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 가지 가위에 대한 생각
1. 가위
난 가위 바위 보를 참 못한다. 스스로 뭔가를 못한다고 단정 짓기는 싫지만 10번 하면 7-8번은 지는 게임이니 못하는 게 맞지 않은가. 그게 스킬 부족인지 그저 운이 없는 것인지 나는 알지 못한다. 생각하며 가위 바위 보를 해본 적이 별로 없기 때문이다. 상대방의 패턴을 생각해 가며 머리를 쓰면 이길 확률이 조금은 높아질 테지만 이기고 지는 게임 자체를 어릴 때부터 싫어했다. 그 긴장감_쫄림_난 그게 참 싫다.
물론 하면 또 엄청나게 열심히 한다. 피구, 배구, 농구, 핸드볼 여자애들끼리 하는 건 기술적인 경기가 아니다. 신경전이 90퍼센트지만 악착같이 달라붙어 공을 뺏고, 나름 큰 키로 수비와 공격을 적절하게 해내곤 했다. 초등학교 시절 피구는 여학생들 사이의 전쟁이었다. 나름 친하게 지내던 친구와 상대편이 되어 붙게 되면 이기고 진 경기로 인해 한동안은 본체만체하며 지내기도 했다.
가위를 이기려면 주먹을 내야 한다. 가위로 이기려면 상대가 보를 내야 한다. 둘이서 가위바위보를 하면 50퍼센트의 확률로 이기고 진다. 꽤 높은 확률이다. 높은 확률로 이길 수도 있고, 높은 확률로 질 수도 있다. 마치 인생 같구나. 우리는 아주 높은 확률로 살아있으며, 아주 높은 확률로 죽을 수도 있다.
2. 가위
자, 나는 이제 내가 좋아하는 물체인 가위에 대해 쓰려한다. 나는 가위질을 좋아한다. 선을 맞춰 종이를 곱게 자르다 보면 무아지경에 빠진다. 미술 수업을 할 때 가위는 필수다. 사사삭 가위질 소리를 듣다 보면 마음이 편안해진다. 날카로운 가위로 부드럽고 얇은 종이를 섬세하게 자를 때 편안함을 느낀다니 아이러니하다. 가위는 칼을 두 개 붙여 놓은 도구이다. 오므리면 칼보다 안전하게 느껴지지만 벌리면 칼만큼 위협적이다. 칼은 단번에 그을 수 있지만 가위는 단번에 자를 수도 있다. 무슨 말을 지껄이고 있는지는 모르겠지만 그렇다.
3. 가위
또 하나의 가위에 대해 나는 이야기를 하려 한다. 선잠을 잘 때 눌리는 가위. 어릴 때 거의 매일 가위를 눌렸다. 그건 아빠의 탓이겠지. 타라가 울부짖으며 깨어나 길에 나가 괴로워하다 잠이 깨던 모습의 축소버전이 내가 매일 눌리던 가위다. 괴로웠다. 낮에는 실제 현상 때문에 괴롭고, 밤마다 눌리던 가위도 많이 괴로웠다. 놀라서 깨고, 울면서 깼다. 그 시절 나는 누구나 악몽을 꾸고 가위를 눌린다고 생각했다. 높은 곳에서 떨어지는 꿈을 꾸면 키가 큰다는 속설처럼 모두가 성장하기 위해 가위를 눌리는 거겠지 생각했다. 나중에 성인이 되어 친구들과 이야기를 나눠보니 한 번도 눌려본 적이 없는 친구도 있었다. 아! 누구나 눌리는 게 아니었구나. 어린 날의 내가 안쓰러웠다.
가위를 눌리던 어린 시절의 기억을 가위로 종이 자르듯 싹둑 자를 수는 없다. 이제 와서 그 기억을 지운다 해도 나의 무의식에는 남아 있겠지. 최면으로 기억을 지워봤지만 슬픔이 묻어나는 미소를 짓던 올드보이의 마지막 장면처럼 말이다. 가위로 혀를 잘랐지만 과거의 말들은 사라지지 않는 것처럼. 그저 사실은 저기 먼 과거에 두고, 내가 겪은 지옥을 내림하지 않으려 한다. 피해자이며 가해자가 되지 않기 위해 매일 새로 태어난다는 생각으로 살아갈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