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오지은 Dec 17. 2023

방탈출을 한다고? 요즘애들은 안 나간다던데..

사회로 나가기 위한 가이드가 있다면


방탈출을 한다고? 요즘 애들은 방밖을 안 나간다던데?



“방탈출? 그래, 어디든 나가라. 요즘 애들은 방을 나가질 않잖아. 방을 안 나가고 집에만 있는 애들이 엄청 많다더라.”



동생과 가끔 방탈출을 즐긴다는 말에 엄마가 한 말이다. 우리 모친은 잘 모르는 것도 잘 아는 것처럼 말하는 능력이 있다. 다 자신만의 필터로 해석하는 일명 ‘깔때기’식 해석이다. 엄마는 우리가 ‘방탈출’ 게임을 하러 나간다는 것을 이해하지 못했다. 방탈출 게임은 돈을 내고 특정 테마에 갇힌 다음에 문제를 풀어 나가는 게임임을 설명해 드렸다. 설명을 하고 나서 다음에 같이 가자고 말씀드렸지만 재미없고 답답할 것 같다고 손사래를 치셨다. 엄마는 어제 뉴스에서 “방을 나오지 못하는, 고립 은둔 청년이 54만 명이다.”는 내용을 봤다고 한다. 뉴스 속 표현처럼 엄마는 우리가 밖이나 사회로 나간다는 말을 방탈출이라고 표현했다고 오해하신 것 같다. 다른 표현이기는 하지만 집에 있는 방을 탈출해야 방탈출 카페를 갈 수 있기는 하다. 엄마만의 깔때기식 해석 덕분에 13년의 여름이 떠올랐다.



2013년 여름이었다. 몸은 물먹은 듯 더위에 축축 쳐졌고, 기분은 우울했다. “귀하의 역량은 훌륭하나 이번에는 모시지 못하게 되었습니다.” 모니터에 뜬 그 문구는 너무 지겨웠다. 도대체 몇 번의 불합격인지 몰랐다. 그 해 졸업을 하고 구직 중이었으나 취업은 어려웠다. 처음에는 대기업 위주로 이력서를 냈다. 대기업은 이력서를 내는 데에도 자격이 필요했다. 그 자격은 토익스피킹 점수나, 자격증 같은 것이었다. 회사를 가기 위해서 이력서를 내고, 그 이력서를 내기 위해 자격을 만들어야 했다. 힘겹게 자격을 만들어 이력서를 내도 떨어지기 일쑤였다. 점점 눈이 낮아지는 느낌이 들었다. 은근슬쩍 중견기업이나 중소기업에도 이력서를 내기 시작했다. 4학년까지만 해도 아르바이트도 하고, 스펙을 쌓기 위해서 열심히 노력도 했다. 공모전도 도전하며 수상을 했고 다른 자격들도 취득하기 위해 노력했다. 알바와 공부가 병행된 삶이었다. 하지만 취직은 쉽지 않았다.



취직이 쉽게 되지 않자. 방에 틀어박혔다. 누워서 혼자 하루 종일 티비를 보기도 했다. 밤낮이 바뀐 생활을 하기도 했다. 게임에 빠져서 며칠 동안 게임만 하기도 했다. 지금 직장인으로서 그런 하루를 보내면 자유로울 것 같지만 그때는 전혀 행복하지 않았다. 누워서 퍼질러 있다가도 부모님이 퇴근하는 시간이면 벌떡 일어나 부모님의 눈에 띄지 않으려 방 안으로 숨었다. 침대와 한 몸이 되었지만, 몸은 개운하지 않았다. 오히려 바닥으로 푹푹 꺼지는 느낌이었다. 그때는 그렇게 방 안에서 탈출하는 게 힘들었다. 



