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외 고환

아기를 낳다.

by 김옥진

미국인 아만다는 거꾸로 자리를 잡은 아기를 자연 출산하기 위해 조산원으로 왔다. 초기 진행은 만족스러웠으나 아기의 엉덩이가 골반으로 반쯤 내려온 후, 출산 진행이 거의 멈춰버렸다.


아기는 병원으로 후송되어 제왕절개로 태어났다.

아기는 건강하게 잘 울었다. 그런데 고환이 눈에 띄게 부풀어 오르는 것이 아닌가! 당혹스럽게도 어떤 처치를 해야 하는지 아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고환은 점점 커져서 큰 토마토만 하게 부풀었다. 성공적으로 수술을 마친 주치의는 정자를 만들게 될 고환에 문제가 생길 수 있다는 것을 설명을 하라고 얼굴을 붉히면서 말했다. 능숙지 못한 영어로 설명을 했으나 그들은 흔쾌히 알았다고 했다. 방금 태어난 아기에게 불임이라니! 설령 성인이 되어 불임이 된들, 지금 상황이 불임을 초래했을 거란 근거를 찾을 수 있을지도 모를 일에 얼굴까지 붉히며 이야기하는 것은 기우라 생각되었다.


연이어 태어나는 다른 아기 때문에 조산원으로 돌아왔는데 결국 아기는 커져버린 고환을 이유로 대학 병원으로 후송되었다는 소식을 들었다. 다른 아기를 받고 일을 마친 시간은 한밤중이었으나 한국말이 통하지 않아 답답해할 산모를 위해 다시 병원을 찾았다. 다시 산부인과로 돌아온 아기는 관찰을 위해 인큐베이터로 들어갔다. 대학병원에서는 커진 고환을 제외하고는 건강하다며 거즈만 잔뜩 붙여 주고는 퇴원하라고 했단다. 심각한 듯 보였으나 잔뜩 붙여놓은 거즈를 보니 왠지 웃음이 나왔다.


둔위 아기들을 많이 받은 경험 있는 선배들에게서 물어보니 둔위 출산을 한 사내 아기들이 종종 저런 증세를 보인다고 했다. 금방 회복되니 걱정 안 해도 된다는 말도 덧붙였다. 정말로 만 하루가 지나니 부풀었던 크기가 반으로 줄어들었다. 이틀이 지나니 거의 정상 크기로 돌아왔다. 문제제기를 하지 않고 아만다는 퇴원을 하였다.


둔위 출산(breech birth)이 자연스러웠던 과거엔 의료진은 가끔 저런 경험을 했다. 하지만 모든 둔위 아기가 제왕절개로 태어나는 지금, 의료진들은 이런 경험을 할 수 없다. 아기를 본 병원 근무자들 모두는 회복되는 고환을 보고서 아연실색들을 했다. 제 자리로 돌아가는 생명력에 나 또한 그들과 같았다.


사실 모든 출산들은 각기 다른 과정을 거친다. 특히 둔위 출산이 보편적이지 않아 조금씩 다른 과정들을 만나면 혼비백산을 하곤 한다. 흔하지 않은 둔위 출산은 언제 어디서나 경이롭다. 산모 스스로가 원한다면 의료진은 최선을 다해 도와야 하며 어떠한 상황에서도 의료진에게 탓을 돌리는 일은 없어야 한다.


2012년 초봄, 캐나다 산모의 출산을 도왔다. 대부분의 외국 여자들처럼 그녀도 매우 활달하고 자연출산에 대한 기대가 엄청났다. 30주쯤 처음 만났을 때 아기는 둔위(breech presentation)로 있었다. 초 긍정의 그녀는 때가 되면 아기는 제 자리(두정위, vertex resentation)로 올 것이라며 확신에 차 있었다.
보통 그 임신주수에 아기들의 머리는 아래를 향하게 된다. 시간이 지나갔지만 아기의 위치는 그대로 변함이 없었다. 출산 계획도 다시 세워야 했다. 과연 거꾸로 앉은 아기를 자연출산(vaginal breech birth)으로 낳을 것인지 제왕절개(cesarean section)로 낳을지 결정해야 했다. 둔위분만을 도운 경험이 있다고 하자 그녀는 반기며 자신도 둔위 아기를 자연출산하고 싶다고 했다.
대부분의 둔위 출산은 양막이 먼저 열리지만 그녀는 출산 진행 도중 양막이 열렸고 아기는 다행히도 제 수순대로 잘 내려왔다. 엉덩이가 보이기 시작하고 태변을 보며 아기의 두 다리가 먼저 밖으로 나왔다. 몇 번의 진통을 하며 아기의 몸통과 양 팔이 나왔고 가장 힘든 머리가 연이어 만출되었다. 용기를 내라며 산모를 응원하는 나도 입술이 바짝 말라 있었다. 의료진 서너 명도 둘러서서 신기한 둔위 출산을 참관을 하였다. 대부분의 둔위 자연출산 아기들이 그런 것처럼 머리가 나오면서 눌려진 탯줄로 인해 아기는 축 늘어져서 태어났다. 여러 명의 의료진들이 있었지만 늘어진 아기를 회생시키는 것은 온전히 나의 몫이었다. 산소를 주고 입에 거즈를 덮고 인공호흡을 했다. 두 다리를 잡고 가슴입박으로 자극을 준 후 다시 인공호흡을 반복했다. 너무나 긴 시간처럼 느껴졌다. 아기는 약하게 울음을 터트렸다. 좀 더 자극을 주니 정상아의 울음을 운다. 그러기까지 채 삼분이 지나지 않았다. 뱃속으로부터 나오는 헛웃음으로 내 몸의 호흡을 조절했다. 되었다! 그만하니 다행이다!
젖도 잘 빨고 피부색도 핑크빛이다. 호흡! 당연히 정상이다. 내가 자랑스러웠다. 모두 두려워하는 둔위 출산을, 그것도 캐나다 산모의 아기를 받아내다니, 나를 쓰담 쓰담했다.

