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라마 리뷰] 마스크 걸 - 사랑이 결핍된 삶의 끝없는 추락
이 리뷰에는 스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사람에겐 기본적인 5가지 정서적 욕구가 있습니다.
사랑과 관심을 받고 싶은 욕구, 자신의 욕구와 감정을 표현하고 싶은 욕구, 자발적으로 행동하고 즐기고 싶은 욕구, 현실적인 한계에 대한 통제를 받고 싶은 욕구, 적당한 좌절을 겪고 성장하고 싶은 욕구가 그것입니다. 어린 시절에 이 5가지 욕구들이 좌절된다면, 이 좌절된 욕구속에서 살아남기 위해 자신만의 특별한 방어기제(굴복, 회피, 반격)를 만들어냅니다. 그리고 성장하면서 이 방어기제는 더 견고해져서 완전히 벗어날 수 없는 삶의 덫처럼 작용합니다.
예를 들어 어렸을 때 부모로부터 사랑을 받지 못한 사람은 다음 세 가지 경우중 한 가지 이상의 방어기제를 가진 사람이 됩니다.
- 굴복 : 상처받고 버림받는 것에 익숙해지고 그것이 오히려 편하게 느껴진다.
- 회피 : 깊은 관계를 맺는 것을 회피한다.
- 반격 : 타인을 괴롭히고 착취하고 이용한다. 관계를 회피하는
넷플릭스 드라마 '마스크 걸'에서는 어린 시절 부모와 친구로부터 사랑과 관심을 받지 못하고 오히려 괴롭힘과 따돌림을 당한 사람이 어떻게 끝도 없이 추락하는지를 보여주고 있습니다. 그것도 못생겼다는 이유만으로 말이죠.
못생겼다는 것은 주관적인 느낌임에도 불구하고 우리 사회는 어떤 특정 외모를 잘 생기고 예쁘다는 이미지로 정해놓았습니다. 그리고 그 이미지에서 벗어났다는 생각이 들면, 스스로 어딘가 잘못되었다는 느낌인 수치심을 안고 살아가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하지만 자신이 가지고 살아가는 얼굴을 포함한 몸에 대해 수치심을 안고 살아간다면 절대로 행복한 삶을 살 수는 없습니다. 우리의 몸은 아무리 거부해도 어딘가로 사라지지 않습니다. 오히려 거부하면 거부할수록 더 고통스럽게 힘든 싸움을 하며 살게 되죠.
미모의 엄마(모미)는 살인자입니다. 그래서 어렸을 때부터 친구들이 괴물 딸이라며 아무도 놀아주지 않았습니다. 항상 따돌림당하고 놀림을 당했습니다. 할머니마저도 나를 받아주지 않았죠. 같이 살고 있지만 툭하면 '내 집에서 나가'라며 미모를 구박했습니다. 엄마는 감옥에 가면서 미모를를 할머니에게 맡겨놓고 딸에게 연락 한 번 한 적 없었죠. 미모라는 소녀는 죽고 싶은 마음을 안고 살아갑니다. 엄마에게서도, 할머니에게서도, 친구들에게서도 사랑받지 못하자 소녀는 그 누구와도 깊이 있는 관계를 맺는 것을 피하게 됩니다. 태어날 때부터 배신만 당하던 경험 때문에 사람들을 증오하며 살게 된 것이죠.
모미는 연예인을 꿈꾸며 자랐지만, 얼굴이 못생겼다는 친구들의 놀림 때문에 자신감을 잃고 살아가는 어른이 되었습니다. 몸매와 춤에는 자신이 있었지만 그놈의 얼굴 때문에 남자들이 자신을 싫어한다고 느꼈죠. 사람들이 자신의 외모를 비하하는 것에 진저리가 나지만 그녀 스스로도 잘생긴 직장 상사를 짝사랑합니다. 그리고 자신의 얼굴을 가리는 '마스크'를 쓰고 춤을 추는 스트리머로 활동하죠. 그러다가 마스크를 벗은 자신의 얼굴을 비하하며 성폭행하려던 남성 팬을 다치게 합니다. 그리고 그 사건은 묘하게 두 건의 살인으로 이어지죠. 누구나 예쁘고 잘생긴 외모를 좋아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그로 인해 뒤에서 받는 상처들도 많음을 그리고 그 상처는 굉장히 폭력적일 수도 있음을 드라마 '마스크걸'은 시사합니다. 이런 폭력이 사라지게 하기 위해서는 우리는 우리 자신의 외모를 있는 그대로 바라볼 수 있어야 합니다. 그리고 그럴 때 다른 사람의 외모 또한 있는 그대로 인정할 수 있게 되겠죠. 저는 드라마 속 모미가 만약 어린 시절 엄마에게 충분한 사랑을 받았더라면 어땠을까 상상해 보았습니다. 만약 모미가 사랑을 많이 주는 부모 손에서 자랐고, 그래서 자존감이 높다면, 자신의 외모에 대해 그 누가 왈가왈부한다 하더라도 당당하고 더 멋진 인생을 살지 않았을까 생각해 보았습니다.
