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년 1월 15일
운과 명이 합쳐져서 운명이 되다는데, 대게 좋은 일들은 운으로 시작하지만 직접 타고난 명도 좋아야 일이 술술 풀린다고 한다. 매 순간 일이 술술 풀리는 건 아니지만, 나는 그래도 축복받은 사람이다.
그러니 감사함을 마음껏 품고 나눌 수 있는 사람이 되고 싶다. 매 순간 영감을 받을 수 있는 사람이자 그렇게 누군가에게 또 영감을 주고 싶은 사람이 되는 것. 어렵지만, 참 멋진 일인 것 같다.
싱가포르 비자 발급 이슈로 의도치 않게 생긴 나의 여유로운 나날들.
서울의 공기 아래, 나는 그 시간들을 자유로이 보내고 있다. 아무것도 하지 않고 멍만 때리다 지나가는 하루도 있었고, 책을 들고 카페에 왔으나 결국은 배부른 졸음에 테이블 위에서 낮잠을 청한 날도 있었다. 그러다 시계를 보고, 짐을 챙겨 기분 좋게 친구를 만나러 이동하는 시간들이 대다수의 나의 일상이었다.
요즘 친구들을 만나면 다들 공통적으로 하는 이야기가 있다. 내가 달라졌다는 것이다. 내가 삶에서 중요하게 생각하는 가치가, 또는 나의 생각하는 방식이.
어떻게 해야 할지 몰라, 막연함에 꽉꽉 채워 달려왔던 나의 날들은 늘 열심이라는 단어로 귀결되곤 했었다.
쉴 틈 없이 계속되어야 하는 서울이라는 공간 속에서 끊임없는 연속선 상에서 달리는 게 일상이었다.
그래서 지금처럼 간혹 주어지는 한가한 순간이 생기면, 그 순간 또한 초조함으로 채워 견디지 못했다.
쉴 수 있는 틈마저 쪼개고 또 쪼개어 조금이라도 더 의미 있고 생산적인 결과물을 만들어야만 할 것 같았다.
그러던 나에게 여러 일들이 있었고, 새로운 변화가 찾아왔다. 2019년-
처음이라는 의미만으로도 충분히 의미가 있었던 해였다. 이렇게 문장으로 적어보려 하니, 시작하며 다짐했던 나의 열정과 설렘의 마음가짐들이 차례대로 머릿속을 스쳐 지나간다. 한번 더 여유를 찾게 되고, 건강을 찾게 되고, 일상 속에서의 작은 행복을 찾게 되었다. 흘러가는 일상에 치이지 않고, 소소한 행복도 나눌 수 있는 마음을 가지게 되었다. (이전보다는....)
2020년 2월 5일
주변이 이토록 고요하건만 마구마구 요동치는 밤이다. 이럴수록 더 마음을 굳건히, 그리고 아주 가지런히 먹어야겠다. 나의 삶에서 중요하다고 생각되는 가치들이 만들어지기까진, 몇 달 간의 대화가 도움이 되었다
그를 위해 가장 중요한 건 쉽게 흔들리지 않고, 옳은 것을 잘 추구하되 상처를 주지도 받지도 않아야 된다-
일희일비에 무너지지도, 서린 감정을 구태여 표출하지도, 내 안에 꿈틀거리는 걱정의 씨앗을 민들레씨마냥 바람에 흩뿌릴 필요도 없을 것이다. 할 말이 없어지는 고요의 적막은 이런 어리석음을 토대로, 아무말대잔치의 시초가 된다. 그럴 때일수록 굳이 나의 어리석음을 보여주는 말을 잇기보단 멈추고 적막을 사랑하는 이가 되어야 한다
같은 단어에도 여러 온도차가 존재한단 것, 웃음에도 온도차(밝게 웃으며 대화를 이어가는 노력들이 사실은 관계를 위해 애써 웃음을 이어가는 모습)가 존재한다는 것에 대해 매일같이 느끼는 나(myself)이고, 나이(age)다.
그 누구도 나를 함부로 상대할 수 없는 아주 강한 이가 되거나, 모든 속상함을 무반응으로 포섭할 수 있는 이가 되거나. 미움받을 수 있는 ‘용기’와 덜 상처 받고 덜 상처 주는 ‘거절’ 마지막으로 무덤덤하게 살아가는 ‘지혜’. 새벽 5시에 나는 다짐, 또 깊은 다짐을 해본다
2020년 2월 7일
어제보단 더 일찍 눈을 떴다. 어제 하루 열심히 돌아다닌 탓에 저녁 9시 반에 픽 쓰러져 눈을 감았던 덕이다-
어제보단 따뜻해진 날씨가 조금은 다행인 모양이지. 아무튼 이른 아침 공기가 참 좋았다.
일상이라 생각했던 루틴에서 벗어나 한 달간의 비일상에서 발견한 건, 서울이란 바쁜 이곳과 사람들.
새로운 삶을 느끼려는 노력이 내게 물들어갈 때가 되면 어김없이 싱가포르에서의 새로운 일상이라는 루틴이 나를 기다릴 것이다-
오늘 아침도 여전했다. 은은히 귓가를 맴도는 나지막한 재즈 음악소리와 어설픈 라떼 한잔-
나는 어떤 시간의 행적을 그리며 살아가게 될까. 매 순간의 새로운 호기심은, 어디로 갈지 모르는 내 삶을 만들었지만 이제는 조금이나마 나의 방향에 대해 갈피를 잡을 수 있게 되었다-
2020년 2월 19일
요즘 내가 하는 일은 사람을 관찰하는 일,
책을 들고 카페에 이동하는 길,
카페에 앉아 주변을 둘러보는 일,
그러다 다른 이들의 이야기를 무심히 듣는 일, 요즘 나를 둘러싸는 일이다
신논현역 7번 출구 쪽 빌리엔젤. 오늘은 앞에 어여쁜 꼬마 아이와 아이의 아빠가 마주 앉아 자리했다-
6살 정도로 보이는 그 꼬마 공주님은 잔머리가 삐죽 튀어나온 포니테일 머리를 위로 높게 묶곤,
작은 큐빅 귀걸이와 마스크를 하고 있었다.
올망졸망, 옅게 진 쌍꺼풀의 두 눈을 가진 아이가 아버지를 바라보는 눈을 보니, 언젠가의 내 모습도
같이 겹쳐지기 시작한다.
포크로 한입 더미의 케익을 떠서는 입안 가득 넣는다.
살짝 입가에 떨어진 생크림이 몽실몽실 사랑스럽다.
10분을 멍하니 아이를 바라보았다. 맑은 이 아이를 보고 있자니 머릿속 한 가득 차있었던 오늘의 걱정들이 조금은 가라앉는 듯했다.
아이는 이내 아빠와 자리에서 일어섰고, 고작 내 팔 하나 정도 들어갈 것 같은 아기자기한 주황색 패딩을 입고는, 아빠가 올려주는 지퍼를 한 손 가득 움켜 집는다. 그리곤 아장아장 걸어 아빠 손을 잡아 밖으로 향한다.
나에게도 저런 시절이 있었겠지-
세상이 이렇게 어려운 줄 모르고 마냥 해맑았던-
여러 관계들과 문제들을 걱정할 새 없이 엄마 아빠만이 세상의 전부였던 그런 날들이.
엄마 아빠를 행복하게 해주는 것이 삶의 유일한 낙이었던 그런 날들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