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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오지은 Sep 22. 2024

재미있는 게 하나도 없다는 친구에게

취향이 생기면 절로 재미가 든다

재미있는 게 하나도 없어요


“요즘 재미있는 게 뭐야?”

“요즘 재미있는 게 딱히 없어.”


친구의 말을 듣고 생각에 빠졌다. 나는 재미있는 게 없던 적이 한 번도 없는데, 하다 못해 어제 만화방에 가서 추리 만화를 보는 것도 너무 즐거웠다. 재미있는 건 너무나 많고, 주말은 짧은 게 고민이다. 친구는 내가 보기엔 수많은 취미를 가졌다. 나보다 먼저 블로그 활동을 했다. 이전에는 레슬링에 빠져 있었다. 게임을 하는 것도 좋아했다. 하지만 요즘은 게임도 재미가 없다고 했다. 최근에는 경마장에 갔더니 재미가 있었고 야구장에 가니 보는 맛이 있다고 했다. 하지만 그 또한 본인을 충족하는 재미는 아니라고 했다. 좋아하는 게 뭔지, 재미있는 게 뭔지에 대한 질문에는 “재미있는 게 없다.”라고 말했다. 이전에 대화를 할 때 그 친구는 재미있게 살고 싶은 게 자신의 가치관이라고 했었다. 하지만 재미를 느끼지 못하고 있었다. 이야기를 하며, 밥을 먹다 딱딱한 부분을 씹은 것처럼 텁텁해졌다. 재미없는 일상을 살고 있는 친구가 안타까웠다. 퍽퍽해진 밥에 물 한 스푼을 넣듯이 친구의 삶을 덜 딱딱하게 만들어주고 싶었다. 어떻게 하면 그가 재미를 찾을 수 있을까?

 



왜 재미가 없을까?



 우선 정말 바빠서 재미있는 활동을 못할 수 있다. 여기서 재미있는 활동은 취미 활동으로 규정짓겠다. 바빠서 취미 활동을 못하는 사람일 수도 있다. 아니면 괴로운 일이 일상을 지배하고 있을지도 모른다. 고민이나 고뇌가 커서 일상적인 취미나, 사람을 만나는 사교활동을 못할 수 있다. 그렇다면 이 점은 내가 해결하기가 어렵다. 어서 고뇌에서 벗어나시길...(우선 내 친구는 아닌 것 같다.) 두 번째로는 재미에 대한 만족도가 나보다 높을 수 있다. 나는 굉장히 작은 것에 쉽게 감흥을 받는다. 잘 웃고 잘 운다. 재미의 기준이 나보다 더 까다롭기 때문에 재미있는 게 없을 수 있다. 마지막으로는 재미에 대해 생각해보지 않았을 수 있다. 여러 가지 활동을 하지만 그럼에도 본인이 무엇에 재미를 느끼는지 별다른 생각이 없었을 수 있다. 재미의 기준점이 높거나, 재미에 대해 생각이 없어서 이 두 가지를 어떻게 해결할 수 있을까?




덕통사고를 기대하기보다는


열정적으로 취미활동을 한다는 건 무엇일까. 내가 좋아하는 책인 삽질정신에서 한 구절을 가져와 봤다. 열정이란 아래 뜻을 갖고 있다. 열렬한 애정을 가지고 있고, 열중하는 마음이다. 그러려면 열정은 그것에 대해서 자동으로 생각 ‘나’ 기도 하지만, 자나 깨나 의지적으로 생각 ‘하’는 것이다.


진정 어떠한 일에 열정을 지니고 있다면 ‘열렬한 애정’과 ‘열중하는 마음’ 이 전제되어야 할 것이다. 열렬한 애정은 자나 깨나 그것에 대해 자동으로 생각 ‘나’는 것이고, 열중하는 마음은 그것에 대해 자나 깨나 의지적으로 생각 ‘하’는 것이다.
<삽질정신> 中 



덕후들은 ‘덕통사고’라는 말을 쓴다. 누군가에게 반했을 때 교통사고가 나듯이 갑자기 좋아지는 말을 일컫는다. 물론 덕통사고는 필요하다. 어떤 취미 활동을 했을 때 너무 즐거워서 자동으로 생각 ‘나’ 게 되긴 해야 한다. 그건 지금껏 쌓아온 내 성격과 성향에 기반해서 일어나는 일이다. 하지만 이 낯선 빠져듬이 취미로 이어지려면 의지적으로 내 힘을 들여 생각해야 한다. 