어린 시절 부모의 과보호를 받으며 자란 주오남은 '과보호'를 사랑으로 착각한 홀어머니 손에 억척스럽게 키워진 오타쿠입니다. 게다가 키도 작고 뚱뚱하다는 이유로 어린 시절 왕따와 괴롭힘을 당해왔기에 눈에 띄지 않고 있는 방법이 몸에 밴 철저히 고립된 삶을 살아가는 남자죠. 주오남의 상처는 사실 친구들에게서 온 것 이전에 엄마에게서 왔습니다. 엄마는 남편에게 버림받은 허한 마음을 아들인 주오남에게서 채우려 했고, 그것은 사랑이 아닌 폭력이 되었습니다. 주오남의 엄마는 '너는 너의 인생을 마음껏 펼치며 살아라'가 아닌 '너는 내가 힘들게 키웠으니 나를 위해 살아라'라는 마음으로 아들을 키운 것이죠. 그리고 그 마음이 '과보호'를 불러왔고 그 과보호가 적당한 좌절을 겪고 성장하고 싶은 욕구를 좌절시켰습니다. 만약 주오남이 좀 더 자신의 인생을 살기 위해 좌절하고 성장하는 삶을 살았더라면 오타쿠가 아닌 사람들과의 진짜 인생을 사는 건강한 성인이 되었을 것입니다.
이 드라마는 우리의 어린 시절 상처가 우리의 인생을 시궁창으로 밀어 넣고 있음을 이야기합니다. 그 시궁창 같은 현실은 우리의 상처가 치유될 때까지 계속됩니다. 어쩌면 우리의 상처가 치유되기 위해 우리는 이토록 힘겹게 사는 삶을 창조하는지도 모르죠. 드라마에서도 역시 태어날 때부터 모두에게 버림받았고 그래서 사람들을 증오하며 사는 '미모'라는 소녀의 상처가 엄마의 사랑을 확인하는 계기를 맞아 치유되면서 끝이 납니다.
드라마의 경우 까지는 아니더라도 우리는 모두 크고 작은 상처를 꽁꽁 숨겨두고 살아갑니다. 그 상처는 부모 때문이었을 수도 있고, 외모 때문이었을 수도 있고, 운동신경이 안 좋다던지 하는 능력의 부족 때문이었을 수도 있습니다. 어쩌면 우리에게는 이 상처를 치유하는 것이 오히려 드라마나 영화에서 보다 더 어려운 일일 지도 모릅니다. 나에게 상처를 준 부모는 나에게 상처를 준 기억을 이미 잃거나 왜곡한 지 오래 시고, 나의 외모와 운동신경을 비하하던 친구들은 이미 만날 수 없게 되었기 때문이죠.
그래서 우리는 우리 스스로에게라도 친절해져야 합니다. 내면화된 나를 무시하는 부모의 시각과 화해해야 합니다. 못생겼다고, 뚱뚱하다고 비난하는 내 안의 나와 화해해야 합니다. 화해하면 세상을 보는 눈이 달라지고, 세상을 보는 눈이 달라지면 인생은 달라집니다. 화해를 하기 위해서는 지하실 깊숙이 묻어놓았던 지난날의 상처와 트라우마를 꺼낼 수 있는 용기가 필요합니다. 그 오랜 상처를 마주할 때 오랜 상처와의 화해는 시작됩니다.
https://www.youtube.com/watch?v=z1WbVxZJN_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