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쩌다 매거진 - 서비스 기획자 편
심리스한 덕질을 위하여
서비스기획을 업으로 삼고 있다 보니 소위 ‘돈 되는’ 서비스보다 그저 ‘재미있는’ 서비스에 끌린다. 비즈니스모델 같은 건 일단 접어두고 사이드프로젝트로 재미삼아 할 만한 서비스 말이다. 그런 서비스 아이디어는 주로 덕질할 때 떠오르곤 하는데, 오늘 이야기하고자 하는 것도 요즘 빠져 있는 덕질과 관련이 있다.
집에 머무는 시간이 많아진 요즘 새로 시작한 덕질은 바로 ‘3D 레고 조립’이다. 레고는 워낙 고가이고 집 공간이 한정적이다 보니, 늘 마음 한 켠에 있지만 시작은 못해본 예비 취미 같은 거였다. 그러다 우연한 기회에 레고를 가상으로 조립하는 프로그램을 알게 됐는데, 이게 아주 신세계다. 지금껏 세상에 나온 수만가지 부품이 프로그램 속에 다 들어 있어, 노트북만 열면 어디서든 레고를 조립할 수 있다. 요즘 출시되는 부품도 버전 업데이트와 함께 추가되니 목수가 연장 탓을 할 일도 없다. 대략 20년 전 부모님이 공급을 멈춘 뒤부터 우리집 레고 카탈로그는 업데이트를 멈췄는데 말이다.
이 프로그램을 가지고 노는 방식은 이렇다. 먼저 영화를 보다 레고로 옮기면 그럴싸할 특징적인 장면을 포착한다. 건물부터 자동차, 조그마한 소품까지 표현할 수 있는 모든 것은 프로그램을 이용해 레고로 조립한 뒤에, 일러스트레이터를 열어 레고 미니피겨에 입힐 등장인물의 스킨을 그린다. 조립을 마친 레고 구조물과 스킨을 입은 미니피겨는 3D 렌더링 작업을 거쳐 실물 같은 사진으로 거듭난다. 이 과정이 모두 쉽고 재미있기만 하면 좋겠지만, 애석하게도 내 즐거움은 주로 레고 ‘조립’ 단계에 머문다. 디자이너가 아니다 보니 미니피겨를 그리는 일은 지지부진을 면치 못한다. 아, 딱 요것만 누가 대신 해주면 좋겠는데.
그래서 떠올린 게 '레고 미니피겨 만들기' 앱이다. 쉽게 말해 이미지 속 인물의 인상착의를 '레고화' 해주는 앱. 사진을 찍어서 업로드하면 나를 빼닮은 레고 미니피겨가 만들어지는 거다. 실물처럼 렌더링한 사진을 SNS 프사로 걸 수도 있고, 원하면 실제 미니피겨로 만들어 배송 받아볼 수도 있고. 무엇보다 내 취미활동의 능률이 월등히 개선될 테니 기회만 주어지면 당장 만들고픈 서비스다.
한 10년 전에 ’Simpsonzie Me’라는 사이트가 잠시 유행했던 적이 있다. 사진을 올리면 심슨 캐릭터로 바꿔주는 서비스였는데, 나를 그닥 닮지 않아서 결국 이목구비를 하나하나 선택해야 했던 기억이 있다. 표준화된 모양의 미니피겨는 디자인이 심슨에 비해 더 양식화되어 있으니, 사진 속 인물의 특징만 잘 분석할 수 있다면 10년 전 서비스보단 훨씬 고퀄의 결과물을 뽑아낼 수 있지 않을까. 가상 레고 만들기의 즐거움이 조립 단계에 머무는 것처럼 서비스기획도 딱 여기까지, 아이디어를 떠올릴 때까지가 제일 즐겁다.
글쓴이 커리부어스트
서비스 기획 / 3년차
영화와 음악, 컨텐츠와 IP 비즈니스에 관심이 많습니다. 그런데 커머스 서비스를 기획하고 있습니다. 덕업일치를 외치는 세상 속에서 관심이 1도 없던 분야에 어쩌다 기획자로 발을 들이게 된 저의 솔직한 생각들을 나누고 싶습니다.
커리와 소시지를 좋아합니다.
어쩌다 매거진 - 서비스 기획자 편
일곱 명의 서비스 기획자가 모여서 기획 이야기 합니다. 다른 분들의 재밌는 글도 읽어 보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