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선 기간 이후 요 몇 달간 호텔경제학과 민생지원금 이슈로 인해 국민들의 케인지언 경제학과 승수효과에 대한 관심이 하늘을 찌르고 있는 듯하다.
하나의 경제 개념이 온 국민의 관심사가 되다니, 경제학을 사랑하는 입장에서는 설레는 마음이 들었다.
그러나 동시에 정치 싸움을 위해 케인즈 경제학에 대한 이해 없이, 경제 정책의 본질을 흐리고 의도를 곡해하는 세력들에 한없이 분노를 느끼기도 했다.
이 글은 정치적인 입장을 표명하려고 쓴 글이 아니다.
온전히 케인즈 경제학의 핵심인 '승수효과'가 어떤 개념인지 많은 이들이 정확히 이해했으면 좋겠다는 마음에서 이 글을 쓰기 시작했다.
승수효과가 아주 직관적으로 와닿는 개념은 아니다. 돈이 돌면 국가경제가 산다니, 뚱딴지 같은 소리로 들리기도 한다.
하지만 지금부터 그 구조와 원리를 차근차근 들여다보면, 승수효과가 어떤 경제학적 의미를 가지는지 제대로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사실 승수효과는, IS-LM모형이나 케인지언 크로스, 구축효과 등 다양한 개념을 먼저 이해해야만 정확한 설명이 가능하다.
그러나 이 글에서는 배경지식이 없는 이들도 승수효과를 직관적으로 이해할 수 있도록, 복잡한 수식이나 그래프는 최대한 배제하고 단순화하여 설명해볼 예정이다.
따라서 승수효과를 거시경제학적으로 정확하게, 수학적으로, 제대로 배워보고싶은 이들은 맨큐의 거시경제학 책을 참고하거나, 유튜브에 '경제학 짱박사'를 검색하셔서 맨큐의 거시경제학 강의를 들어보시기 바란다.(학부 수업을 들으며 거시경제를 공부할 때 많은 도움을 얻었기 때문에 감사한 마음이 있다.)
승수효과는 케인즈 경제학의 핵심적인 개념이다.
케인즈 경제학의 시작은 1929년의 대공황이었다.
대공황 이전까지 경제학의 주된 흐름은 '고전학파'로, 시장은 항상 스스로 균형을 유지한다는 입장이었다.
우리가 흔히 말하는 '보이지 않는 손'이 바로 고전학파의 주장을 비유적으로 나타낸 표현이다. 시장에는 보이지 않는 손이 있어서, 정부 개입이 없더라도 가격기구를 통해 효율적인 자원배분이 이루어질 수 있다는 의미이다.
고전학파의 주장에 따르면 실업자가 많거나 상품이 팔리지 않을 때, 가격과 임금이 조정되면서 수요와 공급이 자동으로 균형을 달성하기 때문에 시장의 각종 문제는 즉각적으로 해결된다. 따라서 정부가 시장에 개입하는 것은 혼란만 가중시킬 뿐 아무런 도움이 되지 않는다.
그러나 대공황 이후, 고전학파의 '효율적 시장'에 대한 주장은 빠르게 무너지기 시작했다.
대공황 시기에는 고전학파의 주장과 달리 임금도, 가격도 빠르게 조정되지 않았고, 대량 실업과 경기침체가 오랫동안 유지되면서 역사상 최악의 경제 후퇴를 겪었다.
이 때 등장한 것이 바로 케인즈 경제학이다.
케인즈는 시장이 언제나 균형을 이루는 것은 아니며, 정부가 시장에 개입해야 경제위기를 극복할 수 있다고 주장한다.
고전학파는 시장 균형을 공급 측면에서 설명한다.
'공급이 수요를 만든다.'는 세이의 법칙이 고전학파의 관점을 잘 설명한다. 기업이 공급을 하는 과정에서 기업으로부터 임금, 지대 등의 소득을 얻은 가계가 소비를 하게 되고, 수요는 자연스럽게 따라온다는 의미이다.