일 년이 지난 어느 날, 그녀로부터 문자가 왔다.
아기의 한 살 생일 파티를 멋지게 했다며 다시 한번 고맙다고 했다. 어디선가 잘 자랐다니 흐뭇했다.
다시 몇 달이 흘렀다. 이번엔 긴 문자가 그녀로부터 와 있었다. 얼마 전부터 아이가 경기(convulsion)를 한다며 지금 검사 중이라고 했다. 둔위 출산을 한 이력을 캐나다 의사에게 이야기를 하니 혹시 태어날 때 문제가 있지 않았냐는 질문을 받았다며 아기가 태어날 때 어땠었냐고 물었다.
아기가 늘어져서 인공호흡은 했지만 금방 회복되었고 더 이상 문제는 없었던 것으로 기억한다고 말해 주었다. 사실 호흡에 문제가 있었더라면 기관삽입(intubation)을 했을 터이고 바로 퇴원도 못했을 거란 이야기도 덧붙였다. 하지만 덜컥 두려움이 몰려왔다. 내게 책임을 전가하면 어떨 할까! 소송을 걸어오면 영어로 된 문서를 어떻게 이해할까! 그 많은 스트레스를 어찌할까!
생기지도 않은 일들을 비약하며 전전긍긍했다.
그 후 캐나다의 유명한 경련(convulsion) 전문의에게 간다는 소식을 받았다. 할 수 있는 일이 없다. 그저 아기가 그만하기를... 얼른 회복되기를 기도하는 수밖에 없었다.
그 일이 잊혀 갈 무렵, 아기에게 선천적으로 염색체 이상이 있었고 그래서 경련이 일어났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원인이 밝혀졌다니 마음이 홀가분해졌다. 둔위 출산을 했다는 이유로 경련을 한 것이 아닌 것이다.

늘 두려움으로 출산을 마주한다. 내 탓이 아님을 아는 순간, 어깨에 얹혀있던 커다란 바위가 내려갔다. 최선을 다했는데, 문제가 없었는데 움츠려 들었던 내 마음이 얇은 종잇장이었던 거다.


그러고 살았다. 아니 살아냈다.

아기의 생명이 '누구의 탓'으로 돌려지는 세상, 품었던 어미는 비련의 주인공이 되고 아기를 받아낸 의료진은 천하의 나쁜 사람으로 되는 세상에서 나는 아기를 받는다. 이제는 안다. 아기가 건강할지, 그렇지 않을지를...

슬그머니 병원으로 가시는 것이 좋다고 운을 띄우곤 하지만 아기를 받아낼 또 다른 의료진에게 미안하다. 여성의 몸은 여성의 것! 생명을 품고 낳는 것은 여성의 권리라고 외쳐댄다. 문제는 원치 않은, 실수로 생긴 생명이 올 때다. 쉽게 병원을 찾아가서 원하는 삶을 살게 되지만 몸은 그 흔적을 지우지 못한다. 정작 아기를 품으려 할 때 상처는 고개를 든다.


출산의 현장에서 보이는 위태위태한 상황의 원인들 중에 대부분을 여성의 탓으로 돌리고 싶지 않다. 한 생명이 세상에 올 때 수많은 이의 도움이 필요하듯 사회가, 나라가, 모두 나서서 상처를 주고받는 일에 경각심을 가져야 한다. 세상에 오는 모든 생명들이 환영받으려면 꼭 그렇게 되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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