나는 방탈출이라는 취미를 가지고 있다. 내가 방탈출을 좋아하면 왜 좋아하는지 생각해 보고, 요즘 무슨 테마가 있는지 알아보고, 그것에 대해서 글도 써보고 왜 좋아하는지를 파악해 가는 것이 덕질의 원천이 된다. 그 과정에서 덕질은 넓어지고 깊어진다. 덕질을 통해 나는 나 자신을 알아가게 된다. 나는 여러 테마 중에서 스토리가 뛰어난 테마를 좋아하고, 감성 테마를 좋아한다. 문제를 푸는 것도 즐거워하지만 낯선 연출에 속수무책 당했을 때 아찔한 즐거움을 느꼈다. 이렇게 내가 왜 좋아하는지 알아가는 과정에서 자신을 더 잘 알게 되었다. 리뷰를 쓰고 글을 쓰게 되었다. 그러다 보니 방탈출과 관련된 책을 내게 되었다. 물론 꼭 글을 쓰지 않아도 된다. 그림을 잘 그리는 친구는 그림으로 방탈출 후기를 남긴다. 진정 좋아하는 것을 콘텐츠로 만들 때는 다른 일을 할 때보다 어깨 힘을 빼고 해 볼 수 있기도 하다. 좋아하는 것을 입증하는 행위를 하다 보면 내 마음을 담을 수밖에 없다.    




취미가 취향이 된다면


좋아하고, 생각하고, 표현하고 이것을 반복하다 보면 취미는 취미를 넘어 취향이 된다. 방탈출에서 느낀 나의 취향은 다른 일을 할 때도 능력치나, 성격으로 발현된다. 문제에 집착하는 성향은 일을 할 때도 드러난다. 인생은 일평생 내가 누구인지 알아가는 과정이라고 한다. 취미가 취향이 되면, 나 자신의 일부는 윤곽이 그려진다. 사람들이 ‘너 이런 거 좋아할 줄 알았어’ 또는 ‘너 이거 진짜 좋아하겠다.’라는 말을 듣는다면 사람들도 나의 취향을 짐작하고 있는 것이다. 그리고 그러다 보면 신기하게도 시크한 태도는 사라진다. 내가 내 취향에 대해서 알게 된다면, 취향에 맞는 활동만 골라서 하게 된다. "요즘 뭐가 핫하다더라"에 지나치게 휘둘리지 않게 된다. 내가 좋아하는 것은 명확하기에, 그 핫한 것이 나와 맞는 것인지가 더 중요하기 때문이다. 내가 좋아하는 것을 알고 있다면 그 취향과 어울리는 취미활동들은 더 쉽게 찾을 수 있게 된다. 힘들게 찾아내서 보물같이 발견한 취향인데, 내 입맛에 맞는 곳들을 가게 된다. 그러다 보면 시크한 태도는 날이 갈리고 점점 뭉뚝해진다.


취향이 생기게 되면 절로 재미가 든다. 재미의 뜻은 이렇다. 


1. 아기자기하게 즐거운 기분이나 느낌. 

2. 안부를 붇는 인사말에서, 어떤 일이나 생활의 형편을 이르는 말. 

3. 좋은 성과나 보람. 


재미는 막연히 즐거운 느낌만을 갖고 있는 단어가 아니었다. 그 속에는 보람이나, 성과에 대한 뜻도 포함되어 있었다. 결국 재미와 취미는 주어지는 게 아니다. 의지적으로 집중해 좋아하려고 노력해야 하는 것이다. 그러다 보면 취향으로 발전한다. 취향과 함께 재미가 온다. 


재미가 하나도 없다는 내 친구에게 나는 취미가 너를 선택해 주도록 기다리지 말고, 네가 갖고 있는 취미를 적극적으로 너의 취향으로 만들라고 말하고 싶다. 그리고 그것은 살짝 맛보다가 그만두는 것에서는 찾을 수 없는 즐거움이다. 그러다 보면 덕질이 언젠가 나를 구원해 주는 날도 오리라. 아기자기한 즐거움을 넘어 진정한 좋은 성과나 보람을 느끼는 또 다른 뜻의 재미를 만날 수도 있을 것이다. 배달의민족 마케터였던 김상민 님은 페스티벌, 음악 축제를 방문하는 취미가 있었다. 그분은 그 취미를 살려 배달의민족에서도 페스티벌을 성공적으로 주최할 수 있었다. 그의 사례처럼 덕질이 먹고사니즘에 관여하는 때도 올 것이다. 취미와 취향이 나를 선택해 주는 화답으로 이어진다. 물론 그러려면 내가 먼저 좋아해야 한다. 그 순간이 오면 진정한 ‘성덕’으로 거듭나리라. 일단 여러 가지 취미가 있지만, 요즘의 삶은 재미가 없는 내 친구가 재미있는 취미를 찾았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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