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산율에 대하여
남편이랑 저녁 달리기를 겨우 2키로 하고는 야경좋은 곳에 맥주한잔씩을 주문하고 앉았다.
오늘의 수다(러닝회피)주제는 한국의 출산율!
며칠전 한 경제유투버의 영상을 보고 적잖이 충격을 받은터라 그이야기로 짧은 수다를 떨었다.
“어쩌다 우리나라는 아이들을 이렇게 덜 낳게 되었을까?
우리가 결혼했던 17년전쯤에는 이런분위기는 아니었던게 확실한 것 같은데? 그럼 우리보다 서너살 후배들부터 지금까지 쭈~욱 아이들을 덜 낳고 있다는 건가? 그럼 이제부터 다시 정신차리고? 아이들을 좀 더 낳으면 예상된 미래가 달라질까? 그 분석에 의하면 그래도 안된다는데 진짜일까? 근데 어떤 혁신적인 해결방안이 나온다해도 출산율이 다시 높아질 수 있을까? 지금 우리가 살고 있는 헝가리는 우리나라보다 출산율이 얼마나 높지? 이건 안정적인걸까? 좀 더 잘 사는 옆 유럽 국가들은 아이들을 좀 더 많이 낳나??” 꼬리에 꼬리를 무는 질문수다! 진이 다 빠지게 답없이 질문만 이어가다가 곰곰이 생각을 정리해보며 남편에게 말했다.
“내 생각에 한국은 어쩌면 돈을 더 많이 지원해준다고 해도 아이를 더 낳는 방법을 선택하지 않을 수도 있을 것 같아. 내가 아이를 낳겠다고 결정했을 때를 생각해봤거든. 나는 그냥 너무 자연스럽게 엄마가 되고 싶었어. 내 품에서 나를 닮은 아이가 안겨 잠드는 그 당연하지만 특별한 따뜻함은 그냥 원래 내것이었던 것처럼 당연한 미래 같았거든. 근데 아마 이건, 내가 아이를 따뜻하게 안아줄 수 있다는 나름에 근거없는 자신감이 기본으로 했던 것 같아. 내가 누구이건, 어떤 사람이건 적어도 나는 나의 아이에게 따뜻함과 안전함을 줄 수 있는 엄마가 될 수 있다는. 그냥. 그거, 그건 의심하지 않았던 것 같거든. 근데 지나치게 빠르게 바뀌고 탁월하게 훌륭한 사람이 되어야 한다는 압박이 넘치는 사회에서 우리 부모들은 어쩌면 그 당연한 부모의 역할,따뜻함과 안전함, 그리고 사랑을 임계치보다 더 줄 수 있는 것에 대한 자신을 잃어버린게 아닐까? ‘
‘폭싹 속았수다’드라마를 보면서 관식이의 그 사랑과 가정중심의 인생의 가치관이 결국 그 어떤 가치보다 소중히 그 아랫대로 이어져서 좀 부족해보이는 아들도 그 아내와 아이를 그처럼 사랑하는 어른으로 자랐고, 한 소녀는 그 덕분에 더할 나위없었던 인생을 살았다고 고백하는 할머니가 되었고, 딸은 그 어느 한 순간에도 외롭지 않았지, 그렇게 관식이는 부유하거나 탁월히 훌륭하지 않았지만 엄청난 가치와 빛남을 물려주고 세상에 남기고 떠났어.
그 누구도 그를 부족했다고 , 잘못했다고 , 좋은 아빠가 아니었다고 , 좋은 남편이 아니었다고 말할 수 없을 그 시절이 그대로 보였지. 월급은 부족해도 피곤한 퇴근길에 따뜻한 통닭종이봉투를 안고 들어오는 아버지를 존경하고 사랑해 마지않던 그 시절, 좋은 학교를 보내주지 못해도 어린이 날이 되면 종합과자선물세트를 한아름 안고 무심코 아이들발앞에 놓아주던 아버지의 어깨를 맛사지 해던 그시절 ....그 시절은 돌아오지 않을 것 같아.
종합과자선물세트와 통닭과 붕어빵마저 살 수 없게 되어 세상에 더 할 수 없는 무력감을 느꼈던 아버지들과 그 아버지들과 함께 그시절.그아이들은.누구에게 책임조차 돌릴 수 없었던 보편적 억울함을 겪어야했던 IMF시절.이후
정말 처절히 온 가족에게 그냥 존재로서 미안해할수밖에.없던부모들을 본 그 자녀가 된 차세대들이 부모가 되는 것에 부담을 갖게 된게 아닐까 싶어.”
우리 아이들도 아버지가 거친 손을 하고
따뜻한 붕어빵을 품에 안고 퇴근해 그손에.놓으면
그걸로 감사를 아는 아이들로 크고 있을까?
이 아이들은 사랑이면 충분한 어른들이 될 준비가 되는 중일까? 우린 그만큼의 사랑, 그 어떤것으로도 가치 환산할 수 없는 만큼의 그 마음을 물려주고 있을까?
나의 아이들이어서 ‘더할 나위 없었다’고 말할수 있으며
그들의 아들딸에게 그 사랑을 또 다시 물려줄 수 있을까.
그러면 우리나라 출산율이 올라갈거라는 거에 500원
아!아니고 500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