 마리화나를

키우고 있는 그 모습들을, 그의 아내의 신고를 받고 출동한 경찰들이 보게 된 것이다.


놀랍지 않은가? 영화에서나 보던 그런 장면 아닌가? 나는 영화에서나 보던,「그에게는 미안한 말이지만」그런 범죄자와 같이 걸으며 그의 이야기를 듣고 있는 것이다


며칠 전 나를 반갑게 맞이하고, 친절하게 담배를 주며, 내 이야기를 천천히 들어주고,

자신의 이야기를 조금 하고는 바로, 눈물 흘리던 그 남자가 지금 그 남자이다.

그리고 그러한 사람들이 전부인 이곳에서 나는 그들과 같이 숨 쉬고 있다.

이 무색무취의 감옥공기, 그들과 같은 공기를 맡으며....

그리고 그 처럼, 여기 있는 거의 모든 범죄자들은 그 상황을 반성하지 않는다. 재수 없었다고만 생각한다.

내가 마약을 안 했다면, 키우지 않았다면, 총을 가지고 있지 않았다면이 아닌, 그때 경찰만 안왔어도 괜찮았다. 바로 이것이다. 그런데 그것도 그들에게는 어느 정도 논리가 있다. 매일 그렇게 살며, 그것이 생활인 사람에게는 경찰이 왔다는 것이 사건의 시작인 것이다.

그때 경찰만 안왔어도 그는 그런 생활을 계속하고 있었을 테니.


그의 이야기만 들었을 때, 그는 흉악한 범죄인이지만, 그는 나에게 있어, 지금 같이 걷고 있는, 일반, 40대

터키 사람같이 보이고 느껴질 뿐이다. 단지, 집을 구하기 위해 평생을 일하며, 사랑하는 사람과 살기 위해

평생 돈을 갚아 나가다 틀어져 버린, 자본이라는, 돈이라는 것이 만들어낸 염증 같은 존재, 자본주의의 피해자로 보이며 안쓰럽기도 하고 불쌍할 뿐이다. 하지만 그의 이야기는 좀 놀랍기도 하다.


그렇게 그의 이야기를 모두 듣고, 다시 셀에 들어와 몇십 분을 있었을까 나는, 나의 이름과 함께 다른 곳으로 이동한다는 호출에 짐을 싸고, 그 코골이 인디언과 같은 밤을 다시 보낸다는 것이 끔찍이 싫어,


그 호출이 정말 기뻤다.



그렇게 그날 밤 20일 수요일 저녁, 아직 까지는, 지금 까지는 25일 월요일 까지는, 머물고 있는, 앞으로는 또 어찌 될지 모르겠지만, 그렇게 그날 저녁부터 이곳 MRRC, F구역 103호 셀에서 깔끔이 PAUL과

머물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