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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미스터Lee Jun 03. 2020

체코 이효리 체코 이상순

안녕 나의, 우리의 체스키크롬로프_ #19

  체코 체스키크롬로프의 바쁘지만, 여유는 남아있는 삶이 이어져오던 어느 날, TV에서 [효리네 민박]이란 프로그램이 시작했다. 제주도에 사는 이상순/이효리 부부네 집을 민박으로 한시적 운영하는 것이 주제였다. 민박 위치가 한적한 곳이라는 것과 두 부부가 나누는 대화가, TV를 통해 보는 것이 전부는 아니겠지만, 우리와 비슷하다는 느낌을 받았다. 다녀가는 여행자들도 우리 부부를 보며 '효리네'와 닮았다는 얘기를 많이 해주셨다. 흘러가는 대로 잔잔히 꾸며지는 일상, 그리고 숙박업을 하는 이들이라면 공감할 포인트들. 이런저런 대화를 많이 나누는 편이었던 우리 펜션과 비교하며 둘이 키득키득 웃기도 하고 흐뭇한 미소를 짓기도 했다.

  해당 프로그램이 방영될 시기에 우리와 함께 시간을 보냈던 스텝 해원이. 공교롭게 어쩜 아이유랑 성격이 이리도 닮았을까 싶었다. 스텝이 올 때면 대학원 시절 공부했던 에니어그램이란 도구로 성향을 확인했다. 그리고 우리의 성향도 스텝에게 알려주며 서로 오해를 줄이려 노력했다. 이곳에서 조금이라도 더 행복한 시간을 만들어 가길 바라는 맘이었다. 해원이는 펜션에 여행으로 왔다가 스텝을 하게 됐다. 말수는 없지만 깊음이 있고 자기 확신이 가득 찬 아이, 다행히 랑금과도 잘 지냈다. 만화와 영화 보는 게 취미인 나와도 취향이 잘 맞아 이런저런 이야기를 주제로 많은 대화도 했고, 혼자서도 잘 지내는 조용하지만 씩씩한 친구였다. '효리네 민박'에 나온 아이유는 이효리와 함께 차를 타고 가다, 정확히 기억은 안 나지만, 이런 식의 이야기를 한 적이 있다.


  "너무 즐거워도 기분이 좋지 않고 너무 슬퍼도 기분이 좋지 않아요. 그냥 평온한 게(아무 감정도 느끼지 않는 게) 좋아요."


  움직임도 어슬렁 어슬렁거리는 게 해원이와 똑 닮았다. 평상시에 무표정의 뚱해 보이는 표정도. 아이유가 했던 이야기가 어떤 것을 가리키는지 알았다. 혼자만의, 자유가 확보된 공간을 사랑하는 이라면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가끔 랑금이 투어를 갈 때면 돌아올 때까지 잘 다녀오길 바라는 불안함 마음 뒤로 혼자, 아무런 자극 없이, 집에 있는 그 순간이 행복할 때가 있었다. 신경 쓸게 아무것도 없는 그 순간은 오롯이 내 것이라는 기분이었다. 펜션에 들르는 여행자들과 다음과 같은 주제로 대화를 나눈 적이 더러 있었다.

  "지금 기분이 어때요?"

  "좋죠, 기분 좋아요."

  "다행이에요. 어떤 이들은 이 질문에 '글쎄요'라고 하거든요."

  "그런 사람들도 있어요? 신기해요."

  "그렇죠, 기분이 좋은 상황에서 '좋다' 느낄 수 있는 건 대단한 거예요. 삶 속에서 내 기분을 오롯이 느낄 시간은 많지 않잖아요. 와중에 내 기분을 잘 찾아내는 건 정말 대단한 거예요. 그래서 많은 사람들에게 '일상의 감정'을 느끼라고 해요."

  "'일상의 감정'? 그게 뭐예요?"

  "혼자 있을 때, 아무것도 나를 자극하지 않는 순간 내가 어떤 표정을 짓고 있는지, 어떤 기분인지, 또 그 순간이 언제인지를 알아가는 거예요. 대부분의 사람들은 이럴 때 아무 감정을 느끼지 않을 거예요. 어느 스님이 말씀하셨듯 지극히 평온한, 산을 산으로 받아들이고 물을 물로 받아들이는 그런 감정이요."

  '효리네 민박'에서는 어떤 자극적인, 특별함이 많이 드러나지 않았다. 우리 주변에 있을 법한 일상의 이야기를 이효리와 이상순을 통해 세상에 표현했다. 물론 저 두 사람이 가진 일상의 평온함이 있었기에 가능했다. 여러 색깔의 이야기가 그려지는 커다란 도화지 역할을 해줬다. 여러 색의 여행자들을 만날 때, 또 티격태격 거릴 때 효리네가 어떤 감정을 느꼈을지 상상이 돼 방송에 더욱 몰입되었다. 군데군데 그들의 따뜻함이 잘 묻어났는데 우리를 방문한 이들도 저런 따뜻함을 느꼈길 바랐었다.

  해원이와 헤어지는 날, 속 마음을 잘 내비치지 않는 이 친구는 떠나는 순간까지 덤덤히 발걸음을 옮겼다. 오르막을 올라 길모퉁이를 도는 순간까지 뒤를 한 번도 안 돌아보길래 랑금과 함께 저 친구가 집에 많이 가고 싶었나, 우리가 일을 너무 많이 시켰나, 잘 못해준 게 많았나라는 미안한 맘이 가득했다. 그리고 몇 달이 지났을까. 해원이의 인스타에 올라온 글을 읽고 우리의 생각이 틀렸었음을 깨달았다. 글을 읽는 내내 가슴이 뭉클거리며, 고마움과 따뜻한 맘이 가득 차올랐다. 

"체코에 있을 때 찍은 사진을 보다가 그냥 갑자기 눈물이 났다 마지막날 펜션을 나오면서 미련 생길까봐 한 번도 뒤 안 돌아보고 직진하다가 골목 돌자마자 펑펑 울면서 버스 정류장 도착할 때까지 안 그쳤었는데_ 해원"

  그렇게, 우리부부는 잘 걸어가고 있구나란 생각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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