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 사회를 설명하는 몇 가지 중요한 키워드가 있다. 그 중에서도 '팬덤 현상'이 유독 최근 들어 도드라져 보인다. 팬덤은 같은 관심사와 애착 대상을 공유하고 그를 중심으로 결집하는 사회 속 사회로서, 집단 내 독자적인 규칙과 세계관을 가지고 있기에 이를 새로운 형태의 부족 사회로 이해하는 사람들도 존재한다. 이런 팬덤 현상은 정치인의 엔터테이너화 혹은 팬덤 정치라는 말에서도 볼 수 있듯이 단순히 대중문화에 국한되지 않고 정치 등 사회 일반에서 빈번히 관찰되고 있다. 우리 사회도 그런 팬덤적인 현상을 처음에는 '빠순이' 같은 멸칭을 통해 유별난 것으로 받아들이다가 점차 삼촌팬, 키덜트, 문빠 같은 단어들, 심지어 '덕후가 되어라'라는 자기계발적 메시지를 통해 이해하기 시작했다. 최근에는 독서모임 스타트업 '트레바리'를 필두로 로컬, 취향, 네트워킹 등의 키워드를 중심으로 새로운 공동체가 유행을 타고 있기도 하다.
이런 변화의 기저에 어떤 공통적인 의식이 깔려 있는 것으로 보인다. <동물화하는 포스트모던>의 저자 아즈마 히로키는 이러한 팬덤 현상의 확산이 많은 의미를 내포하는 것으로 보고 있다. 그는 이 책에서 60년대 부터 지금에 이르기까지 일본 사회 속 오타쿠 현상을 쭉 훑어온다. 그리곤 오늘날을 살아가는 사람들의 의식구조를 장 보드리야르의 '시뮬라크르론'을 확장시킨 '데이터베이스론'으로 설명한다. 그 변화의 배경으로 근대적 정신을 지탱하던 시대정신의 붕괴, 즉 '거대서사의 조락(리오타르)'을 지목하는데 말이 너무 어렵다. 그냥 쉽게 설명하자면 "오오 우리 국가와 민족을 위하여 오오" 이런게 코웃음 거리로 전락해 버렸다는 뜻이다.
이 코웃음은 과연 무슨 의미인가. 유발 하라리는 <사피엔스>에서 국가-민족-신화-기업 등 허구적 실체들의 배후에 있는 거대서사, 즉 상상적 질서들을 중심으로 인간들이 협력하고 그로 인해 사회가 만들어진다고 봤다. 그런데 그 질서가 약화된다면('거대서사의 조락') 사회 역시 결집을 위한 공통의 지점을 상실하고 이리저리 찢기고 흩어질 것은 자명한 사실이다. 아즈마 히로키는 오타쿠들이 이에 대응해 취향과 관심사를 중심으로 현실과는 동떨어졌지만 나름 대안적인 질서를 창안한 것이라고 말한다. 예컨대 BTS가 그렇다. 이들은 기획사가 제공하는 1차적인 캐릭터 설정에서 그치지 않고 2차창작물을 통해 세계관을 스스로 확장한다. 그리고 그 속에서 국경을 초월해 서로 소통하며 새로운 사회를 형성한다.
종합하자면 오타쿠 문화의 등장은 '삶이란 무엇이며 어떤 운명을 타고 난 존재인가' 같은 질문에 답을 주고 우리의 실존에 좌표를 부여하던 질서의 붕괴 이후 새로운 질서를 보여주는 한 단면이라는 것이다. 그리고 이 새로운 질서는 우리 시대를 살아가는 사람들의 마음을 어떻게 구성(김홍중)하게 될까? 그러니까 포스트모던 시대에 인간성은 어떻게 될 것인가가 <동물화하는 포스트모던>을 관통하는 중요한 주제의식이라고 할 수 있겠다. 물론 이 책의 상당한 분량을 포스트모던 시대의 콘텐츠가 어떻게 생산되는지에 대한 원리를 설명하는데 할애하고 있는 만큼 이에 대해 얘기해볼 수도 있겠지만 나는 '동물화'라는 키워드에 좀 더 초점을 맞춰보고 싶다.
1. 아즈마 히로키는 포스트모던 시대의 시대정신이 '동물화'이며 이를 마치 동물처럼 타자 없이도 욕망을 자족할 수 있는 인간들의 등장, 즉 사회적 퇴행의 증거로 받아들이고 있다. 과연 팬덤 문화의 부상의 동물적 측면은 이러한 퇴행의 전조로 받아들여질 수 있을까?
2. 동물화하는 포스트모던의 인간들은 과연 근대의 대표적인 사상, 예컨대 공화주의나 민주주의 등의 질서를 학습하며 사회적인 주체로 성장할 수 있을 것인가?
3. '연애'란 근대적인 개념이다. "우리는 연애를 원하지 않는다. 우리가 원하는 건 섹스도 하는 친구 사이, 넷플릭스 보며 노는 사이, 데이팅앱의 누드이다. 우리는 실제로 연애를 하지 않으며 연애라는 환상을 줄 수 있는 것들을 원한다. 우리는 보상은 전부 원하면서 위험은 아무것도 원하지 않는다. 배당은 원하되 비용은 원하지 않는다. 우리는 연결을 원하지만, 많이 원하지는 않는다. 헌신하고 싶지만, 조금만 헌신하려 한다. 우리는 느긋하게 진전 상황을 봐 가며 섣불리 연애다 아니다 말하지 않고 그냥 만난다. 우리는 한 쪽 발은 문 밖에 두고, 한 눈은 뜬 채로 어느 정도 거리를 둔다. 남들의 감정을 가지고 장난을 치지만, 우리가 사실 장난치고 있는 대상은 우리 자신의 감정이다." 같은 말들은 이러한 근대적 연애의 기능 부전의 한 증상이다. 동물화하는 포스트모던의 인간들에게 연애란 무슨 의미일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