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산 ! 그 찬란한 순간들
에이미는 제왕절개로 첫아기를 만났고 그 느낌은 다음번 아기는 반드시 자연출산을 해야겠다는 각오를 다지게 되었다고 말했다. 둘째가 생기고 미군인 남편을 따라 한국에 온 지 이제 여섯 달이 지나간다. 브이백(VBAC:제왕절개 후 자연출산의 약자)을 시도하기위해 한국의 의료진들을 섭외하고, 대형병원과 가까운 친구의 집을 출산 장소로 정했다. 수중 출산 장비도 완벽히 준비했고 최면출산 공부도 마쳤다.
예정일 즈음, 에이미에게서 진통이 온다는 소식에 출산에 참여할 모두는 출산 장소로 집결했다. 의사1명, 조산사2명, 에이미의 친구인 둘라 2명이 에이미의 자연출산을 돕게 될 것이다. 이미 다섯 시간정도 진통을 견뎌낸 에이미는 구석방에 준비된 수중 출산 풀 안에서 “ 할 수 있다. 나는 할 수 있다!!!'를 외치며 몸을 흔들고 있었다. 진통은 제법 잘 오는 듯 보였고 순조로이 자궁 문이 열렸다.
자연출산을 하기 위해 그녀는 아기가 태어나는 과정을 독학으로 공부했다. 그 과정에서 자신이 왜 첫아기를 제왕절개를 하게 되었는지도 알게 되었다. 그녀는 우리들에게 최대한 의료적인 개입을 하지 말아달라는 부탁을 했으며 아기가 태어날 때까지 기다려달라고 말했다.
그러나 에이미의 골반이 정말 넉넉하지 않은지 자궁문은 이미 다 열린 채로 야속한 시간은 흘러갔다. 아기는 잘 내려오지 않고 있다. 에이미가 준비한 최면 출산은 이미 물 건너갔고 우리들은 언제 끝날지 모르는 탄생의 시간을 맘 졸이며 기다려야 했다. 아주 솔직히 이야기 하자면 두려움을 애써 서로 감추고 있었는지도 모르겠다. 죽더라도 자연출산을 하겠다는 그녀의 각오를 지켜주고픈 우리들 사이에 큰 강이 가로놓인 듯 보였다.
일반적으로 자궁 문이 모두 열리는 시점에서부터 2시간정도가 기다릴 수 있는 최대시간이다. 그런데 10 시간이 지나가고 있다. 도저히 있을 수 없는 일이다. 자연출산을 강력히 원하는 에이미를 위한 일이라고 스스로에게 계속 최면을 걸어야만 했다. 그럼에도 눈을 부릅떠야 하는 이유는 자궁이 터지는 증상을 살피는 것이었다. 에이미를 위해 우리 모두는 모험을 하고 있는 셈이다.
누군가는 의료인으로서 최소한의 양심에 대한 이야기를 할 수 도 있겠다. 위험에 빠질 확률이 있는 산모에게 브이백을 시도 한다는 것은 옳지 않다. 하지만 우리는 에이미의 강력한 정신력과 신념에 의료인으로서 가져야 할 최소한의 양심을 차선에 두기로 했다.
자연출산을 지지해 주는 집안은 밤새 북적였다. 긴 시간을 한 곳에서 보내다보니 의료진들도 몹시 피곤하고 배도 고팠다. 날이 밝아오자 우리는 교대로 밥과 진한 커피를 마시러 밖으로 나갔다 왔다. 아파트 사이로 불어오는 바람에 정신이 되돌려졌다.
우리는 에이미의 상황에 대해 의견을 나누고 양막을 터뜨리기로 결정했다. 물론 그 상황에 대한 설명을 한 후 에이미의 의사를 물었다. 긴 시간 진통으로 힘들어하는 에이미도 우리의 의견에 찬성했다.
의사는 멀찍이 서서 내게 그 일을 하는 것이 좋겠다며 뒤로 물러났다. 아직 골반에 아기머리가 진입이 제대로 안 된 경우 인공파막(artificial rupture of membrane)은 조심스럽다. 너무 한꺼번에 양수가 나오면 탯줄이 함께 나오는 위험한 상황이 초래될 수 있기 때문이다. 진통이 오자 내진*을 했다. 손끝에서 빵빵하게 양막*이 만져 졌다. 12시 방향에 양막에 작은 구멍을 냈다. 질 밖으로 양수가 흘러 나왔다.
오랫동안 진통을 겪은 아기도 힘들었는지 양수에 태변이 진득하게 섞여 나왔다. 우리는 말없이 서로 얼굴을 쳐다보며 아기의 안위를 걱정하였다. 다행이도 양막 파수 후 아기 심박 동수는 고르게 들렸다.