그러나 케인즈는, 대공황 시기에 이러한 고전학파의 입장을 정면으로 반박한다.
기업의 생산능력은 이미 과도하나, 유효수요가 부족하기 때문에 대공황이 발생했다고 주장한 것이다. 이 때 유효수요는 막연히 어떤 재화를 갖고 싶다는 의미가 아니라, 돈을 지불할 수 있는 경제력이 뒷받침된 수요를 뜻한다.
따라서 케인즈는 고전학파와는 반대로, 시장 균형을 수요 측면에서 설명한다.
즉, 공급은 이미 충분하므로 유효수요를 증가시켜주면 국민총소득은 그에 맞게 증가할 것이고, 그렇게 하기 위해서는 정부가 재정지출을 하는 등 시장에 적극적으로 개입하여 수요를 창출해야 한다는 것이 케인즈의 주장이다. 정부가 개입해야한다는 주장은 곧 시장이 그 자체로 완전하지 못하다는 것을 의미하기도 한다.
사람들이 돈을 안 쓰면, 기업은 생산을 하지 않으므로 실업자가 생기고, 그 실업자는 또 소비를 못하게 된다. 이 악순환을 끊으려면 정부가 먼저 소비자 역할을 자처하여 도로를 깔고, 댐을 건설해야한다. 정부지출이 늘어나면 유효수요가 살아나고, 생산·고용·소득이 선순환을 시작하게 된다는 것이다.
여기 거시경제학의 토대를 이루는 중요한 항등식, 국민소득항등식이 있다(단순화를 위해 수출 없는 폐쇄경제를 가정).
이 식은 항등식이므로, 어떤 때에도 항상 성립한다.
고전학파나 케인즈 학파나, 이 식이 성립한다는 사실에 있어서는 이견이 없다. 다만, 식을 어떻게 해석할 것인지에 따라 두 학파의 의견이 갈린다.
좌항은 총공급을, 우항은 총수요를 의미한다고 생각하면 편하다.
케인즈는 우항의 총수요, 즉 유효수요가 좌항의 총공급을 결정한다고 보았다.
국민이 소비하고, 기업이 투자하고, 정부가 지출함으로써 국내총생산이자 국민총소득 Y가 결정된다고 본 것이다.
정부지출 G를 증가시킨다고 가정해보자. 항등식에 따라 그만큼 우항의 Y(GDP)는 증가할 것이다.
그러나 승수효과에 따르면, G를 100만큼 증가시킨다고 해서 Y가 똑같이 100만큼 증가하지 않으며, 100보다 더 많이 증가한다.
왜 그런 것일까?
위 우항에서 소비(C)의 함수 식은 다음과 같다.
Yd는 가처분소득으로, 세금 등을 제외하고 개인이 실제로 소비나 저축에 사용할 수 있는 소득을 뜻한다.
따라서 주로 Y(소득)-T(세금)으로 나타낸다.
Y(소득)가 증가하면 C(소비)가 증가하는 형태인데, 직관적으로 생각해봐도, 소득이 늘면 소비를 늘리는 경향이 있지 않겠는가?
참고로, 가처분소득은 근로소득 뿐 아니라 개인이 직접 생산활동에 참여해 그 대가로 받는 일반소득과는 달리, 다른 가계나 정부·기업 등으로부터 무상으로 얻는 수입인 이전소득을 포함하는 개념이다.
코로나 시기 지급된 재난 지원금이나, 이번 이재명 정부의 민생 지원금이 이 이전소득에 속한다.
b는 한계소비성향(MPC)로, 개인의 가처분소득이 한 단위 증가했을 때 소비가 얼마나 증가하는지를 나타내는 비율이다.
우리는 저축이라는 선택을 할 수 있으므로, 소득이 증가한다고 바로 소비로 이어지지는 않는다.