그러다가 취업이 되었고, 이후 계속 직장인의 삶을 살고 있다. 나도 방을 탈출하지 못하는 시기가 있었고, 이후 4년 터울의 내 남동생도 취업난을 겪었다. 부모님이 보기에는 우리의 그런 시간이 참 무기력해 보였을 거다. 하지만 그건 도대체 어떻게 해야 방을 탈출하는지 알 수 없기 때문이다. 방탈출 문제처럼 답이 정확히 정해져 있으면 좋겠지만, 뭘 해야 하는지 모르기에 오히려 무기력한 시간을 보내게 된다.



세상으로 나가기 위한 가이드가 있다면


방탈출에 입장했을 때 어떤 문제를 풀어야 할지 모르는 경우가 있다. 테마에 입장하기 위해 눈을 감고, 방에 도착 한 뒤 10초를 세고 처음 눈을 떴을 때 첫 문제가 무엇인지 찾는다. 이때 어떤 문제를 풀어야 하는지 단박에 알아차리는 경우가 있다. 아니면 모르는 경우가 있다. 친절한 테마는 예를 들어 힌트코드가 0001로 되어있고 순차적으로 번호가 되어있어 번호순으로 문제를 풀며 순서를 알 수 있는 경우가 있다. 아니면 간단한 그림표기나 숫자 표기를 통해 풀어야 하는 문제를 짚어주는 경우도 있다. 반면 이렇게 진행하는 순서를 알려주지 않아서 알기가 어려운 경우 가이드가 부족하다고 한다. 가이드가 부족하면 도저히 무슨 문제부터 풀어야 할지 막막하다. 


그런 경우, 주변을 둘러보는 게 가장 좋다. 바로 위에 있던 어떤 장치를 먼저 눌러야 될 수 도 있다. 아니면 나 자신을 되돌아봐야 할 수도 있다. 처음 방에 들어왔을 때 직원이 준 티켓 하나가 알고 보니 문제일 수도 있다. 내내 손에 꼭 쥐고 다녔어도 그때만큼은 문제라는 걸 눈치채지 못하기도 한다. 가이드가 부족할 때는 주변과 나 자신을 둘러봐야 한다. 그러면 아직 풀지는 못했더라도, 우선 문제가 무엇인지는 알 수 있다. 문제를 발견해 낼 수 있다. 아직 사회로 나가지 못했던 시절, 나에 대해 참 많이 생각했다. 제도적인 가이드가 있다면 참 좋겠지만 이전에 자기 자신을 돌이켜봤다. 나는 누구인지, 어디로 가야 할지, 어떻게 해야 할지를 많이 생각했다. 그게 꼭 취업으로 이어진 건 아니겠지만, 가이드가 부족할수록 인생에서도 주변을 둘러볼 필요가 있다. 

*가이드: 방탈출 내에서 어떤 문제를 풀어야 하는지 알려주는 것이나, 어떻게 진행하는지 이끌어주는 방식을 말한다. 


사회적으로도 니트족이 증가하고 있다. 고립, 은둔되어 있는 청년이 국내 54만 명 이상으로 추정된다고 한다. 정부에서는 근무조건을 개선하고, 일자리도 창출하려고 한다. 정말로 방을 탈출하지 못하는 친구들이 늘고 있다. 이는 갑작스레 다가온 2020년의 코로나와도 겹쳐서 더 큰 문제로 이어지고 있다. 방탈출 문제처럼 가이드나 힌트가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가이드가 부족한 방탈출을 갈 때의 팁은 전후좌우 위아래를 둘러보는 것이다. 아니면 나 자신을 돌이켜 볼 수도 있다. 방탈출처럼 문제를 먼저 발견해 보고, 찾았으면 힘을 내어 풀어보자. 


“여하튼 방탈출이든 뭐든지 간에 나가서 뭐라도 하는 건 좋은 거야.”


엄마의 제멋대로의 해석처럼, 방 안에서든 방 밖에서든 나를 위한 가이드를 뭐라도 찾아보자. 구직난에 어려운 시기이지만 문제는 있고, 문제를 풀어서 방을 나갈 수 있는 힘. 그 힘이 우리 내면에 단단하게 있을 것을 믿는다.

매거진의 이전글 인간 관계 고민도 탈출하기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