양수를 터트리자 진통이 훨씬 더 세어졌다. 그 진통을 하면서도 에이미는 아기의 하강을 돕기 위해 더 격렬하게 움직였다. 진통하지 않는 우리도 이렇게 힘든데, 에이미가 전사 같았다. 그로부터 딱 30분 후, 기적처럼 물속으로 아기가 태어났다. 아기는 힘차게 버둥거리며 울음을 토해냈다. 침대로 옮겨진 에이미는 '해냈다 해냈어. ~내가 해 냈어, 이쁜 우리아기!' 라고 계속 중얼거렸다. 가장 걱정되었던 자궁의 파열증상은 다행이도 없다. 이제 태반만 잘 나오면 오늘의 대 서사는 끝이 난다. 안도의 한숨이 여기저기서 새어나오고 그곳의 모든 사람들은 엄지손을 치켜들며 에이미에게 찬사를 보냈다.
첫아기를 키워보았던 에이미는 젖을 물리는데도 거침이 없었다. 태어나자마자 엄마의 젖을 주는 것은 엄마에게도 아기에게도 이롭다는 것을 그녀는 잘 알고 있고 아기는 에이미의 바람대로 힘차게 젖을 빨았다.
엄마와 아기 사이에 애착(bonding)이 형성되는 시기는 출산 후 세 네 시간 내에 일어난다.
출산 직 후 아기가 젖을 빠는 동안에 분비되는 옥시토신(oxytocin)호르몬은 자궁수축을 도와 엄마의 후산과 산후 출혈을 막아준다. 엄마와 아기는 이렇게 서로 공생을 한다. 과거에는 아기가 신생아실로 가지 않았고 따듯한 엄마의 품에 머물렀다. 단 한 순간도 아기와 떨어지지 않는 것이 주는 이점을 현대인들은 알지 못하는 것이 안타깝다.
출산 막바지에 최고조로 분비된 아드레날린 호르몬 역시도 애착형성을 돕기 위해 아기와 엄마를 잠들지 못하게 한다. 이틀 밤을 새운 에이미와 아기도 그랬다.
에이미가 출산 후 바로 젖을 물리고 있지만 후산, 즉 태반이 아직 만출 되지 않고 있다. 30분이 지나도록 그대로 자궁 안에 붙어서 떨어질 생각을 하지 않았다. 이제는 내가 쓰러질 것 같았다. 얼른 쉬고 싶었다. 또다시 삼십 분이 지나간다. 또 고비를 맞았다. 지금부터는 사실 조산사의 영역이 아니다. 남겨진 사람들에게 미안했지만 나는 집으로 돌아갔다.
후문으로는 아기가 태어난 지 두 시간이 지나도록 태반이 만출 되지 않자 에이미는 대학병원으로 후송되었다고 했다. 병원으로 간 에이미는 태반을 인위적으로 꺼내려는 의료진의 제의를 무시하고 태반을 자궁 안에 둔 채로 집으로 돌아갔다는 소식도 따라서 들려 왔다.
'차후 일어나는 일에 대해 병원의 의료진은 이후 일어날 일에 대하여 일절 책임을 지지 않는다.' 라는 자퇴서를 썼다고도 했다. 이 또한 어디서 단 한 번도 들어보지 못한 상황이었다. 에이미는 일정 시간이 지나도록 태반 만출이 되지 않을 경우 병원의 처치는 자궁안의 태반을 조각조각 떼어낸다는 사실조차 알고 있었던 게다.
내 몸에 손대지 말라며 탯줄을 매달고 집으로 간 에이미! 에이미의 출산에 함께한 우리는 어떻게 마무리가 될지 걱정 반, 궁금증 반으로 하루하루를 보냈다. 집으로 돌아간 지 삼일 째 되던 날, 태반이 나왔다는 소식이 들려왔다. 세상에! 태반이 출혈 하나 없이 예쁘고 깔끔하게 떨어졌다고 했다. 여기저기 흩어져 있던 우리들은 각자의 공간에서 아기가 태어났을 때 보다 더 큰 환호성을 질렀다.
기존 수술자국이 벌어져서 자궁이 터지거나 그로 인해 아기와 산모가 죽는 상상은 에이미의 집에 도착하여 아기가 태어날 때까지 나를 괴롭혔다. 하지만 좋은 결과로 끝이 난 가장 큰 이유는 태아의 능력을 믿고 자신의 몸을 믿은 에이미의 노력이었지 않을까. 책에서만 보았던 믿음의 결과를 난 에이미를 통해 보았다.
출산을 넘어서 그녀는 내게 큰 스승 중 한 명이 되었다.
미국으로 돌아간 그 후로도 에이미는 두 명의 아기를 자연출산으로 낳았다. 페이스 북의 그녀는 여전히 건강하고 씩씩한 엄마로 살고 있다.
*내진 ; 출산의 진행을 가늠하기 위해 하는 진찰. 아기및 의 하강정도와 자궁경부의 소실및 개대의 정도를 알수 있다.
* 양막 ; 태아를 싸고 있는 2개의 막 중 하나. 양수가 새는 이유는 양막과 융모막이 파열된것을 말한다.