예를 들어 MPC가 0.8이라면, 가처분소득이 1원 증가할 때 소비가 0.8원 증가한다는 의미이다.
a는 소득과 관련 없이, 즉 소득이 0이더라도 발생하는 생계 유지 등에 필요한 최소한의 소비를 나타낸다.
우리는 이제 소비(C)함수의 식에 Y(소득)가 포함되어있다는 사실을 알았다.
그럼 다시, 정부지출(G)이 증가한다고 가정해보자.
항등식에 따라 국민총소득 Y는 증가한다.
C의 식에 Y가 포함되어있는데, Y가 증가하므로 C역시 증가한다. 그런데 이렇게 되면, 항등식에 따라 또다시 Y가 증가한다. Y가 증가하면, 또 C가 증가한다. C가 증가하면, 또 Y가 증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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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러한 연쇄효과로 인해, Y(총소득)는 G(정부지출)의 증가분보다 훨씬 더 많이 늘어나게 된다.
소비가 소비를 낳게되기 때문이다.
이러한 방식으로 총소득을 확대하고 경기를 부양할 수 있다는 것이 바로 승수효과의 핵심 개념이다.
그리고 이 개념을 극도로 단순화해 대중적으로 설명한 사례가 바로 이재명 정부의 ‘호텔경제론’이다.
즉, 누군가 객실 하나를 예약하면 소득(Y)이 생긴 호텔은 소비(C)를 하게 되고, 소득(Y)이 생긴 가구점은 치킨을 구매(C)하게된다. 유효수요의 증가에 맞는 생산의 확대가 이루어지면서 Y(국민총소득)이 증가한다. 이러한 방식으로 민간 경제 전반에 활력을 불어넣고, 국민총소득을 증가시켜 경기 침체를 타개할 수 있다는 것이 '호텔경제론'이 말하고자 하는 바다.
호텔경제론이 아주 잘 든 예시는 아니라고 생각한다.
'호텔의 예약을 취소한다'는 표현이 듣는 사람 입장에서는 자칫 자극적으로 느껴질 수 있으며, 개념을 극도로 단순화시켜 승수효과를 처음 접하는 이들의 입장에서는 터무니 없는 말로 비추어질 수 있기 때문이다.
여러 문제점이 있지만, 논리 자체가 완전한 오류라고 볼 수는 없다. 또한, 실제로 호텔의 역할(즉, 손해를 보는 역할)은 정부가 하기 때문에(초기에 국가 재정을 투입함으로써) 호텔이 무슨 죄냐는 비판은 실제로는 성립하지 않으며, 경제 전반에 공포심이 확산되어 오히려 소비가 위축된다던가···하는 문제는 발생하지 않는다.
한편, 우리는 G를 일정량 증가시킬 때, 승수효과에 따라 Y가 정확히 얼마나 증가할지 계산할 수도 있다.
(1/1-MPC)를 정부지출승수(G multiplier)라고 한다.
정부지출승수가 클수록, 같은 양의 정부지출이 증가할 때 더 많은 소득이 증가하므로 재정정책의 효과가 커진다. 그런데 이 정부지출승수의 분모에, 앞서 언급한 MPC(한계소비성향)가 포함되어 있는 것을 볼 수 있다. 앞에 (-)기호가 붙어있으므로, 한계소비성향이 클수록, 분모가 작아져 정부지출승수는 커지고, 재정정책은 효과적이다.
MPC(한계소비성향)은 개인의 가처분소득이 한 단위 증가했을 때 소비가 얼마나 증가하는지를 나타낸다고 하였다. 보다 직관적으로 표현하면, 소득이 일정량 늘었을 때 그것을 저축하지 않고 소비하는 성향이 강할수록 연쇄효과가 강화될 것이므로 재정정책은 효과적이 된다.
예를 들어, MPC가 0.8이라면, 정부지출승수는 1/(1−0.8)=5가 된다.
즉, 정부가 10만 원을 지출하면 최종적으로 50만 원의 Y(소득)증가가 발생한다는 의미다.
