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색 인생
가만히 잠든 오래된 팔레트를 꺼내보니
온통 뭉뚱그려진 회색 유화 안료이다.
아마도 많이 탈색되고 융합된 이해들,
세상일이 나의 뇌를 주마간산으로 지나갔나 보다.
시간을 한참 뒤로 옮겨 놓고 보니
한때는 짙은 노랑과 흰색을 희석하여 감꽃 색이 된
밝고 여린 용서들이 번져가고
더러는 다홍색에 흰색을 섞어 포근하고 여유로운
살가운 마음들 피어 있었다.
또는 청록색에 흰색을 섞어 청아한 마음들이
서로를 기쁘게 감싸고
남는 여백은 군청색에 흰색을 섞어
명쾌한 판단으로 무거운 마음들을 날려버린 그 젊은
시간의 시네라마가 흘러가고 있었다.
비록 연륜과 경륜이 녹아 있지는 않았어도
군더더기가 적었다는 것이다.
그런 시간을 제 자리에 돌려놓으며
많이 무거워지고 달갑지 않은 일들 앞에서는
마음 한 줄기도 개입하고 싶지 않은 것은
중용이라고 거창하게 말할 수는 절대 없는
그야말로 귀찮은 것이 싫은 회색분자가 되어가고 있다.
그 대신 분별만큼은 날카로워져서 좋고 싫음이
선명하다.
입맛이 까다로워진 것이다.
그럼에도 입에 맞지는 않지만 전혀 내색은 하고 싶지 않은
게으른 회색이 되어간다.
그 어느 간섭에도 귓속을 빠르게 통과해 가버리고
시력은 저하되어 본 듯 안 본 듯 보고
육신과 영혼이 고독을 즐기고자 한다면 옳을 것이다.
결론적으로 삶에 부대끼는 일들은 여과시키고
잡음에서 벗어나 도반의 반절이라도 되고 싶은 것이
곧 희망 사항이다 라는 것이다.
왜?
지난 시간들이 아름답기는 했지만
그 수중 아래는 냉혹하게 현실과 맞서야 했기 때문이다.
그 이름 없는 물밑 작업 덕분에
이제는 오래 회색이고 싶다는 것이다.
그러니 욕심을 긴 시간에 흘려보내 버렸다.
욕심은 무척 피곤한 존재이라는 것을 느끼는 사람은
유년부터 길들여진 천성이다라고 또한 매듭짓고 싶다.
그런 모습이 비천한 자아일 뿐이다.
언어를 잊어가는 시간에 필요한 것들이 비루한 모둠이다.
2016. 6. 2. 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