웅크림이 펼쳐지기 시작합니다. 담아둔 것을 내어놓으니 가벼워서 좋아요. 어쩔까 하고 망설였던 것들이 길어지는 해와 함께 빛이 납니다. 빛으로, 밝은 빛으로 음침함을 이길 수 있을 것 같습니다. 그렇게 밝아지면 뚜렷이 보이는 것들을 정리하려 합니다. 빛이 입혀지니 내가 생각했던 색이 아닌 것이 놀랍습니다. 상상했던 모양이 아닌 것에 마음이 놓입니다. 밝으니 참 좋습니다.
어두운 이야기로 들렸습니다. 마음이 그랬나 봅니다. 누군가가 들어도 슬프고 고난처럼 보였는데 다른 방향에서 보니 최선을 다한 거였어요. 결과가 어떻던지 최선을 다한다는 것은 희망적입니다. 똑같은 일이 번복될 확률이 낮아지니까요. 스스로가 고난이라 여기지 않으니 고난은 고난이 아니었습니다. 생은 겪어내는 것이고 생각데로 되지 않는다는 지혜를 너무 늦게 알려줍니다.
기형아를 품었습니다. 사실 나이도 많았고 아기를 갖겠다는 생각은 언감생심 할 수도, 하지도 않았습니다. 어느 맑은 날, 아기가 찾아왔습니다. 이 세상을 살면서 해보고 싶었던 일이 생겼습니다. 엄마! 듣기만 해도 가슴이 두근거립니다. 콩알만 하던 아기가 자라는 모습은 참 경이로웠습니다. 나이가 많은 노산 모라서 하라는 검사는 모두 했습니다. 어느 날 4개월 자란 꼬무락대는 그 아기가 기형아라고 했습니다. 기형이 너무 심해서 살지 못한다고 했어요. 그러나 아기가 살아내는 시간을 지켜주고 싶었습니다. 하지만 세상은 태어나서 살지 못하는 아기니까 그냥 버리라고 충고해 주었습니다. 한 술 더 떠서 아기를 끝까지 품고 싶다는 말에 화를 내기도 했습니다. 살지 못한다는 단언을 어찌도 그리 쉽게 이야기할 수 있을까요. 생명이 다하는 시간까지 아기와 함께하고 싶은 마음을 받아주는 곳이 단 한 군데도 없었습니다. 아기와 그런 방법으로 이별하고 싶지 않습니다. 사는 동안 잘 살았다고 생각했습니다. 남에게 못 할 짓 하고 살지 않았습니다. 왜 내게 이런 일이 일어날까 하고 원망도 했더랬습니다. 그리고 혹여라도 일어날 기적도 생각했습니다. 간신히 아기가 태어날 때까지 기다려 주겠다는 곳을 찾았습니다. 그곳이 참 고마웠습니다. 아기를 처음으로 사람이라 여겨 주었고 아직 꼬무락거리는 아기에게 말도 걸어주었습니다. 시간이 남아 있던 어느 날, 장기들이 제 역할을 못해서 제 나이보다 작은 아기는 예정일보다 일찍 이별 소식을 전해왔습니다. 규칙적으로 느끼는 진통은 이별이 다가옴입니다. 밤새 진통을 했습니다. 참기 힘든 진통이 오지만 아기와 이별하는 고통보다 더할까요? 이틀 전엔 쿵쾅거리는 모습이었던 심장은 이미 하루 전에 멈추었던 것 같습니다. 별이 된 아기를 낳았습니다. 아직 온기가 있는 작은 아기를 한참 동안 가슴에 안았습니다. 손가락도 열개, 발가락도 열개, 얼굴은 아빠를 닮아 보입니다. 표정 없이 눈물이 계속 나옵니다. 몸 곳곳을 어루만졌습니다. 젖이 돕니다. 아기는 떠났는데 가슴은 부풀어 오릅디다. 젖을 삭이려고 아기를 보내듯 가슴을 동여맸습니다. 나의 아기는 여덟 달 생을 살았습니다. 일찍 세상을 떠날 것을 알고도 품었던 어미의 마음을 아기는 일고 있겠지요? 그래도 혹여 생명을 부지할 수 있다면 최선을 다하고 싶었습니다. 어떤 일이 생겨도 아기와 함께 할 마음이 있었습니다. 엄마 힘들지 말라고 미리 별이 되었나 봅니다. 강보에 싸인 아기에게 고마웠고 사랑한다고 말했습니다.
다운증후군 양성반응이 나온 다혜는 양수검사를 거절했다. 결과를 보는 이는 아기는 이미 염색체 이상이라 단정하는 듯 보였고 양수검사가 그다음 해결책이라고 했다. 양수검사를 해서 양성이면 유산을 하는 것이 보편적 선택이라고도 했다. 종교나 신념을 떠나 그렇게 하고 싶지 않았다. 다운증후군 아이라도 살리고 싶은 어미의 본능이었을지도 모르겠다. 그렇게, 아이를 낳기로 결정했다.
검사결과지에는 다운증후군 검사의 오류나 판별 번복에 대해서는 아주 작은 글씨로 깨알같이 쓰여 있다. 눈에 들어오지 않았다. 임신 내내 자주 눈물이 나왔다. 부모님께는 비밀로 해 두었다. 나 조차도 아기는 다운증후군 아기라고 여겼었다. 그리고 나를 추켜세웠다. 할 수 있다! 내 아기니까!
불안한 임신기간을 보내다가 예정일을 한 달 남겨두고 출산 장소를 변경했다. 다른 출산 장소보다 따듯하고 다정했다. 이미 다운증후군 아기를 낳아 키우겠다는 결심은 마음을 더 단단하게 해 주었다. 예정일에 맞춰서 진통이 왔다. 잘 견디며 잘 낳았다. 문득문득 두려움도 몰려왔다. 그래도! 그래도! "아기 괜찮나요?" 아기는 꼬물거리며 다리 밑에서 움직인다. 양수도 마르지 않은 아기를 조산사는 이리저리 살핀다. 제일 주 증상인 세 가지 증상이 없다고 했다. 정밀히 검사를 해 봐야 알겠지만 다운증후군이 아닌 것 같다며 아기를 맨가슴에 안겨주었다. 따듯하다! 살아 있다! 힘찬 발길질을 하며 기어오르기까지 한다. 건강하다!
낳기로 결정한 후부터 난 다른 사람이 되었다. 이미 '엄마'가 되었다. 다른 어느 어미 보다 강한 엄마가 되었다. 괜찮다! 내가 엄마다! 엄마는 무슨 일이던 할 수 있다! 남편의 눈에 눈물이 흐른다. 난 어쩐지 눈물이 나지 않는다. 이쁘다 내 새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