반면, 이 MPC가 작으면 재정정책의 효과는 거의 볼 수 없다. 극단적으로 MPC가 0이면, 정부지출승수는 1이 된다. 따라서 정부지출을 100만큼 늘려도, 사람들이 돈을 쓰지 않고 꽁꽁 숨겨두므로 연쇄효과는 일어나지 않고, Y는 G의 증분과 같은 100만큼밖에 증가하지 않는다.
그래서 승수효과에 대한 비판은 분명 존재할 수 있다. 승수효과의 핵심 변수인 MPC는 시대별로, 국가별로, 한 국가 내에서도 소득 계층별로 차이를 보이며, 정확히 측정하기도 어렵다. 특히 MPC가 0에 가까운 집단(ex.고소득층)에게 지원금이 돌아간다면, 그 자금은 소비로 이어지지 않고 저축되거나 해외로 유출될 수 있어 사실상 승수효과는 거의 발생하지 않게 된다.
이처럼 MPC의 현실적 한계와 불확실성에 대한 지적은, 승수효과나 이재명 정부의 재정정책을 비판함에 있어 충분히 타당하고 고려할 만한 논점이다. 단순화시킨 사례의 꼬투리를 잡아 행하는 정치적 공격보다는, 이러한 경제학적 근거에 입각한 타당한 비판이 국가경제 발전에 대한 생산적인 논의에 기여할 수 있다.
이번에 지급하는 민생지원금은, 정확히 말하면 정부지출(G)을 증가시키는 방식은 아니다. 이전지출은 정부지출의 개념에 포함되지 않기 때문이다. 대신 이러한 현금성 지출은 소비(C)함수에 가처분소득(Yd)의 구성요소인 이전소득을 증가시키는 방식으로 작동한다. 가처분소득이 증가하면 소비가 증가하므로, 승수효과를 통해 경기 부양을 꾀하려는 것으로 보인다.
케인즈의 경제학이 정답이라고 말할 수는 없다. 국가는 경제 개입에 신중해야 하며, 정부 개입의 실효성과 정당성에 대해서 끊임없는 논쟁이 이루어지고 있기 때문이다. 국가가 경제 개입을 최소화해야 한다는 사실에 대해서는 다음의 글을 참고하기 바란다.
또한, 이재명 정부 경제 정책의 방식에 대한 비판 역시 존재한다. 직접 지급하는 것보다는 정부가 직접 소비(G)를 늘리는 것이 더 낫다는 주장이나, 지원금이 고소득층에게도 돌아가면 MPC가 낮아 승수효과가 작아진다는 지적 등이다.
그러나 이런 경제학적 논의는, 이미 거시경제학의 후 이론을 깊이 연구하고, 우리나라의 실증적인 데이터를 수집하고, 오랜 기간 고민을 거듭한 상태에서 할 수 있는 것이지, 개인 차원에서 승수효과를 간단히 설명하는 유튜브 영상 몇 편이나 커뮤니티의 글 몇 개를 읽고 할 수 있는 수준의 것이 아니다.
이 글 역시 마찬가지다. 최대한 자세히, 정확히 설명하려고 노력하였지만, 얽히고 섥힌 경제학의 개념을 이해하기 쉽도록 단순화시켜 짧은 글로 설명하려다보면, 그 내용을 온전히 담아내는 것은 불가능에 가깝다.
경제 정책의 효과는 즉각적으로 나타나지 않는다. 모든 정책의 효과는 시차를 동반하기 때문에, 그 성과를 판단하려면 충분한 시간이 필요하고, 꾸준한 분석과 평가가 필요하다.
이재명 정부의 민생지원금이 침체된 경기에 활력을 불어넣는 씨앗이 될지, 물가 상승의 주범이 될 지는 아직 아무도 알지 못한다. 이재명 정부의 선택이 성공으로 이어질 지는, 곧 시간의 흐름과 현실의 데이터가 말해줄 것이다.
<참고자료>
Macroeconomics-N. Gregory Mankiw