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의점을 털었다.

아기를 낳다.

by 김옥진

셋째 아들이 태어나려 저녁부터 신호를 보내왔다. 새벽 한 시, 두 아이들을 데리고 오고 싶다기에 좀 더 서둘러 출발하시라 했다. 어중간한 새벽 두 세시 보다 지금이 한갓지다. 진행이 아직 안되었다면 식구 모두는 그냥 아침까지 자면 된다. 진진통이 걸러버리면 이것저것 챙겨야 할 것들이 많아서 혼비백산할 수 있다. 미리미리 준비하는 것이 경산의 출산 팁이다.
이번도 밤새는 스케줄이다. 새벽 한 시부터 입원하는 경우는 대부분 날밤을 새야 한다. 어쩔까! 어쩌긴 뭘 어째냐! 밤새야지!

학의천 운무가 가로등에 띠를 둘렀다. 웬일인지 오늘따라 길엔 차가 한 대도 없으니 더 스산하다. 가끔, 모두들 잠든 밤에 깨어 있다는 것이 선물 같이 느껴지기도 한다. 라둘라스 어벤저팀이 올 예정이다. 밤새울 고운 사람들을 위해 간간히 먹을 주전부리를 산다. 세계 사람들이 부러워하는 24시간 문을 여는 곳이 많은 한국! 밤새는 일이 허다한 내게도 고마운 24시간 편의점이다. 일 년 사이에 조산원 근처에 cu가 두 군데나 생겼다. 편의점을 본 내 발걸음이 빨라진다.
CU 문 밖에 구이판 안엔 군고구마가 두 개 남았다. 일전에 가족 중 한 사람이 열흘간 입원하면서 사 먹던 cu군고구마 맛은 일품으로 기억된다. 냉큼 누가 싹수 못하게 두 개 모두 집었다. 군고구마를 사면 생수를 주는 이벤트를 한단다. 공짜는 일 원짜리라도 좋다. 날계란 열개도 샀다. 살 안 찌고 요기하기 좋은 삶은 계란, 나도 좋아하는 먹거리다. 삼각김밥도 골고루 맛으로 세 개, 바나나 우유 세 개! 한 보따리다. 조생 귤과 다크 초콜릿은 조산원에 있다. 모두 다 아기를 받아내는 이들의 에너지를 보충해 줄 거다.

얼른 계란부터 삶는다. 미리 따듯하게 해 놓은 출산 방과 거실을 둘러보니 마음이 좋다. 내 맘처럼 좋은 마음 가진 아기가 태어날 거다. 산모네 네 식구는 수원에서, 두 둘라 선생님들은 부천, 안산에서 출발, 모두가 지금 길 위에 있다. 안전하게 올 거다.

자다 깨서 온 두 아들들은 쉽게 잠이 오지 않는다. 작은 것은 부스럭 부스럭 자꾸 진통 오는 어미품을 조른다. 아이들은 결국 삶아놓은 계란과 바나나 한 개씩을 먹은 후 두 시가 넘어서야 곯아떨어졌다. 진통을 느끼는 것에 비해 진행이 더디다. 기대했던 세 네시는 벌써 지나갔다. 나도 이제야 슬슬 졸리다.

산모의 남편은 옆방에서, 아이들은 엄마 옆에서 배를 다 내놓고 굴러다니며 자고 있다.
암막 커튼 가장자리로 새벽 동이 튼다. 뱃속을 채우면 정신이 들것 같아 식은 군고구마를 전자레인지로 따듯하게 했다. 목메지 않게 천천히 삼켰다. 바나나 우유도 다 마셨다. 천천히, 서두르지 말고, 의관을 정제하고 헛기침 한번 한다. 그리고 출산에 필요한 것들을 꺼내 놓았다. 둘라 미정이 산모를 일으켜 세웠다. 아기를 골반 안으로 들어가게 돕는 움직임을 한다. 진찰은 나중에 하고 싶다는 산모의 의견에 아기가 어디까지 내려왔는지 알 길이 없다. 그저 진통의 간격을 재고 산모가 내는 소리로 가늠을 한다. 수더분해 보이던 그녀는 뻣뻣한 몸으로 마음을 보여준다. 왜 이리도 느리게 진행되는지를 알아챘다.
둘라와 함께 산모는 side lying 자세를 16분간 하고 있다. 반대쪽으로 똑같은 자세와 시간이 지나면 산모의 소리가 달라질 거다.

꼭 젖을 먹이고 싶다고 했다. 첫아기의 수유 실패에 지금도 눈물이 흐르고 숨이 막혀 가슴이 답답하다고도 했다. 출산도 출산이지만 모유수유를 성공하도록 도와야 한다.

힘이 들어가는 소리가 서너 번 들렸다. 다 되었다. 출산 방까지는 열 발자국이면 충분한데 못 가겠단다. 아기 머리가 만져진다. 진통이 사라졌을 때 얼른 일으켜 안아 간신히 출산 방에 도착했다. 두 번의 진통으로 아두가 만출되었다. 힘을 계속 빼야 한다. 예상했던 위치가 아닌 쪽으로 고개가 돌아간다. 이상하다. 어깨가 슬슬 나오면서 다시 제자리로 돌아갔다. 아! 탯줄이 감겼다. 나름 제방 향으로 돌아 나왔지만 그래서 끝판에 머리를 돌리지 못했던 거다. 몸이 나오는데 몸에도 한번 감겨 있다. 풀어지는 방향으로 내려오지 못한 거다. 똑똑하다. 무작정 잡아당기지 말아야 하는 이유다. 매우 긴 시간처럼 느껴지지만 그 순간은 오초를 넘지 않는다.

2명의 형과 아빠와 함께 미니가 태어났다. 엄마의 소원대로 젖도 잘 빤다. 집으로 돌아간 후에도 닷새간 미니의 모유수유를 지지하고 세밀히 조언해 줄 거다.
모두의 인기품목 삶은 계란은 한 개만 남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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