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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옥진 Oct 12. 2020

나의 첫 신생아실 부엌

 산파일기

 1983년, 나는 스믈셋의 간호사이다. 졸업 후 조산사가 되기로 결심하고 조산사 수련병원에 들어갔다.

조산사 수련병원은 하루도 조용할 날이 없이 북적댔다. 지금과는 다르게 아기를 많이 낳았던 1980년대엔 인구조절 정책에 따라 '하나씩만 낳아도 삼천리는 초만원' 이란 인구축소 정책 표어까지 등장했을 정도였으니까. 신생아실로 배치된 첫날, 그 생소한 광경은 지금도 잊을 수 없다. 70여 명의 아기들이 똑같은 바구니에 누워 있다. 여기저기서 '응애응애' 난리다. 얼이 빠졌다. 신생아실의 근무를 마치고 집에 돌아가서도 아기들의 울음소리가 환청처럼 들려왔다.

그날도 연신 아기들이 분만실에서 올라왔다. 이름표에 태어난 일, 시, 성별, 체중, 아기 엄마 이름 등을 확인하고 아기 몸을 검사한다. 손가락 발가락이 각각 10개인지 세고, 머리의 대천문 소천문을 만져본다. 처음으로 엄마의 골반에 닿아 부은 애쓴 흔적에 이상이 없는지, 얼굴의 대칭을 살피고 안구, 콧구멍의 상태, 양쪽 귀의 모양과 구멍의 유무, 입안 상태, 입술 모양 등의 머리 체크가 끝나면 몸, 팔다리, 등, 생식기 등의 이상 유무, 각종 반사(reflex)의 정상여부까지 철저히 살핀다. 싱크대로 데려가 첫 목욕을 시키고 탯줄을 GV(gentian violet)로 소독하고 처음으로 배냇저고리를 입는다. 엉켜있는 갓태어난 아기머리를 예쁘게 7:3 가르마를 탄 후 뱃속처럼 느낄 수 있도록 속싸개로 꼭 싸준다. 얼떨결에 이리저리 약 삽십분간 처치를 받은 아기는 그제야 제 이름표가 있는 바구니에 눕혀진다. 기도 흡인을 방지하고 양수를 자연스레 배출하기 위해 발 보다 머리를 낮게 둔다. 그러면 아기의 신생아실 입성식 끝! 엄마는 오간 데 없고 아기는 그렇게 홀로 남는다. 낯선 이들이 바쁘게 오가고 천장의 불빛은 24시간동안 꺼지지 않아서 아기를 어리둥절하게 만들지만 바쁜 간호사들은  아기를 위로할 새가 없다. 배고프다고, 기저귀가 젖었다고 나름의 표현을 해도 결국 참지  못하고 울어야지만 간호사 엄마의눈길을 잡을 수 있다.

방금 전에 아픈 아기가 서둘러 응급으로 들어왔다. 좀 더 집중적인 간호를 받으러 바로 인큐베이터로 들어갔고 다른 아기들보다 많은 간호사들이 그 아기를 돌보기 위해 재빨리 움직인다. 4.8킬로의 거대아는 숨을 몰아 쉬며 생사에 갈림길에 서 있다. 조산아가 들어가는 것이 상례인 인큐베이터는 가끔 아픈 아기들이 차지하곤 했다. 이 거대아는 엄마의 몸을 빠져나오다가 크게 다쳤다. 태어나서 숨도 못 쉬어 인공호흡으로 간신히 호흡을  시작했으며 큰 체격 때문에 쇄골 양쪽이 모두 골절을 입었다. 골절은 시간이 지나면 낫지만 더 중요한 것은 호흡이었다. 산소 포화도가 널을 뛸 때마다 계속 알람이 울린다. 그 소리는 신경을 곤두서게 하고 공포스럽기까지 하다. 온갖 줄들이 그 아기 몸에 붙여졌다. 오전 내내 애쓴 신생아실 사람들의 노력은 허망하게 수포로 돌아갔다.  아기는 이름도 갖지 못한 채 두 시간 후 하늘나라로 떠났다. 아주 큰 아기가 하얀 천으로 덮힌 인큐베이터에 숨을 거둔 채 있다. 고요해진 녀석과들 달리 다른 신생아들은 여기저기서 똥을 쌌다고, 소변을 쌌다고, 배고프다고 마구 울어댔다. 아기들에게 애도를 바라기는 무리였을까? 새 생명이 세상을 뜬 후에도 여전히 나는 다른아기의 기저귀를 갈아주고 분유를 먹였다. 오늘은 태어나는 아기들이 많은지 창 너머로 또다시 갓태어난 아기가 분만실 간호사의 손에 안겨 들어온다.

숨을 거둔 아기는 어떻게 될까? 누가 저 별이 된  아기를 다시 씻기고 고이 싸 줄까! 생각보다 잦았던 신생아들의 사망은 죽음을 바라보는 고정된 생각을 벗어나게 했다. 나이가 삶을 마감하는 잣대인줄만 알았던 나는 젊은 이의 죽음 , 아기의 죽음은 단 한번도 생각하지 않고 살았다. 나와 한 공간에 있는 아기가 태어난 지 몇시간만에 세상을 떠났다.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어 정신을 가다듬었다. 오늘따라 년차가 비슷한 선배들이 근무를 하고 있었다. 누가 아기의 사후 간호를 할 것인가에 대해 보이지 않게 눈치 작전이 시작된 듯 보였다. 조산사 교육생이었던 나는 그 일을 할 책임은 없다. 이 일 저일 하며 뛰어다니다가 문득 인큐베이터에 그 아기가 사라진 것을 알았다. 별이 된 아기를 돌보고 는 이가 과연 누구일까하고  궁금해졌다. 처치실로 갔다. 그곳은 아기들의 분유를 조제하기도 하고, 분유병도 닦고 소독하는, 어찌 보면 신생아실의 부엌 역할을 하는 곳이다. 가끔 아기의 사후 처치도 그곳서 하곤 했다. 마음이 선듯하여 들여다보니 현주 조산사가 아기 몸에 붙어 있던 반창고와 주사 바늘, 산소 줄 등을 제거하고 있었다. 항문에 묻어 있는 까만 태변도 닦는다. 코와 입, 항문을 소독 솜으로 막은 후 몸을 가지런히 한 후 하얀 시트로 덮었다. 멀찌감치 보아도 현주의 손길은 정중해 보였다.마지막으로 아기를 싸기 전에 성호를 긋고 기도도 한다. 인기척을 느낀 현주조산사는 내 눈과 마주쳤다. 가슴이 쿵하고 내려앉은 어정쩡한 모습의 내게 미소를 지어 보였다. 솔직히 숨을 거둔 아기가  무서웠다. 지켜보는 것조차 자신이 없었다. 앞으로 내가 만날 아기들 대부분은 건강하게 태어나지만 그렇지 않을 경우도 있을것이다. 용기를 꺼내 마주 보아야만 한다. 선배가 곱께 싸놓은 아기를 안아 밖에서 기다리는 가족에게 아기를 건낸다. 사후강직 때문에 뻣뻣하고 차가운 느낌의 아기는 출산으로 아직 부기가 빠지지 않은 산모의 가슴에 안겼다. 얼굴에 눈물이 흐른다. 소리내어 울지 못하고 꺼이꺼이 목만 메인다. '좋은 곳으로 가거라 아가야!  다음 생엔 건강하게 오렴~' 속으로만 나는 이렇게 기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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