_끄적끄적
한참을 걷다 보니 그 집 앞이었다. 오랜만이다. 몇 년 전만 해도 대문이 노란색이었는데 하늘색으로 바뀌어 있었다. 막상 찾아왔지만 대문 앞에서 조금 망설였다. 내가 지금 여기에 온 게 잘한 짓인지 잠시 생각하다가 초인종을 눌렀다.
“왔니?”라는 말과 함께 삑-하며 대문이 열렸다. 안으로 들어가자 여전히 잘 가꿔진 정원이 눈에 들어왔다. 그다지 크지 않은 마당은 늘 깔끔하게 정리되어 있었다. 아주머니는 현관문을 열며 반갑게 맞아주셨고, 눈인사를 나눈 후에 거실 소파에 앉았다. 차를 마실 거냐고 물어보셔서 차가운 물을 한잔 달라고 부탁했다. 어떻게 지냈는지 서로 묻고 대답하다가 어느새 우리는 해야만 하는 이야기를 나누었다.
그는 나와 헤어진 지 1년 만에 사고로 세상을 떠났다. 가끔 아주머니를 만나 뵙기는 했지만 아들의 이야기가 듣고 싶으셨다고 말하며 먼저 사과를 하셨다. 우리는 7년을 만났고 결혼도 생각했지만 그에게 갑자기 여자가 생겨 헤어졌다. 그 여자에게 아이가 생겼다며 그쪽으로 가는 게 맞는 것 같다고 말하던 모습이 내가 본 그의 마지막이었다.
자상한 사람이었다. 재미는 없지만 다정하고 변함없는 사람이었다. 그런 사람과 7년을 만나다가 여자가 생겨 헤어졌던 그때 나는 그 앞에서 울지도 못했다. 보내달라고 차분하게 말하는 그 사람을 잡지 못했다. 내 청춘이 온통 그 사람이었는데 믿을 수 없는 일이 생긴 것이다. 어떻게 버텼는지 모르게 시간이 흘러갔다. 모든 게 다 멈춰버렸다.
헤어진 지 1년 만에 그는 부고로 나에게 소식을 전했다. 나는 장례식장에 가지 못했고, 마시지도 못하는 술로 하루하루를 버텼다. 헤어졌을 때와는 또 다른 아픔이 내 마음을 얼려버렸다. 얼마나 지났을까. 정신을 차리고 보니 병원이었다. 지금도 가끔 악몽을 꾼다. 부드러운 말투지만 차갑게 말하던 모습으로 그는 종종 꿈에 나온다.
덧칠해진 대문처럼 나도 아무렇지 않아 보일까? 하늘색 아래 감춰진 노란색은 사라질 수 있을까? 아직도 나에게는 노란 대문이 익숙하다. 이런저런 생각이 뒤섞여 조금은 멍한 상태로 아주머니와 대화를 이어나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