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생못미 Dec 25. 2018

매드클라운 보다 더욱 매드클라운인 마미손에 대한 이야기

소울컴퍼니, 더콰이엇, 성장, 소년점프, 매드클라운, 마미손의 성장 서사

음... 어린 날에는 어린 날의 이야기를, 젊은 날에는 젊은 날의 이야기를 하게 된다. 어느 정도의 시차는 있겠지. 어른이 되어서도 아이 같은 이야기를 할 수 있고, 아이가 어른 같은 이야기를 할 수 있고. 어쨌든 일반적으로는 맞게 따라간다. 누구든 자기가 처한 환경과 위치가 바뀌면 거기에 맞게 사고방식도 바뀌곤 하니까.


소울컴퍼니는 '음악적 방향' 등을 이유로 해체됐다. 당시 더콰이엇의 화두는 젊은 날의 이야기를 끝내고 무엇을 말할까에 대한 것이었다. 그의 선택은 머니스웩이었다. 그러니까 앞에 던졌던 이야기를 이어받자면 그것은 불가피한... 수순대로 가야하는 흐름이었다는 뜻이다. 아티스트는 나이를 먹고 성장하고, 팬 또한 그렇게. 언제까지고 같은 모습을 유지하고 같은 이야기를 반복하는건 피터팬 컴플렉스에 다름 아니라는 인식이 있었을 것이다.


소울컴퍼니의 해체는 당시는 대단히 충격적이었지만 이제 와서 돌아보면 이해가 가는 일이기도 하다. P&Q가 '상자속 젊음'을, 키비가 '고3후기', '스물하나'를 부르고, 제리케이가 '영장을 받아든'에 이어 '예비역' 같은 노래들을 부르는 변화를 겪을 때 아티스트도, 팬도 자기가 의식하지 못하는 사이에 나이를 먹어가고 있었다. 소울컴퍼니라는 좁고 닫힌 틀 속에서 하는 이야기가 어색하게 느껴질 때, 그런 변화를 민감하게 한발 앞서 내다보고, 실행에까지 옮긴 것이 더콰이엇의 대단함이라고 정리할 수 있겠다. 그러나 이건 벌써 2010년대 초반의 이야기다.



그리고 2018년 우리는 소울컴퍼니의 또 한 명의 계승자를 만난다. 매드클라운이다. 귀찮으니 매드클라운은 마미손이 아니라 길이라는 둥 귀찮은 유머를 강제하는 일 같은 건 접어두자. 매드클라운 조동림은 마미손이다. 여하간 계속 생각하는 거지만 매드클라운과 마미손은 재밌는 캐릭터다. 매드클라운에게는 업계 용어로 '갭모에' 비슷한 속성이 있다. 매드클라운이라는 이름을 직역하면 '미친 광대'다. 지금 생각하면 조금 오그라들지만 2006년 그가 더콰이엇 앨범에서 피쳐링으로 처음으로 대중에게 이름을 알릴 때 쯤의 한국힙합의 공기를 생각해보면... 딱히 대단히 이상한 이름까지는 아니다.


오히려 그의 이름에선 전복(Clown)적이며 패기로운(Mad) 랩을 하겠다는 나름의 다짐 같은 분위기를 읽을 수 있는데... 그 이름에 걸맞게 'Mad Clown'이나 '이빨' 같은 곡에서 날카롭게 각을 세운 미성으로 자신의 존재감을 장르 팬들의 고막에 새겨넣는데 성공하게 된다. 한편으로 그는 대단히 갬성적인 인간이기도 한데, DC와 함께 한 '새벽에 쓴 일기'나, 'Luv Sickness', [Anything Goes] EP에서 보여준 곡들의 분위기가 그의 캐릭터 다른 한 축을 담당하고 있다고 할 수 있겠다.


그에게 커다란 변곡점이 찾아오는데 그는 <쇼미더머니3> 이후 '착해 빠졌어' 등의 활동으로 대성공을 거둔다. 하지만 뜻밖에도 그의 이러한 캐릭터와 내면은 인기와 금전적 성공이라는 환경 변화에 의해 파산하고 만다. 세상에 이제는 돈도 많고 인기도 많아졌기에 '매드'한 '클라운'은 이제 스스로가 더 이상 '매드'하지도 않고 '클라운' 같지도 않기 때문이다. 입고 있던 옷에 비해 그의 몸은 훌쩍 커버렸다. 이제 단절의 시간이 왔다.



여기서 그는 영리하게도 '소년점프'와 '복면'의 '마미손'이라는 새로운 캐릭터를 들고 온다. 재밌는 점은 소울컴퍼니가 소년만화 같은 이야기를 하고 있었다고 친다면, '소년점프'는 일종의 퇴행이라는 점이다. 끝나버린 소년의 시대 속에서 '클리셰' 뿐일지라도 새로운 서사 속에 자신을 의탁하는 쪽을 선택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것이 진짜 퇴행이 아니라 퇴행의 미학을 산출할 수 있는 이유는 그것이 컨셉이며 사실은 '매드클라운'인 조동림 자신이 '마미손'이라는 또 하나의 제대로 '클라운'스러운 컨셉으로 완벽히 지배하고 있다는 자의식이 메타적으로 존재하기 때문이다. 그러니까 '마미손'은 과거에 조동림이 실패했던 '매드클라운'보다 정확하게 '매드''클라운'이라는 것이다. 먼 길 돌아온 제자리 같은 느낌이라고나 할까?


여기에서 키비와의 차이점을 짚어두고 간다면 좋을 거 같은데, 사실 조금 조심스럽다. 이루펀트로는 1집 [Eluphant Bakery]이후, 개인 앨범으로는 3집 [The Passage] 이후 키비를 잘 듣지 않았어서... 여하간 '마미손'은 자신의 소년성을 컨셉으로서 차용하고 있지만, 키비는 여전히 그러한 소년성의 속박으로부터 자유롭지 못한 것처럼 보이기 때문이다. 내가 더 이상 그의 음악에 대해 궁금해 하지 않고 가끔 그러한 분위기가 그리울 때 과거의 음악을 찾아듣게 되는 이유일지도 모르겠다.

매거진의 이전글 재지팩트의 '하루종일'은 너무나도 가슴 아픈 노래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